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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를 경주답게 보이게 해주는 대릉원.
경주를 경주답게 보이게 해주는 대릉원. ⓒ 경북매일 자료사진
 
이탈리아 로마에 가서 콜로세움만 보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로마에 갔다면 콜로세움과 함께 도시에 즐비하게 들어선 수많은 고대 유적을 보고, 이탈리아 전통가요인 칸초네가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얇고 담백한 피자 한 판은 맛보게 된다. 어떤 관광객이건.

프랑스 파리에 간다면 어떨까? 딱 에펠탑만 보고 파리를 떠나는 여행자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게 분명하다. 센강에서 유람선도 타보고, 프랑스 포도주도 한 병 마시고, 밤에는 물랑 루즈에 가서 화려한 쇼도 보게 된다. 그게 새로운 도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경주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유적이나 유물과 만나기 위해 긴 시간 자가용이나 버스,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가는 이들은 드물다. 그 사람이 특정한 유물이나 유적 한 가지만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면. 동궁과 월지는 빼놓을 수 없는 경주 여행의 보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만을 하루 종일 돌아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기엔 동궁과 월지 주변에 너무나 많은 천년왕국 신라의 '다른 보물들'이 흩어져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걸어서 30분 안팎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있으니 크게 힘을 들일 필요도, 번거로울 것도 없다.

동궁과 월지 지척엔 또 다른 경주 관광 랜드마크가...

흥미로운 관광지로서 동궁과 월지의 위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수원대학교 양정석 교수는 '세계유산으로서 동궁과 월지의 가치와 보존'에서 이렇게 쓴다.

"사적 제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경주 동궁과 월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26번지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사적으로 지정된 1963년부터 2011년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경주 임해전지로 불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주 임해전지나 동궁과 월지보다는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고 있다. 이미 임해전지라는 명칭으로 사적 지정이 되었지만, 발굴조사 당시에도 그리고 보고서가 나온 후에도 그 명칭은 안압지였다. 이렇게 안압지로 잘 알려져 있던 경주 동궁과 월지는 현재 경주 역사문화관광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양 교수의 표현처럼 동궁과 월지는 떠오르는 21세기 경주 관광의 랜드마크다. 낮과 밤이 모두 흥미롭고 아름답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동궁과 월지 한 곳만을 방문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왜냐? 주위에 '또 다른 경주 역사문화관광의 랜드마크'가 여럿 있기 때문.

지난 6년 동안 취재를 위해 경주를 100여 차례 찾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신라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품고 있는 동궁과 월지 주변 관광지 몇 곳을 소개하려 한다. 더불어 젊은 여행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경주의 핫 플레이스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덮치기 전엔 적지 않은 유럽 사람들을 경주에서 볼 수 있었다. 2017년 초여름이다. 20대 초반의 독일 대학생 둘을 만났다. 자기들 상식의 영역에선 '작은 산'처럼 보이는 능(陵·왕의 무덤)이 줄줄이 늘어선 생소한 풍경에 크게 뜬 눈으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그들에게 물었다.

"어때요? 놀랍죠?"
"네. 근데 저게 정말 무덤 맞나요?"


멀고 먼 유럽에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온 독일 학생 둘을 깜짝 놀라게 한 경주의 유적지는 다름 아닌 대릉원이었다. 동궁과 월지에서 천천히 걸어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자리한 신라의 또 다른 보물. '나무위키'는 대릉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옛 신라의 왕, 왕비,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 밀집 지역. 사적 제512호다. 대릉원이란 이름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미추 이사금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부분에서 따와 지었다. 대릉원이라고 하면 좁게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황남동 고분군 쪽을, 넓게는 바깥쪽의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등을 포함한다.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데다 경주 시가지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천마총처럼 신라 왕릉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고분도 있기에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거의 필수로 찾는 곳 중 하나다."

대릉원이 매혹적인 건 거대한 왕들의 무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능의 앞뒤로는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대릉원을 둘러싼 돌담길은 연인들의 낭만적인 산책 코스로도 그저 그만이다.
 
 밤이 내린 첨성대.
밤이 내린 첨성대. ⓒ 경주시 제공
 
천마총을 봤다면 다음은 길 건너 첨성대로

대릉원에 들어가서 천마총을 보지 않는다면 소가 빠진 만두를 먹는 것과 같지 않을까? 천마총은 동산처럼 솟아 있는 경주의 왕릉 내부가 어떤 형태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비단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둘러볼 가치가 충분하다며 경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천마총 방문을 권한다.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 천마총은 옆에 위치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발굴한 곳이다.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 같이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발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 1973년 발굴 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돼 천마총(天馬塚)이 되었는데, 이 천마가 말을 그린 게 아닌 기린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는데 금관, 금모자, 새 날개 모양 관식, 금 허리띠, 금동으로 된 신발 등이 피장자가 착용한 그대로 출토되었다.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우리들 생각처럼 명확하고 분명한 게 아니다. 인간의 삶 내부에는 언제나 죽음이 똬리를 틀고 있고, 삶 이후의 죽음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게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던 왕이건, 이름 없이 살다간 필부(匹夫)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공간 대릉원과 천마총을 살펴봤다면 다음은 거길 나와 조그만 도로를 건너 첨성대와 만나보면 어떨까.

대릉원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여행자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첨성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석조 건축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632~647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펴낸 책 <신라의 학문과 교육·과학·기술>은 고대국가의 천문과 역법을 설명하며 첨성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신라의 천문학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측면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나는 신라 왕궁 월성의 북쪽 노지에 우뚝 서 있는 첨성대(국보 31호)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수록된 30건의 일식 기록이다. 첨성대는 그 말뜻이 별을 바라보는 대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천문관측대로서의 조형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고, 정상부에 놓인 우물정자형 사각 틀과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둥그스름해지는 상방하원 형태의 곡선형 조형미가 가히 신라인의 하늘 이상을 잘 담아내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 옛날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빼어난 과학기술을 알게 해주는 첨성대는 중년의 한국인들에겐 '수학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도 유명하다.

1970~1980년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들의 집에는 까까머리나 갈래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은 채 첨성대 앞에서 친구들과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 한두 장은 있기 마련.

그래서일까? 첨성대 주변에선 들뜬 목소리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청춘시절을 이야기해주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주, 특히 첨성대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쉽게 포착되지 않을 정겹고 훈훈한 풍경이다.
 
 고풍스런 한옥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황리단길 풍경.
고풍스런 한옥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황리단길 풍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경주에 와서 황리단길을 빼놓으시려고?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맛집' 아닐까.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이미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황리단길은 독특한 감각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와 세계 각국의 요리를 세련되게 차려내는 식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황리단길 역시 대릉원, 첨성대와 묶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산보하듯 걸으면 금방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을 보자.

"황남동 포석로 일대의 '황남 큰길'이라 불리던 골목길로, 전통한옥 스타일의 카페나 식당, 사진관 등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의 많이 찾는 곳이다.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은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합쳐진 단어로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60~70년대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다."

정갈하게 개조된 한옥 레스토랑에서 크림파스타를 먹거나, 늘어선 기와지붕이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 주점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면 여행의 기쁨이 보다 커질 게 분명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관광객이라면 황리단길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동궁과 월지 주변엔 '또 다른 매력'을 갖추고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곳이 적지 않다. 그것들의 매력에도 빠져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동궁과 월지#대릉원#첨성대#황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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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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