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2년 전 오늘 아들이 세배하는 동영상이 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들은 학교에서 받은 복(福)이라는 글자를 담은 카드를 들고 아이패드로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화상통화 중이었다. 세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주세요."
할머니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고쳐주려 하셨지만, 만 세 살 반에 한국을 떠나 4년을 넘게 미국에서 지낸 나의 아들은 두 문장의 차이를 몰랐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2년 전에 세배하며 "새해 복 많이 받아주세요"라고 했던 걸 기억하느냐고 물으니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그게 더 정중하게(polite) 들리지 않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아이의 '한국말이 틀렸다 혹은 서툴다'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했다. 이중 언어 습득, 제2 언어 학습에 대한 수업을 들었을 때 수많은 책을 읽고, 학자들의 여러가지 이론을 정리하고 난 후 내 머릿속에 남은 문장은 하나였다.
완벽한 이중 언어란 없다(Perfect bilingual does not really exist).
다시 설명하자면 어떤 두 개의 언어를 50대 50의 비율로 정확히 습득하고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중 언어 구사자는 두 개의 언어를, 삼중 언어 구사자는 세 개의 언어를 자신이 필요한 수준에서 습득·구사할 줄 안다는 견해가 이중언어 습득 이론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중 언어 구사를 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농담이 있다. Bi-lingual(두 개 언어를 할 줄 아는)이 실은 Bye-lingual 이라는 말, 그러니까 두 개 언어를 다 구사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두 언어에서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잃어간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를 모으면 사람마다 책이 한 권은 나올 거다. 특히나 대학처럼 교육 수준이 높고 타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영어 자존감은 한없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때로는 관용구의 뜻을 몰라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원어민 화자가 구사하는 영어 표현의 발음이나 억양, 어조에 대한 감이 없어서 내가 눈으로 보고 외운 그 단어가, 그 표현인 줄 몰랐던 경우도 있다. 내가 발화한 그 영어 표현이 그들에게는 영어로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 모든 장벽을 뚫고, 알고 있는 표현을 알아들을 수 있게 내뱉는 경우에도 함정은 있다. 단지 당황해서 머릿속에서 찜해둔 그 표현이 아니라 엉뚱한 말이 출력되어 상대를 당황시키는 경우도 있다. 나의 영어는 늘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일 영어 원어민 화자 사이에서 영어로 일을 해도 나의 영어는 내가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유·무료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코스를 듣고,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발음 교정도 받고, 언어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미국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을 늘려가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지만, 투입 대비 성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어를 '마스터' 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학 내 센터에서 사무직으로 일할 때였다. 퇴근 시간 즈음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동료 중 하나가 내 자리로 다가와 카운터에 팔을 얹었다.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머릿속으로는 '무슨 일 있어?'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입을 거쳐 나온 말은 이거였다.
"What do you want from me?"
내 입에서 문장이 되어 나온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녀는 뒤끝이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거 어쩌지?' 식은땀이 흘렀다. 그럴 땐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영어 못하는 동양인'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이 상황 타개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의 영어 자존감을 세우는 것보다는 나를 바보로 만들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방법은 어색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데는 잘 먹혔지만 나의 영어 자존감에 상처를 낸 기억으로 아직도 머릿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에 와서 산 지 7년 차다. 그래서 나의 한국어는 안녕하신가 하면 또 그렇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지난주 한국에서 하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줌(Zoom)에 접속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책상에 앉느라 커피를 내려올 시간이 없었다. 모임 녹화를 내가 하기로 했으니 시작하기 전 잠시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내가 했어야 했던 말은 이거였다.
"잠시만요, 커피 좀 내려올게요."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커피 좀 만들어 올게요"였다. 영어로는 커피를 내리는 걸 'make coffee'라고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어 '네이티브'가 할 만한 말은 아니다. 내가 내뱉은 말은 완벽한 '교포식 한국어'였다.
사흘, 4흘 논란이 있었을 때 아들에게 하루, 이틀 다음이 뭔지 묻자 아들은 수수께끼라도 들은 듯 한참을 고민하다가 "음... 삼틀?" 이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양말은 '신는 '것이 아니라 '입는(wear)' 것이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내 얼굴은 내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예전에 같이 미국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 미국에 가서 살게 된 후 한국어로 문자를 하는데도 한국어 같지 않게 느껴진다던 언니의 말도 생각났다. 아마도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세기말 활동하던 교포 출신 가수들에 대한 비난이 생각났다.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모른다고, 한국인의 뿌리를 잊어간다고 그들의 부모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걸 기억한다. 어눌한 한국말을 늘 미안해했던 그들의 얼굴 표정이 생각난다.
그러나 미국 내 한인 이민의 역사, 미국 내에서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면, 당시 이민 1세대들의 이민 목적은 2세들이 새로운 나라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는 것이 최우선이자 거의 전부였다. 한국어 발음, 통사 구조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냥 한국어를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고국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하는 노력을 기울일 만한 장치도,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을 시간도 정성도 없었을 게다.
흔히 언어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 현지의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것을 컴퓨터에서 듀얼 프로세서를 구동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경우 새 프로세서를 생성하고 구동하는 것이 어른에 비해 쉽다. 그러나 현지 언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전 언어를 잊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뇌의 여러가지 특성 중 사용하는 신체·정신적 에너지의 양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짠돌이 예산통제자'의 측면이 이를 설명해준다. 하나의 뇌 안에서 시스템을 하나 이상 구동해서 생기는 과부하를 막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주한 새 환경에서 새로 구축한 현지 언어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옛날 시스템인 모국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활동을 멈추고 싶어한다는 설명이다.
나도, 남편도 우리 집을 '한국어 구역(Zone)'으로 묶어 두고 싶지는 않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새해 복 많이 받아 주세요"라고 해도 그걸 굳이 교정해주지 않는다. '국어학'을 전공했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엄마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나도 이미 미국에 온 지 10년도 되지 않아 커피를 '내리지' 않고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나의 말과 글에는 어색한 한국말이 자주 등장할지도 모른다. 국어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나의 어색한 한국어 구사를 얼마만큼 막아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계속해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 말' 뿐만 아니라 갖가지 형태의 한국어를 계속해서 접하는 수밖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https://brunch.co.kr/@nowhere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