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이하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창작오페라 <장총>(Trigger)이 지난 22~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낡은 한 자루의 장총이 해방전후 격동의 시기를 겪어오면서 고통과 희망을 조용히 던져준 작품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의 마지막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오페라는 하나만 잘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결시켰기 때문에 제작기간이나 예산, 인력 등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연출뿐 아니라 음악, 악보, 연기, 미술, 조명 등 모든 것이 앙상블 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뒤따른다.
이번에 선보인 <장총>은 안효영 작곡가의 데뷔작이지만, 탄탄한 제작진이 손을 모아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2016년 제10회 차범석희곡상에 빛나는 김은성 대본가와 오페라 <텃밭킬러>로 혜성처럼 등장한 안효영 작곡가가 만났다.
여기에 천안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구모영 지휘자,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최진규 무대미술가,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이경재 연출가가 힘을 모았다.
아마도 작품을 제작한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이름처럼 완벽한 앙상블을 유도한 결과물로 보인다. 공연이 개막한 지난 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이경재 연출가를 만나 한국 오페라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작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 4년의 임기를 마쳤고,(원래 임기가 2년인데, 한 번 연임했다) 지금은 민간 연출가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능이 다르다. 오페라라는 큰 범위에서 보면 같은 패밀리이지만 둘은 작품을 제작하는 구조와 배경에서 차이가 난다. 공공극장은 공공성에 기반해 제작하는데, 민간은 각 단체마다 색깔이 다르다. 민간은 (공공에 비해서) 어렵기 때문에 창작이나 초연으로 승부를 걸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공공은 전체를 떠안는 책임이 있다. 창작, 초연을 비롯해 유명하고 히트한 작품 등 모든 걸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와 관련된 22개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공공에서 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공의 기능을 염두한다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반면 '공공'이라는 제약때문에 어려운 것은 민간에서 할 수 있다. 가령, 소극장을 붐업을 시켜보겠다는 이슈는 민간에서 먼저 선점해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얘기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 오페라는 자막이 있어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 관객이 보기엔 어려워서 벽으로 느껴진다.
"오페라가 가진 태생적 어려움을 벽이라고 보진 않는다.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의복, 생활 방식은 상당히 서구화 됐고, 세계화 되지 않았나. 한국이 땅덩어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편리하고 유용한 것은 공유할 수 있다. 오페라가 한국에서 정착되는 것도 이 문화가 상당히 들을 만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태어난 작품이기 때문에 일반사람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어, 영어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오페라의 역사는 400년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오페라가 만들어진 것은 불과 75년밖에 안 됐다.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오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각국의 특색이 담긴 오페라가 있듯이 한국에서는 70여 년 동안 향유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엔 유명하고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으니 이제는 70년 이후의 한국 오페라도 서서히 자기매김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한국 오페라의 미래는 어떻게 예측하는가?
"2000년에 들어오면서 '창작산실'이 작은 단초가 됐다. 서울시에서도 '카메라타'도 있었다. 이제는 한국 오페라가 한국의 배경, 장르로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오페라의 400년과 한국오페라의 70년에서 맥락이 있는 것뿐이다. 실제로 400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모차르트 22개 중 우리가 아는 것은 단 4개뿐이다. 베르디의 작품들 중 일반적으로 많이 공연되는 것은 6, 7개밖에 안 된다. 역사에 남은 세계적인 작곡가들도 수십 개의 오페라를 작곡했을텐데, 우리가 몇 개의 작품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대본, 오페라 전문 작곡가, 작가가 이제 시작하는 태동기다. 완벽하고 누가 봐도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굳이 영화에 비유해보자. 최근 한국영화가 외국에 어필되는 이유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하나의 구조를 갖게 되면서부터다. 동시대에서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감수성을 느끼는 교집합이 생기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한국 오페라도 이제는 세계에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런 움직임은 더 적극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그전에는 서양 오페라를 인지하고 서양음악가로서 작품을 한국 고전(춘향전, 심청전)으로 진행했다면, 시대를 투영하고 감수성이 담긴 소재를 발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음악적 기법이 예전에 비해서 다양하고 테크닉이 좋아졌다. 한국 오페라가 발전할 수 있는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 오페라의 특징을 "대상의 흐름이 음악적인 오페라는 악보를 다 분석하지 못하면 힘들다. 작곡가는 대본을 읽고 그 느낌을 악보에 넣는다. 악보에 숨겨진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면 오페라는 산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가?
"(오페라 연출가로서) 세계적인 예술가인 모차르트, 푸치니를 만나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음악가,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한 분의 스타일을 알 수 없고 레퍼런스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작품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어려웠다. 그분들(안효연 작곡가, 김은성 작가)이 어떤 상상력을 거쳐왔고, 어떻게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리서치나 레퍼런스를 (제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점은 작가랑 바로 앉아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좋았다.(웃음)"
- 안효영 작곡가는 2년 전에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텃밭킬러>로 함께 작업해보지 않았나?
"단편만 보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안 작곡가는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인데 그 작곡가의 스타일을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데뷔작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가까이 바로 옆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고 공감하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 2017년부터 4년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최근 임기를 마쳤다. 최근 1년 동안 예술감독에서 연출가로 역할이 변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 때도 연출가와 예술감독의 역할이 구분돼야 생각한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술감독이 '그 작품을 결정하는 사람'이라면, 연출가는 '그 작품을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떤 작품을 하겠다는 결정은 예술감독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연출가가 그리는 것이다. 똑같은 산을 그려도 수묵화, 점묘화, 모자이크로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그림을 요리해내는 것은 연출가의 영역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경을 만들어놓는 것은 예술감독의 일이다."
- 예술감독에서 연출가로 돌아왔는데 어떤가?
"원래 연출가였다.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예술감독으로 역할을 경험했을 뿐이다. 이질감은 전혀 없고, 지금은 원래 하는 일로 돌아와서 너무 즐거울 뿐이다."
■ 이경재 연출가는 서울대 성악과, 미국 인디아나 대학교 오페라 연출 석사, 성균관대 공연예술대학원 박사 수료했다. 연출한 오페라 작품으로는 <비밀결혼>,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돈 조반니>, <마술피리>, <세비야의 이발사>,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로미오와 줄리엣>, <라 보엠>, <쟌니 스키키>, <한여름밤의 꿈>, <도요새의 강>, <노처녀와 도둑>, <아말과 동방박사들>, <한울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있다. 2016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연출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오페라 연구소 상임연출과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