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안 보이는 청년정책 토론.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대선후보 4자토론 총평이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2030 청년정책'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성남시절 시절 비리채용 의혹을 꺼내들면서 토론은 거대양당 후보간 공방전으로 흘러갔다.
그나마 다뤄진 청년 정책도 주택 정책에 집중됐다. 아쉬움이 크다. 물론 주택 등 주거정책은 청년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말이다. 제아무리 80~90%까지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완화해준다 하더라도 일단은 10~20%의 자산과 이후 대출을 갚아나갈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팍팍하게 사는 청년... 대선후보들이 언급 안 한 '첫 단추'
흔히들 한국은 교육열이 뜨겁다고 말한다. K-교육열은 무엇인가. 소위 '인서울 명문대'를 향한 입시 레이스다. '인서울 명문대'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날이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에서 '인서울 명문대'는 기본 스펙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같은 좋은 일자리의 수는 한정돼 있다. 그렇기에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면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청년들이 몰려든다.
그 수는 어마어마하다. 2021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청년의 1/3인 약 28만 명이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도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을 합친 채용인원은 약 3만4000명. 낙방한 24만 명가량은 다시 1년 동안 시험을 준비하거나 시험을 포기한다.
악순환은 여기서 시작된다. 청년층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몇 년씩 매달리면 자산을 형성할 첫 취업 시기 역시 늦어진다. 취업이 늦어지면 자연히 결혼도 출산도 늦어진다. 그러면 0.8명대의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첫 단추인 일자리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선 다른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청년의 삶을 나눠버린 '노동시장 이중구조'
K-청년의 K-취업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18년 '청년고용의 현황 및 대응방안'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청년고용 문제의 핵심은 대졸 이상 고학력 청년의 취업난이며, 중소기업 취업 기피 등 인력수급 미스매치로 인한 취업난의 비중이 높은 것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심화로 인해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 노동시장의 근로조건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청년 일자리'라는 제목의 보고서도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지나친 격차를 유발하고, 이는 다시 청년층의 대기업 선호와 중소기업 회피가 생애노동 측면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인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들었으며, 청년 실업과 중소기업 구인난이 병존하는 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현재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노동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1차 노동시장과 고용 안정성과 임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돼 있다는 이야기. 통계청에 따르면 1차 노동시장이라 부를 수 있는 상시 노동자 수 300명 이상 기업의 정규직은 전체 노동인구의 10.8%에 불과하다. 나머지 89.2%는 2차 노동시장에 종사한다.
2021년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격차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상시 노동자 수가 500명 이상인 대기업 대비 499명 미만인 중소기업의 평균임금 비중은 1999년 71.7%에서 2019년 59.4%로 지난 20년 동안 12%p나 낮아졌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평균 근속기간의 차이도 1999년 3.2년에서 2019년 4.7년으로 악화됐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333만6000원,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176만9000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로 집계됐다.
이중구조에 놓인 청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먼저 2차 노동시장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들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과 구조적 정비가 급선무다.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을 제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국가가 중소기업에 전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비단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삶을 꾸려나가기 부족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하는 '인서울 명문대'와 '지방 비명문대'의 이원적 입시제도 역시 손봐야 한다. 이는 곧 지방문제와도 연결된다. 지방의 청년들이 굳이 서울로 향하지 않고 자기가 살아온 지역의 대학에 입학해 그것이 지역의 질 좋은 일자리로 연계될 수 있게 한다면 교육과 지방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말은 쉽고 실질적 대안을 만들어내기엔 수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대안을 얘기해야 하는 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의 책무다.
여러 분야를 한정된 시간 안에 다뤄야 하는 TV토론의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11일 토론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즉 핵심의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않은 건 아주 실망스럽다. LTV니 뭐니 옥신각신한 것도 결국 '일자리를 가진' 청년에 한정돼 있는 이야기다. 중산층적 담론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이재명·윤석열에게 20대 청년이 건네고픈 한 마디
나는 20대 청년 당사자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두 후보에게 청년문제와 관련해 감히 조언하고 싶다.
지난해 4월 11일 윤석열 후보는 노동시장 전문가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를 만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대한 정 교수의 분석을 경청했었다. 당시 윤 후보는 정 교수와의 만남 이후 "청년들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취업, 결혼, 출산을 할 수 있겠나"며 "청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이 문제의식은 어디로 사라지고 '여성부 폐지'와 같은 남녀 청년을 갈라치는 행보에만 열중하나. 지금이라도 처음의 문제의식을 되짚어 보길 바란다.
이재명 후보는 사법고시 일부 부활과 정시 확대를 '청년 공정 정책'이라고 내세운 바 있다. 사시 부활을 통해 법조인의 길을 갈 청년의 수가 얼마나 되나.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으로 청년의 앞날을 크게 좌우할 입시를 결정하는 것이 어찌 공정이라 할 수 있나. 소년공 출신으로서 노동하는 청년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이들을 아우르는 더 큰 차원의 공정을 얘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