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연이은 '친시장 행보'로 금감원의 감독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 원장은 21일 온라인을 통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전적 예방 조치가 오히려 금감원의 역할을 이전보다 강화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정 원장은 "금감원의 역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며 "하나는 시장과 금융 회사 리스크에 대한 사전적인 지도이고 또 하나는 사전적 지도나 법 테두리를 벗어난 영역에 대한 규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의 감독 기능은 사전이나 사후 어느 하나만 있을 수 없다"며 "두 가지가 종합적으로 균형을 이룰수록 금감원의 감독 기능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자신의 친시장 행보로 사모펀드 피해자 등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도 "소비자 보호는 절대 사후적으로 완벽해질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제품의 제조부터 판매, 사후 관리 등 전 과정에 걸쳐 사전적인 예방 조치가 선행돼야 소비자 보호에 완벽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사전적, 예방적 소비자 보호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사후적인 보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심의 제외,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
그러면서 정 원장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켰던 라임,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사태와 관련해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 "법에 따른 결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 원장은 "함 부회장을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다"며 "하나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관련해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때는 (함 부회장에게) 문책 경고 처분을 했는데 왜 이번 사건에선 (징계를) 추가 검토하지 않았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DLF 사태 당시 같은 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지난 4월 사후경합 법리 원칙을 적용해 추가 문책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이런 전례에 비추어 함영주 부회장에 대해서도 적용하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또 "두 번째 문제는 불완전 판매다. (실무상 문제가 발생하면) 최대 지위 책임을 물어 두 단계 위까지 제재를 적용하기 때문에 부행장이나 본부장까지 올라간다"며 "행장이 책임을 지는 건 은행 법규상 어려움이 있다는 법리 검토에 따라 (결정이) 이뤄진 걸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제가 취임하기 전 법률적 판단과 제재심에 따라 이뤄진 사항이지만 금감원 임직원들이 과거 사례나 법리를 잘 따져 제재 관련 법규를 적용한 걸로 판단하고 있다"며 "전적으로 법과 원칙, 전례에 따라 법리가 적용된 사안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드린다"고 강조했다.
함 부회장을 둘러싼 '봐주기 논란'은 최근 시민단체들이 정 원장이 '친시장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주된 근거 중 하나다.
지난 2017~2019년 라임펀드(871억원)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1100억원) 등 사모펀드를 판매한 하나은행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불완전 판매와 내부통제 기준 미비 논란에 휩싸였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은 당시 행장이었던 함 부회장이 지난 3월 DLF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 명목으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만큼, 비슷한 무게의 제재를 받을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후 사건에 대해선 함 부회장을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와 관련해 9개 시민단체는 논평을 내고 "금감원이 (사모펀드 사태의) 주범인 함영주 부회장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명백한 봐주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건이나 당사자가 다를 경우 별개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 DLF와 이후 사모펀드 사건을 독립적으로 제재하든 병합해 경합가중했어야 하는데 금감원은 사건 발생의 원인이 '내부통제 마련' 하나라며 경합가중 대상이 아니라는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임 원장 때 부활한 종합검사 기능 축소도 예고
뿐만 아니라 정 원장은 이날 기존 종합검사의 기능은 줄이고 사전검사 위주로 감독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정 원장은 금감원이 종합검사 명칭을 바꾸려 한다는 보도와 관련해 "그런 것도 포함해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종합검사는 금감원이 일정 기간 동안 특정 금융 회사 전반을 들여다보는 검사로 윤석헌 전 금감원 원장 때 부활했다. 하지만 정 원장 취임 후 종합검사가 금융권에 부담을 준다는 금융사들의 입장을 감안해 금감원은 종합검사 대신 경영실태 평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내부에는 종합검사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종합검사 명칭 변경 또한 그 일환인 셈.
이날 정 원장은 "(TF는) 법과 원칙, 사전·사후 감독, 예방 적합성에 부합하는 검사 제재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며 "현재 상당 부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빠른 시간 내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검사라는 명칭의 변경이 검사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대로 생각한다"며 "현재의 사후적 감독에 더해 리스크를 사전에 탐지하고 감독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오히려 감독 기능은 강화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종합검사 약화가 금융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달 논평을 통해 "(종합검사 축소는) 금감원이 감독과 제재라는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