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적정한 수준의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집니다. 예컨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고용형태나 노동조건과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법의 보호 아래 놓여 있어야 합니다. 기업의 규모나 지불능력, 경제여건 등을 핑계 삼아 제도적 차별을 용인하는 순간, 권리는 쉽게 훼손되거나 유예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노동자의 권리를 함부로 쪼개어 나눌 수 있다는 인식은 권리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배제되고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양산합니다. 그럴 때 권리의 보편성은 이내 빛바래질 것입니다. 대신 선별에 따른 시혜나 특권이 득세하게 된다면, 이미 그것은 권리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자본이 그어 놓은 위계와 분할선을 따라 정규와 비정규, 핵심과 비핵심을 가르는 이 같은 논리에 반대합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단지 노동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일과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견실하게 기반을 닦을 수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권리의 보편성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자본과 시장 중심이 아닌 공공성의 관점을 반드시 견지해야만 합니다.
특히 도시및주거환경 정비사업 과정에서 공공성의 원칙을 저버릴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대장동 사태'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개발이익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일과 삶을 꾸려 나가는 터전에서 주민들이 쫓겨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연대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 온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이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7년 8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주택가에 터를 잡은 꿀잠은 지난 4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해고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문화예술가, 종교인 등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이들에게 늘 좋은 벗이 되어 주었고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습니다.
연인원 1만 5천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사랑방 같은 이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회의를 하며 연대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렸습니다. 꿀잠이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권리 침해의 당사자들은 좀 더 힘을 내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꿀잠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꿀잠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울고 웃으며 정직하게 삶을 일구어 온 신길2구역 주민들입니다. 건설자본과 투기자본, 그리고 '여기 말고 다른' 지역에 살면서 토지와 주택을 오로지 소유'만' 하고 있을 뿐인 임대인들의 이윤 동기보다 이들의 삶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재개발 사업은 법적으로도 공익사업이기에 '불로소득 배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는 신길2구역 재개발 사업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싹쓸이식 개발로 원주민과 세입자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계승할 것인지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보다 면밀히 검토해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공공재로서 꿀잠 쉼터는 반드시 존치되어야 합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과 신길2구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소중한 일과 삶이 배제되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