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 <홀리 모터스>는 오스카(드니 라방)라는 인물이 하루 동안 유능한 사업가, 가정적인 아버지에서 광대, 걸인, 암살자, 광인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아홉 명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홀리 모터스라는 고급 리무진에서 내릴 때마다 오스카의 모습은 바뀌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장을 거듭하는 그, 그런 그의 삶이 피곤한 걸까, 평생 하나의 얼굴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지루하고 답답한 걸까.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삶에서 여러 개의 배역을 맡을 수 있다면 어떤 걸 해볼 수 있을지 상상했다. 예상되는 범주를 벗어나 색다른 역할을 해보는 삶, 상상일 뿐이었지만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미국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쓴 소설로 퓰리처상까지 받았음에도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있다. 네 명의 자아를 만들어 활동했던 페르난두 페소아처럼 "두 명의 작가는 될 수 있을 것 같다"(136쪽)고 쓴 그녀, 줌파 라히리는 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게 되었을까.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이승수 옮김, 마음산책)는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첫 산문집이다. 서툰 외국어에서 그녀의 또 다른 표현 수단이 된 이탈리아어로, 어린아이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 정성껏 써 내려간 글이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지만 단단하다. 숨어 있던 언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조약돌처럼 그녀만의 은유와 사유로 빛난다.
이탈리아어를 좋아하게 된 근원에서부터 언어를 배운 과정, 이탈리아 로마로 거처를 옮기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기까지, 자신의 삶에서 영어라는 모국어를 추방시킨 그녀의 경험은 흥미롭다.
인도 출신 이민 가정에서 자라 영어를 모국어로 익혔지만 그녀의 정체성에는 늘 빈자리가 존재했다고 한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고. 그 공백을 채우려는 갈망이 이탈리아어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피어났다. 그 사랑은 삶의 터전을 바꾸게 했고 정체성의 일부까지 새롭게 만들어 냈다.
"내 분열된 정체성 때문에, 아마 성격 때문에 난 불완전한, 다시 말해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느꼈던 불안, 간혹 지금도 느끼는 불안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실망스럽다는 느낌에서 온 것이다."
(93쪽,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는 자신을 쫓아다녔던 불완전함과 불안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민 가정, 영어에 익숙지 않은 부모님, 다른 피부색 등 타고난 정체성 때문에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불완전함이나 불안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았다.
노력과 한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94쪽)라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창작을 위해 영어라는 안정된 도구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이탈리아어라는 도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으리라.
부모님이 쓰는 벵골어, 모국어로 주어진 영어, 스스로 선택한 이탈리아어, 세 개의 언어가 만드는 삼각형의 액자를 품고 있지만 그 속은 비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빈 공간이야말로 자신의 '원천이요 운명'이며 '창조적 충동', 창작의 동력임을 강조한다.
"변신의 메커니즘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삶의 유일한 요소일지 모른다. 모든 개인, 나라, 역사의 시대, 우주 만물의 과정은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격렬한 변화의 과정일 따름이다. 변화가 없다면 우린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 "
(135쪽,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한계를 가능성으로 끌어와 자기를 변신시키는 작가의 이야기는 경이롭다. 만물은 모두 변신의 과정을 겪으며 변화와 전이가 우리를 도약하게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변화란 피해야 할 두려운 일이 아니라 기꺼이 끌어안고 즐겨야 할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이 작은 책을 덮고 나면 삶에서 무언가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불만스럽게 여겼던 내 안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삶의 추동력으로 삼아봐야겠다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 삶을 바꾸는 일을 줌파 라히리는 바다를 건너는 일에 비유했다. 자기만의 바다를 탐색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다른 얼굴을 찾아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를 자극한다. 우리는 모두 존재의 심연을 지니고 있다. 평생을 살아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자기 자신이 포함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깊고 깊은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우리 자신뿐이다. 내 안에는 어떤 내가 숨어 있을까. 그걸 발견하기 위해 우리 안의 바다를 건너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익숙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느라 굳어진 내연에 틈새를 만들려면 외국어를 배우는 시도부터 해야 할까.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시도하다(provare a)=노력하다(cercare di)'로 설명했다. 사랑한다면 시도하고 노력하게 되고 이를 통해 배우고 발견하며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자기 자신이든, 학문이든, 외국어든, 또 다른 세계나 타인이든,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변신은 거듭될 것이다.
'나'라는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에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의 종류와 수 또한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기대해보는 시간이다. 새롭게 사랑에 빠져볼 대상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무모하지만 시도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존재의 바닷속에서 작은 조개라도 하나씩 발견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돌멩이가 진주가 될 수도 있음을, 내 안의 불완전함이야말로 삶을 나아가게 하는 동력임을 기억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