우리나라에서 그냥 '병원'이라고 하면 특별한 설명이 붙지 않는 한 '민간병원'을 가리키는 말이고 의료진, 그냥 '의사'라고 하면 역시 거의 대부분은 민간병원에 소속되어 자기 직장을 위해 일하는 민간병원 의사이다. 우리나라 병원의 94.6%, 병상의 약 90%가 민간병원의 소유이고, 입원실이 없는 동네의원은 거의 100% 개인 소유이다
코로나 상황이 연일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병원과 의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동안 코로나 환자 진료에 참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였나? 그래, 그동안은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았으니까 소수의 공공병원이 담당했다고 친다면, 최근 한달 코로나 위중증 환자,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그냥 병원과 의사들' 중에 과연 얼마나 자발적으로 코로나 병상을 내놓고 있으며 몇 명이나 스스로 코로나 환자 진료에 참여하고 있는가?
정부 행정명령에도 사보타주하는 민간병원들
12월 10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1146개의 준중증, 중등증 병상 추가를 목표로 한달 전(11월 5일, 11월 12일)에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현재 561개가 운영 중이고 나머지 병상은 아직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것은 민간병원들의 사보타주(태업)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돈벌이를 위해서는 잘도 돌아가던 병상이 코로나 환자를 위해서는 이렇게 준비가 더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유를 들어보면 감염병 진료를 하기에는 병원 시설과 동선이 여의치가 않아서 공사가 필요하고 아직 의사들이 코로나에 대해 잘 몰라서 코로나 병동을 맡겠다는 의사가 없다고 한다. 감염병 위기 시기에 자신들이 병원이고, 의사로서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한심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5.4% 남아있는 공공병원의 명맥마저 끊어버리고 싶은 건가?
이렇게 민간병원에 대한 행정명령이 계속되고 병상확보 압박이 지속되자 몇몇 언론사에서 갑자기 공공병원을 공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중앙일보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이 603병상 중 111개만 코로나 병상으로 내놓고 나머지 병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지난해 초 모든 병동을 코로나 치료병동으로 전환했다가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취약계층을 위한 일반환자 외래진료와 입원, 수술, 응급실 진료기능을 재개하면서 111개의 코로나 병상을 운영하며 2년째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깎아내리기 위해, 행정명령으로 마지못해 26개, 31개의 중환자 병상을 내놓은 한양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코로나로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지만 소위 빅5라고 불리는 대형병원과 사립대학병원들이 공공병원 보고 돈벌이 의료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상천외한 의견이 등장한 것이다. 민간병원 옹호세력들은 이번 기회에 5.4% 남아있는 한국 공공병원의 실낱같은 목숨마저 끊어버리고 싶은 것 같다.
코로나 진료와 취약계층 진료, 공공병원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10월 주차장에 모듈형 음압격리병동을 지어 중환자실, 준중환자실 30병상을 만들었으며, 12월에는 병원 옆에 위치한 미 공병단 부지에 경증환자 65명을 치료할 수 있는 코로나19 격리치료병동을 만들었다. 기존 병원 진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병원을 확장해 가며 코로나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중앙의료원으로서 코로나 경증-중등증-위중증 코로나환자를 단계별로 진료하고 최근 오미크론 확진자들도 모두 수용하는 등 코로나 19에 최선을 다해 대응하면서도, 국립중앙의료원 말고는 갈 곳이 없는 노숙인, 쪽방주민,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 등 취약계층 진료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코로나, 비코로나 가리지 않고 진료에 매진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향해 중앙일보는 <딱 걸렸네, 코로나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후속 기사를 실었다. 그동안 국립중앙의료원은 사스, 메르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까지 국가 위기상황에 가장 먼저 동원되고 희생을 강요받지만 감염병 위기만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취약계층 진료, 외상센터 등 민간병원이 꺼리는 업무를 다시 떠맡아 수행해 왔다.
보건복지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건드리지 못해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이미 2003년경부터 병원을 이전한다는 이유로 시설투자를 하지 않아 낡고 낙후된 병원으로 원래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감염병 위기 상황만 생기면 의사들에게 외래환자 진료를 중단하고 모든 입원환자를 퇴원·전원시키라고 강요하고 감염병만 보라고 닦달해 왔으며, 지금도 매일 코로나 병상수를 확인하고 비어있는 병상이 있으면 그 사유를 소명하라고 하고 있다.
나는 지난 3차 대유행 당시 미군기지에 급하게 만든 65개의 경증환자 격리치료병동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이다. 나도 원래는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였지만 지난해 12월 코로나 상황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중수본 파견직 의사로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해 현재는 계약직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병원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환자를 봐야 하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환자 악화시 즉시 본원으로 이송하고 또 반대로 이송을 받기도 하면서 중증도에 맞는 진료가 가능하고 어떻게든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지금 코로나 환자 주치의를 하는 의사 대부분은 메르스 때도 헌신을 하셨던 분들이다. 그 중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메르스가 터져서 집에도 못 가고 열심히 환자를 돌봤는데 나중에 집에 가보니 자기 아이 머리에 이가 생겨 있더라고... 신종감염병을 본다고 헌신을 했건만 돌아온 건 엄마가 메르스 보는 병원의 의사, 간호사라는 혐오와 가정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었던 것이다.
의료의 본질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병원은 오직 공공병원뿐
정부가 이제라도 의료를 왜 민간에게 맡기면 안 되는지 이해했으면 좋겠다. 건강보험제도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민간병원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지금 이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수가를 다시 책정하고 급여-선별급여-비급여를 분류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민간에게 의료를 맡기는 시스템은 이제 부작용이 더 많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공공의료청을 만들어 정부가 직접 병원에 운영개입하고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환자를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가장 빠르게 공공병원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코로나 병상을 확보하는 방법은 민간병원을 인수하는 것이다. 민간병원이 손해 봤다고 주장하는 손실보상금을 주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병원을 인수하는 것이 더 비용효과적이다.
다시 '그냥 병원과 그냥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사실 당신들도 집에서,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코로나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냐고. 그런데 여러 가지 얽혀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러기 힘들다면 그 조건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공공 소유의 병원을 더 늘려서 우리 같이 의료인의 본질적 임무에 더 충실해 보자고 손 내밀고 싶다. 소위 빅5병원들과 사립대학병원들에게도 묻고 싶다. 지난 수십년동안 당신들을 그만큼 키워준 것은 전국민이 세금처럼 내서 모은 건강보험료와 환자들이 직접 지불한 본인부담금 덕분이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행정명령으로 내놓은 1.5%, 3%의 병상. 이게 정말 최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