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와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의 7시간 통화 내용 중 일부를 방송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혹자들은 보도 내용이 예상보다 약했다며 실망하거나 방송사를 비판했지만, 다른 언론과 유튜브 등을 통해 방영되지 않았던 통화 부분이 공개되고, 타 매체의 관련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에 집중되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분위기도 다소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방송 당일 페이스북에 "방송에서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 되는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지적했으면 하는 생각이다"라며 "후보자의 배우자가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 본인이 가진 관점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한 글을 올렸지만, 이후 김건희씨의 '미투' 발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18일 한 유튜브 채널에서 "2차 가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등 적극 방어에 나섰다.
무려 50여 차례에 걸쳐 7시간 45분 동안 계속된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와의 통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어 오히려 무엇을 문제 삼아야 할지 어려운 그 녹취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구절은 바로 권력의 주체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내가 정권 잡으면..."
<스트레이트> 방송 다음날 새벽 <서울의소리>가 MBC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부분의 녹취록을 자사 유튜브에 공개했는데, 여기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김건희씨 발언이 담겨 있었다. 백은종 <서울의 소리> 대표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통해 "MBC 방송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라며 "법원 판결 때문인지, MBC의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하도 답답해서 MBC가 빠뜨린 부분을 <서울의소리>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정권 잡음 거기는(서울의소리는) 완전히 (웃음)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아마."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아니고 '나'라니... 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고 상대방에게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내'가 정권을 잡는다는 말은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해왔어야만 가능하다.
김건희씨가 윤석열 캠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정황은 다른 대화에서도 등장했다. 이날 방송된 녹음 파일에 따르면 김건희씨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에게 "잘하면 1억 원도 줄 수 있지"라며 캠프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캠프에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실제 실행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 방법 등을 문의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26일 이력서 내 허위이력 관련 사과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말, 그리고 행동과는 다른 것이어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캠프 이것저것을 챙기는 녹취록 속 김씨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중심에 섰던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검찰 권력의 남용
이날 방송분에선 윤석열 후보의 검찰 권력 남용 혹은 사유화를 의심받을 만한 발언도 나왔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구속을 언급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국, 정경심도 그냥... 구속 안 되고 넘어갈 수 있었거든? 조용히만 좀 넘어가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너무 키웠지. 김어준하고 방송에서 너무. 상대방을 적대시하지. 프로그램 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되니까. 그렇게 된 건데 유튜버들이 너무 많이 키운 거야. 그때 장사가 제일 잘됐지. 슈퍼챗도 제일 많이 나오고. 이게 다 자본주의 논리라고. 그러니까 조국이 어떻게 보면 불쌍한 거지."
'동생', '누나'라 호칭하는 이들의 대화라고만 하기엔 발언 안에 담긴 내용이 걱정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다. 김씨의 말은 유시민이나 김어준 등이 관심을 갖지 않고 조국 전 장관 또한 가만히만 있었다면 '구속'까지 갈 일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검찰권 남용을 넘어 검찰권 사유화로 비칠 수도 있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다.
김건희씨가 이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미쳤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김씨의 해당 발언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후보 또한 비슷한 생각과 선택을 했을 것이란 추측을 어렵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려스러운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소위 윤석열 '본·부·장'(본인, 부인, 장모)과 관련된 검찰의 모든 수사가 제대로, 그리고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 본인과 관련된 고발사주 의혹이나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 장모의 양평 개발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이는 윤석열 후보가 출마 명분으로 삼은 '공정과 상식'에 전혀 반하는 일이다. 과연 이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조국 수사를 그렇게 크게 펼칠 게 아닌데. 너무 조국 수사를 너무 많이 너무 많이 공격을 했지, 검찰을. 그래서 검찰하고 이렇게 싸움이 된 거지. 빨리 끝내야 된다는데 계속 키워가지고 유튜브나 이런 데서 그냥 유시민 이런 데서 계속 자기 존재감 높이려고 계속 키워가지고. 사실 조국의 적은 민주당이야."
김건희씨는 녹취록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 대한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전 검찰총장의 부인으로서 그녀는 스스로를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적용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곧 검사로서 세상을 검찰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검찰이 어떻게 운영될지 걱정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권력이란 '우리가 안 시켜도 알아서 하는 무서운 것'으로서, 검찰권이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검찰의 권력 분산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공위공직자수사처가 출범 1년을 맞은 최근까지도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가운데 다시금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대한민국은 다시금 '검찰공화국'이란 이름 아래 신음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이와 같은 나의 우려가 개인의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윤석열 후보는 이런 국민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아내 김건희씨가 캠프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누구의 아바타'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