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일이 다가오면서 TV토론이 열리고 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되고 있지만, 농업·농촌 문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 발표된 정책 구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를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가 대선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농업·농촌 이슈를 짚는 연속기고를 보내왔다.[편집자말] |
두 차례 열린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큰 이슈가 됐다. 그러나 대장동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전국을 다니다보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여기도 대장동이에요'라는 얘기다.
'대장동' 논란의 본질
'대장동'의 본질은 민간기업이 특정한 사업의 사업권만 확보하면 큰 돈을 버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이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하기 때문에 이런 특혜가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경우는 경기 성남시의 대장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대장동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없게 하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남 탓'만 하는 게 아니라 제2, 제3의 대장동을 막을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전국의 개발사업들 중 대장동과 유사한 성격의 사업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농촌지역으로 들어오는 산업폐기물매립장, 산업폐기물소각장(의료폐기물 포함) 같은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은 요즘 인·허가만 받으면 한 건에 수천~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러니 '제2, 제3의 대장동'이라고 충분히 부를 만하다.
이런 시설들이 농촌으로 밀려드는 현상은 대표적인 '환경부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산업폐기물, 의료폐기물들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농촌이 만만하게 보이는지, 민간업체들이 농촌지역 곳곳에서 이런 시설들의 설립을 추진하며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농촌에 사는 노인들이 군청, 시청 앞에서 추운 겨울에 1인시위를 하고 집회를 여는 풍경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쓰레기로 수천억 벌겠다는 기업과 자본
특히 돈이 된다고 하는 산업폐기물매립장과 의료폐기물소각장을 하려는 업체가 어디인지를 찾아보면, 최근에는 대기업과 사모펀드들이 대거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영월에서 560만톤 규모의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쌍용C&E(구 쌍용양회)다. 이 회사의 실소유주는 '한앤컴퍼니'라는 사모펀드다.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사위인 한상원씨가 운영한다. 이 펀드가 2016년 쌍용양회를 인수한 후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산업폐기물매립장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태영그룹과 SK그룹은 이미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충주메가폴리스 산업단지 안에 있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이 대표적이다. 태영그룹과 SK그룹이 합작해서 만들었던 TSK코퍼레이션(지금은 합작이 해소됐고 태영그룹이 KKR이라는 사모펀드와 합작해서 에코비트라는 업체를 만들었다)이 지분 70%, 지역토건업체가 나머지 30%를 갖고 있다.
이들이 2020년까지 챙긴 현금배당금만 422억 원이다. 20억 원을 자본금으로 출자하고 출자액의 20배 이상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지금도 매립이 계속되고 있으니 앞으로 챙길 이익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충북 음성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SK그룹이 지역업체와 손잡고 충북 괴산군 사리면과 충남 공주시 의당면에서 추진하는 산업단지 내에도 산업폐기물매립장이 포함돼 있다. 지금 지역주민들이 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려서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모펀드의 돈놀이판 된 의료폐기물소각장
의료폐기물소각장도 산업폐기물매립장 못지 않게 돈이 된다. 그래서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일찍부터 의료폐기물소각장 업체를 사들였고, 지금은 그 업체들을 다시 비싸게 팔고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Anchor Equity Partners)는 2016년 의료폐기물소각업·산업폐기물매립업 등을 하는 이에스지·이에스지청원을 2000억 원 정도에 인수했는데, 4년 만에 4배 가격에 되파는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업체들을 사들인 곳은 역시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 Kohlberg Kravis Roberts)이라는 글로벌 사모펀드였다.
이렇게 사모펀드들이 서로 사고 팔 정도로 한국의 의료폐기물소각장은 돈이 되는 사업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SK그룹이 의료폐기물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다 보니, 민간업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농촌지역 곳곳에서 의료폐기물소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 문제로 필자를 찾아온 농촌주민들이 있었는데, 그곳은 경북 안동시였다. 이미 경북지역에는 3곳의 의료폐기물소각장이 있고, 경북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량보다 타 지역 폐기물을 훨씬 많이 소각하고 있는데, 안동에 새로운 의료폐기물소각장이 또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동뿐만 아니다. 지금 의료폐기물소각장이 추진되는 곳들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공통점은 농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농촌지역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산업폐기물 공공책임제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을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생활폐기물은 공공(지자체)이 처리하는데, 왜 산업폐기물·의료폐기물을 민간업체들에게 맡겨놔서 이런 상황을 만드느냐'라는 목소리다. 산업폐기물은 생활폐기물보다 더 유해한 것이므로, 당연히 공공이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또한 '돈만 벌려고 하는 민간업체들이 산업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보장 또한 없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이 있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의 경우에는 수십 년 이상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데, 민간업체들이 돈만 벌고 떠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매립이 끝난 매립장에서 사고가 나거나 사후관리가 안 돼 국민 세금으로 사후관리를 하는 곳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지역주민들의 얘기가 옳다. 산업폐기물은 민간업체들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공공이 책임지고 처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미 민간업체들이 인·허가를 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곳들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신규로 설치하는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들은 공공성이 확보되는 주체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출자·출연한 기관들만 신규 매립장, 소각장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기존에 민간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공공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이렇게 공공에서 일정하게 책임지고 처리하며 민간업체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 그래야 산업폐기물이 무분별한 이윤추구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고, 지역주민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공공성이 있는 신규 매립장, 소각장들은 권역별로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자기 지역에서 처리하게 해야 한다.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 산업폐기물에서도 필요하다. 그래야 폐기물이 원거리를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나 위험성도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서 기존에 이미 설치된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규제강화가 필요하다. 산업폐기물시설이 생활폐기물시설보다 허술하게 관리돼서야 되겠는가? 불법행위 실태와 함께 주민건강권 침해, 토양·수질·지하수 오염 등 전면적인 실태를 조사하고, 최소한 생활폐기물 시설 이상으로 주민감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업체들이 가져가는 과도한 초과이익 환수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 뒷산에 소각장이 들어서도 이럴까
문제는 이런 논의가 대선에서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서울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나 소각장이 있어도 이럴까?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이 정말 필요하다면 서울에 지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산업폐기물매립장과 소각장 역시 지금처럼 사모펀드와 기업들에게 맡겨 놓을 것이면, 청와대 뒷산부터 그런 업체들에게 개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안전하다면 그렇게 못할 이유가 뭔가? 교통도 좋고 청와대 뒷산의 암반도 단단해 보이는데 말이다.
물론 진짜 그렇게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도시 사람들도 한번 역지사지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제발 산업폐기물 문제를 농촌 주민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우리 사회 공동체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특히 대선후보들부터 그런 인식을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