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몇 번을 물어보았다. 아직 졸업식에 대한 안내가 없는 거냐고. 딸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없었어."
중3 딸의 졸업식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여전히 학교에서는 졸업식에 대한 별다른 안내가 오지 않았다. 딸보다 먼저 치른 지인 자녀의 졸업식 소식을 전해 들으며 요즘 중학교 졸업식 장면을 대강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대면 졸업식이라면 일정을 조정해야 할 텐데, 빠르게 소식을 공지하지 않는 학교가 야속했다.
"담임 선생님께 문자로라도 좀 여쭤봐!"
"그것만 물어보기도 좀 그렇잖아!"
답답한 내 말에 딸은 질색했다. 딸은 기말고사 이후 학교장허가 가정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은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교과 진도도 끝나고 시험도 다 봐서 학교 분위기가 엉망일 거라며 딸이 가정학습을 쓰겠다고 했을 때, 난 기겁했다. 몸이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프라던 교육을 받고 자란 부모 세대로서 한 달이나 학교를 안 간다는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가정학습 쓸 사람은 써도 된다고 하셨단 말이야."
무조건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불량 청소년(?) 취급하는 엄마가 답답했던지 딸은 억울해했다. '오미크론'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변이 코러나 바이러스가 발병하며 전국적으로 연일 5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던 시기였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 역시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 확진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중3 학생들은 백신 접종율도 높고 고등학교 진학 정보도 필요한 시기인데,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가정학습을 써도 된다니. 오히려 정규 교과와 기말고사가 끝난 후 해이해질 수 있는 중3 아이들을 붙들어 매어주는 일이 학교가 담당할 몫이 아니던가? 여러 모로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와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딸의 팽팽한 신경전 결과, 3일 간 등교 후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딸의 주장대로 기말고사 후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라면 깔끔하게 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결국, 딸은 3일 후 가정학습 신청서를 들고 와 내 도장을 받아갔다. 도장을 찍어주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그 후, 딸은 사설 독서실에 등록하고 학교에서 보내야 할 시간을 독서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한 달 여만에 졸업이라는 행사를 치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를 찾는 것이었으니, 아이가 학교에 대해 대면 대면했던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줌 수업에 익숙해진 딸은 "(졸업식) 줌으로 하면 되지, 꼭 가야 해?"라며 학교를 찾는 발길을 무거워했다. 가끔씩 아이가 가보지도 않은 고등학교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중학교 2년 동안 학교는 가끔 시험 보러 가는 곳이었으니, 고등학교를 떠올릴 때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 외에 학교 생활의 다른 즐거움을 떠올릴 수 있을까.
졸업식 안내는 졸업식 4일 전에 알림장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학부모는 줌을 통해 참여하라는 안내였다. 꽃다발도, 친구들과의 사진 찍기도, 졸업의 아쉬움도 기대하긴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과거처럼 가족 모두의 축하 속에 고등학교 진학의 꿈에 한껏 부풀지는 않더라도 중학교 졸업식에 축하의 꽃다발이 없어서는 아무래도 서운하다. 일정을 조금 조정하여 딸의 졸업식이 끝날 시간에 맞춰 꽃다발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
딸을 기다리며 핸드폰 줌으로 들어가 본 졸업식 장면과 채팅 창에 올라오는 참여자들의 축하 메시지들을 읽으니 격세지감이었다.
"졸업식 보러 오라더니 반도 안 알려주면 어떡하자는 거냐? 카톡 좀 읽어라."
줌으로라도 졸업을 축하해줄 요량이었을 어떤 참여자의 메시지는 우습다 못해 안타까웠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는 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며칠 전까지는 안 와도 괜찮다더니, 꽃다발을 받아 든 딸의 표정이 환했다. 함께 나온 친구와 사진을 찍고 원하는 메뉴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딸은 졸업식 대미를 장식(?)했다.
딸은 3년 개근에 대한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 두 장으로 헤어 고대기를 사겠다고 했다. 그래, 그런 설렘이라도 있어야 중학교 졸업하는 맛이 나지.
중학교 3년. 꽃보다 어여쁜 여중 생활, 웃음 많고 꿈 많았을 딸의 중학 시절이 끝났다. 사춘기를 앓고 진로를 고민하던 황금 같은 시간들을 떠나보내며 딸은 어떤 심경일까.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 못 다 한 멋진 학교 생활과 깊은 친구 관계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딸처럼 졸업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더 큰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속도대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재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