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다룹니다. [편집자말] |
내 기억 속 아빠
어릴적 기억 속의 아빠는 늘 바빴다. 아빠와 재미있게 놀았다거나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아빠 회사 야유회를 쫓아갔던 적이 있다.
"너도 따라가도 된대!"
회사 야유회에 나를 보내면서 엄마는 매우 즐거워했고, 아빠는 나를 조금 귀찮아했던 것 같다. 기쁘지만 어색한 엄마의 배웅과 마지못해 나를 데리고 나서는 아빠의 모습이 어린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엄마는 자유 시간을 누릴 생각에 기뻤던 것 같고, 아버지는 덜렁 딸아이를 맡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나를 여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남자들끼리만 있는 무리 틈에 끼어 술을 마셨다. 재봉 일을 하던 회사에는 남자 직원들과 여자 직원들이 반반이었는데,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나는 여자 직원들 무리에 끼어 밥도 얻어먹고, 과자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었다. 다행히 여직원들은 나를 귀여워 해주었고, 나뭇잎으로 모자도 만들어 씌워주었다. 하루 종일 아빠와는 멀리 떨어져서 놀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는 나와 놀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유일하게 남은 사진은 집으로 돌아갈 때 아빠와 손잡고 걷는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무심히 걷고 있었다. 같이 있지만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 무뚝뚝한 사람, 그분이 우리 아빠였다. 가족이지만 나에겐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아빠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아빠를 개인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이해하려 애썼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대 아니었던가. 개인의 생활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었고, 사회적 분위기상 남자는 집안일과 육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당연시 되던 때였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 모습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편이 아빠를 이해하는 데 훨씬 편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성인이 되어보니 다 나 같은 성장 환경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찾자면, 내 남편은 좀 달랐다.
나는 아이들과 30분만 놀아도 피곤해하는 편이었다. 보드게임이나 레고블럭을 조립하면서 노는데, 30분이라는 한계 시간을 벗어나면 어떻게 더 놀아야 할지 난감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도 30분이면 족했다. 그 이상은 아이들도 집중하기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남편의 노는 방식은 좀 달랐다. 몸으로 놀아주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만화를 보며 깔깔댔고, 게임을 같이 했다. 남편은 아이들과 한번 놀기 시작하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놀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육아에서 좀 놓여났다.
언젠가 휴일에 함박눈이 왔다. 아이들과 남편은 눈싸움을 한다며 나가 놀았다. 한참 놀다가 밥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빠와 신나게 놀고 온 아이들은 볼에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집에 들어와서 아빠와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떠들었다. 동네 아이들까지 붙어서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신난 모습이 좋아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애들하고 잘 놀아줘서 고마워."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거지."
그제야, 남편이 아이들과 오랫동안 놀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과의 놀이가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었고, 재미있게 놀 줄도 몰랐고, 즐길 줄도 몰랐다. 반면 남편은 재미있게 노는 방법, 즐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남편의 아버지, 즉 나의 시아버지부터 이야기해야 할것 같다. 남편은 종종 아버님과 놀았던 추억을 이야기해주곤 했는데, 단칸방에서 꼬리잡기 한 것에서부터 낚시를 다닌 이야기,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던 이야기, 같이 등산한 이야기 등 무궁무진했다. 남편은 아버지와의 놀았던 추억이 많았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육아방식은 대부분 대물림 된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육아방식이 대물림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노력하는 아빠들이 보였다. 아내 대신 육아휴직 후 육아를 전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고, 녹색어머니로 불리던 교통봉사를 아빠가 하기도 한다. 지인은 아이들과 여행을 좀 더 많이 다니려고 캠핑카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나서서 홈스쿨링 하는 가족도 있다. 그야말로 아빠육아의 전성시대다.
40대가 된 지금의 X세대는 아버지의 전성기와 은퇴를 보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돈만 버는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들이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가정 내에 그들의 자리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의 아빠들은 돈만 버는 가장의 모습으로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책과 유튜브, SNS를 통해 육아를 위한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지 않나. 우리 부모님 세대가 한정된 정보로 육아를 했다면 지금은 조금만 검색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책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에 매몰되지 않도록 필터링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아빠들의 노력이 만나 육아대디, 아빠표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전 세대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놀았던 남편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한때 사업이 잘 안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때 남편이 육아를 전담했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남편은 도서관에 갔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아빠표 놀이 수업이 있어 신청해서 들었는데, 꽤 유용했다고 했다.
남편은 그 수업에서 아빠의 체력을 적게 소비하며 아이들과 몸으로 노는 법,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등을 배웠다고 했다. 남편은 그때를 회상하면 개인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빛나는 시간을 함께 보내서 좋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결핍이 있든 없든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냥 평범한 아빠이고 싶어.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가끔 생각나는 사람."
어쩌면 평범함은 사는 동안 가장 크고 위대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 평범함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노력했나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들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나.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과 좀 놀 줄 알고, 같이 놀아주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