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을 주장하며 여당이 추진한 언론중재법을 비판하던 과거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상황은 이렇다. 윤 후보는 지난 12일 '열정열차' 안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MBC와 KBS의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하는지, 동의한다면 어떤 개혁방안을 생각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전날 기자협회 초청 토론회 공통질문이었지만, 윤 후보가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러자 윤 후보는 "제가 어제 그 말을 못 드린 것은 사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서"라고 말한 뒤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꺼냈다.
"왜곡 기사 하나가 언론사 파산시키는 인프라 자리잡았다면..."
"언론보도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거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라든가, 이런 것을 통해서 시간은 걸리지만 사법절차를 통해서 허위 보도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지우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저는 그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제도 뭐 기자협회에서 그 얘길 했죠. 자율 뭐 규제를 한다. 저는 그 내용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제가 볼 때, 저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 안 한다. 자율규제 그거 쉽지 않다. 그리고 방심위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사법절차, 언론중재위는 준사법절차 아니겠나. 이런 걸 통해서 언론의 자유, 취재원 보호는 확실하게 하면서 진실이 아닌 기사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확실한 책임을 지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어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그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시스템이 우리 언론 인프라로 자리잡았다면 제가 볼 때 공정성이니 뭐 이런 문제는, 그냥 자유롭게 풀어놔도 그런 것만이 자리잡는다면 저는 전혀 문제 없다고 본다."
한 기자가 "진실 왜곡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 맞나"고 확인하자 윤 후보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미국 같은 경우 좀 규모가 작은 지방언론사는 그런 허위 기사 하나로 회사가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내가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정도로 언론사와 기자가 보도를 할 때에는 그런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말씀이고. 아무래도 사법절차를 따라가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해가 더 심해질 수 있지 않나. 그러나 결론이 났을 때는 확실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뭐 대형언론사가 그런 소송 하나 갖고 파산하겠습니까만은, 예를 들어서 무책임하게 어떤 소형언론사가 던졌을 때 그 언론사는 보도 하나로 갈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더 확실한 책임감을 주면서 또 어떤 취재원 보호와 보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방법은 그런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는 그런 일도 나온다."
윤 후보가 말한 방식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언론사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언론중재법 개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에 반대해왔다. 윤 후보 본인도 지난해 8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을 "언론재갈법"이라고 부르며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로 삼아서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언론재갈법, 문 대통령 진심은 은폐의 자유인가" http://omn.kr/1ux0o)
민주당 비판하더니... "남이 하면 탄압, 내가 하면 책임 강화?"
'열정열차'를 탄 윤 후보의 생각은 지난해와 달라 보였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냐'는 추가 질문에도 "진실에 맞게, 1면에 썼으면 1면에 똑같은 크기로 보도해주고 이런 것이 있겠고. 그걸 만약에 피하고 끝까지 재판으로 갔을 때는 거기에는 상당한 배상책임과 여러 가지 제재가 따라야 한다"며 "책임을 묻게 되면 확실하게 묻자"고 대답했다. 다음날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도 "만약 법원이 아주 강력한 손배 판결을 내린다면 언론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론현업단체(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들은 14일 공동성명을 내고 "윤 후보의 발언은 무지와 내로남불로 점철된 언론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고 비판했다. 또 "(윤 후보는) 불과 6개월 여만에 손바닥 뒤집듯 징벌배상을 넘어 언론 파산까지 거론하며 그토록 비난하던 '사악한 시도'를 스스로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며 "남이 하면 언론탄압이고, 자신이 하면 언론책임 강화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언론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이대는 그의 사법 만능주의적 태도"라며 "과거 독재정권 시절, 언론에 대한 검열과 각종 탄압은 모두 윤 후보가 신주처럼 받드는 법 제도의 자의적 집행을 통해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로도 모자라 '언론파산'을 입에 담는 인식으로는 언론자유가 질식하고 권력감시가 불가능한 과거 회귀가 명약관화하다"며 "윤 후보의 오만한 발언에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엿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