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약소국이라고 폄하하고, 주변에 둘러싸인 나라를 대국 또는 강대국이라고 부르며, 오히려 자신을 주변국으로 상대화시켜 의식해 왔다. 물론 우리 주변국들이 인구, 영토 등 덩치가 큰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느냐와 주변에 머무르며 의식하느냐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본도 막부 말기까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쇄국정책으로 생존하려 했고, 시모노세끼 전쟁에서, 구미로부터 함포공격을 당해 선진국의 매운 맛을 보면서, 군사근대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메이지유신을 일으키고 일본이 생존하려면, 특별히 아편전쟁같이 서양 열강에 당하지 않으려면 군사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뜻을 모으게 된다.
일본이 자신을 열강으로 인식하는 것은 청일, 러일전쟁을 거친 후, 제1차대전에서 승전국의 반열에 올라서면서 확신하게 된다. 1차대전후 국제사회에서 신흥강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현재, 일본 학생들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대국이나 열강이라는데는 멈칫한다. 아직도 소강국 정도로 인식하려는 대학생들이 다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한 나라에 둘러싸여 있어, 옛 문헌에는 주변국을 대국 또는 열강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횟수가 줄어들어 드물어지게 되었다.
극장에서 나타나는 국제정치
국제정치에서의 행위를 극장에 비유할 때가 있다. 살벌한 현실주의 속의 국제정치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와 이를 바라보는 다수의 관객으로 나누어지는데,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은 무대에서 배우의 역할을 하는 주요국들 사이에서 협의로 이루어지며, 이를 관객인 다수국이 받아들이는 구조로 나타나게 된다.
오랫동안 한반도는 관객석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조선의 앞날에 관한 사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놀라운 변화란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고, 여러 성장 수치가 세계10위권 안밖으로 나타났고, G20 회원국, G7에 초대되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관객석에서 무대로 이동 중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북한이다.
유럽 선진국의 하한선
일본에서는 현재 G7에 속한 국가 중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을 앞서가는 선진국으로 인식하며, 오랫동안 그 나라들의 문화와 제도에 주목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일본에서 볼 때, 유럽 국가 중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선진국의 하한선이라 할 수 있는데, 국가 규모와 소득 수준으로 비교하여 받아들인 결과다.
구매력 평가 (PPP)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유럽 선진국의 하한선이라 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소득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즉, 일본의 가까운 거리에 이들 유럽 선진국보다 실질적으로 삶의 지표가 높은 한국이 들어선 것이다. 이들 나라 뿐만이 아니라, EU 평균 소득과 일본을 넘어선 것인데, 이는 단순히 혐한으로 공격하여 한국을 상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 된다.
남북한 체제경쟁
해방 뒤 남북한은 체제경쟁으로 생존의 우열을 가르며 진지하게 대결의식을 치뤄왔다. 냉전후 1991년 남북한은 국제연합 동시가입을 통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오늘날까지 체제경쟁을 지속시켜 왔다.
해방후 남북한 간의 체제대립은 이념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 대립에는 틀림이 없다. 냉전이후 세계를 승리한 자유진영과 패배한 공산진영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승리한 진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애매한 점이 있다.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남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더 이상 좌우대립이란 것은 이념을 기준으로 한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야당 제1당 국민의힘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념을 갖고 있지만, 북한에 거리를 두면서 어떻게 지원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려는가를 기준으로 이를 좌우로 가르려는 경향이 있다.
높은 수준의 경제력과 현대화된 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북한을 압도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려는 경향을 우파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지 않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통해 협력으로 다가서려는 경향을 기준으로 좌파로 구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룰 테이커에서 룰 메이커로
무대와 관객석에서의 역할이 다른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을 만드는 나라인가 아니면 이를 받아들이냐에 있다. 룰 메이커 국가군에서 지도력을 갖는 국가라면 혐한이라는 용어로 한국을 덧씌우기 어렵다. 자신과 관련한 사항 뿐만이 아니라, 이미 각국이 받아들이는 규범을 제공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 뿐만이 아니라 후발 주자로 나선 국가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미덕으로 요구된다. 통일을 위한 창구가 막혔다고 여기지말고, 끊임없이 북한에 대해 화해와 협력사업을 펼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세계와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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