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고단함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일'을 대하는 직장인들의 태도는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회사에 뼈를 묻고, 나를 갈아넣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일터에서 느끼는 의문점, 기쁨과 슬픔도 이전과는 다릅니다. MZ세대 시민기자가 '요즘 것들'의 생생한 직장 이야기를 나눕니다.[편집자말] |
"오늘 고과 나온 거 봤어?"
"응."
"어떻게 나왔어?"
"매번 나온 것처럼. 사실 고과는 C가 디폴트 값이라 의미 없잖아."
"그래도 나는 팀장님이 챙겨주셨어."
"C가 아니라고?"
1년 전,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동기와 고과를 서로 공유한 것이다. 내가 받은 고과는 C, 동기가 받은 고과는 A. 진급 대상자라고 지난번에도 A를 챙겨주셨다는 동기의 말을 듣고 평온했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블랙홀 하나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자발적으로 무급 야근하고 주말 출근했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ABC 중 누군가는 하위 등급을 받아야 하니 저연차 사원이 C를 받는 거라고, 나중에 따로 챙겨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선임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론 나처럼 C 콜렉터 동기도 있었지만 진급을 앞두고 A를 받은 동기들이 꽤 있었고, A를 서너개 챙겨 받았다는 동기도 둘이나 되었다. 혼란스러웠다. 나의 직장 생활,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직장인 75.8%가 고과 평가에 불만족
우리 회사의 평가체계는 일정 비율로 ABC를 할당받는 랭킹 시스템이다. 팀 내 누군가는 최하위 고과를 받아야 하고, 비슷하게 일했어도 A는 한두 명만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승진 가능성이 낮은 사람이 하위 고과를 받고 승진 시점 임박자가 상위 등급을 몰아서 받는 것이 관행이다.
1, 2년 차에는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내기 어렵다는 점과 나 역시도 승진 시점에 고과를 챙겨받겠지라는 생각에 평가 등급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기수 안에서도 고과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자 제일 먼저 내 실력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일을 정말 못하는 걸까? 동기들에게 일하는 방식을 물어보며 나의 개선점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동기들에게 배워야 할 점들이 있었지만 고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개개인의 실력 편차가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 회사의 평가체계는 팀내 인사 적체 정도, 리더의 판단력, 개인의 정치력에 큰 영향을 받는단 걸 이해하게 되었다.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고과로 C를 받은 동기들은 본인이 A를 받는 차례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고, 열심히 일하는 것에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다. 다른 회사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잡코리아가 직장인 351명에게 '인사평가 결과 만족도'를 주제로 조사한 결과 75.8%가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답했다. 불만족 사유 1위는 '평가 방법과 기준이 공정하기 못하기 때문'이었다. 흔히 '공정함을 중시한다'고 칭해지는 MZ세대가 아니라도 연봉에 영향을 미치는 고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인사 적체가 심한 팀에서는 고과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수가 팀 이동을 신청하기도 한다. 하던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고과를 못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에 회의가 들고 커리어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팀을 바꿔서라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고과인 것이다.
가마니가 될래? 정치도 실력이야
고과 시즌이 되면 다들 몸을 사리고 상사의 눈치를 살핀다. 평가자의 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평가의 주관성과 평가자의 재량권을 방증하는 것으로, 팀원들은 암묵적으로 성과가 평가의 전부가 아님을 받아들인다.
"정치도 실력이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뱉으며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성실하고 성과도 좋은 선배조차 본인 어필에 능하지 못해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낄 때면 정치에 거부감마저 든다. 학창 시절,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성민 배우)을 보며 느꼈던 울분과 안쓰러움이 멀리 있지 않았다.
사실 사내 정치는 어떤 회사도 자유롭지 않다. 사내 정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범주가 달라지지만, 자기 PR도 흔히 정치로 여겨진다. 글로벌 IT 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자기 어필에 강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고 호소했고, 공무원인 친구 역시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걱정했다. 100% 양적 평가가 아닌 이상 직장인은 사내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현대 분업 사회의 일반직에서 개인이 혼자 성과를 내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공(功)을 여럿이 나눠 가진다. 결과적으로 나의 성과로 돌아오는 부분은 작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티가 나지 않고 '가마니'가 되는 것이다. 평가자도 평가 대상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각 개인도 본인 PR을 해야 하는 이유다.
유의할 점은 자기 PR도 실력으로 인정되는 조직(평가자의 주관 개입)에서 평가 자체가 일방적(피드백 없음)이고 기준이 모호하다면 평가는 오히려 근로 의욕을 감소시키고 비생산적인 감정노동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낮은 고과를 받으면 그 타당성에 의구심이 생겨 조직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것이고, 좋은 고과를 받으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사가 고과를 잘 챙겨준 것으로, 강요된 고마움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의 목적이 노동자의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인적 자본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지금의 제도가 과연 그 목적성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든다.
어차피 모두가 만족하는 평가제도는 있을 수 없다. 고과를 잘 받은 사람은 현재 평가 시스템에 만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평을 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업계, 직무, 시대에 따라 적합한 평가 방식이 다르니 효과성 측면에서도 완벽한 제도는 있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델 같은 글로벌 선두 기업들도 순위를 매기는 랭크(rank) 시스템을 폐지하고 360도 다면 평가를 시도하는 등 계속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평가가 완벽하지 않아도 신뢰와 투명성, 소통(피드백)이 자리 잡은 조직이라면 평가의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를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평가제도가 놓치는 부분을 조직문화로 보완하려는 이유다.
세상이 그대를 작게 만들지라도
희소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대부분 경쟁을 해야 한다. 학생 때는 시험을 보고 점수에 따라 순위가 매겨졌다. 내 노력에 따라, 나의 실수 여부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기 때문에 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며, 노력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음을 알아가고 있다. 시험처럼 맞고 틀리고를 분석해 내가 보완할 점을 쉽게 알면 좋을 텐데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다 보니 직장생활은 오답 노트를 작성 하기가 어렵다. 성실히 일하고 도움이 되는 팀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하지만 그만큼의 고과가 나오지 않는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게서 문제를 찾고 비슷한 직급의 경쟁자들과 나를 비교한다. 그리고 대개는 그 반복 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착취를 하게 된다. 각 팀과 각자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고 결과 측면에서 견주게 되기 때문이다.
계속 C 고과만 받다가 진급을 앞두고 B를 받은 적이 있다. 직속 상사는 본인이 팀장님께 내 고과를 챙겨달라고 말했음을, 다섯 번 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얻은 B였다. 의무적 고마움과 함께 느낀 것은 내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마침 팀장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어 여쭤보았다.
"고과를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켜야 할까요?"
"아니야, 지금도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그냥 계속하면 돼."
그리고 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A를 받지 못한 것이 구조적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팀장님의 피드백이 없었다면 나는 고과가 보내는 시그널을 잘못 이해해 자신감을 잃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 실력 때문이 아님을 알았기에 털고 나아갈 수 있었고 누락 없이 진급했다.
그 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에서 평가로 환원되지 않는 많은 순간들과 인사이트들을 기록했다. 책과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들, 내가 한층 성장하게 된 도전들, 실패한 일화들과 직장생활의 회의들.
그것들을 스스로 인정해주고, 내 글이 좋은 자극이 된다는 친구의 말에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나의 야근과 주말 노동은 일기로 남아 나의 성장 흔적이 되었고, 트렌드 및 상품 공부는 나의 전문성이 되었다. 고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나의 반짝임을 내가 스스로 주목하고, 주변과 나눔으로써 자기 효능감이 높아졌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강점이 있다. 엑셀을 잘한다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시각화를 잘한다거나, 분석을 잘하다거나. 지금 직무나 팀 또는 현 상황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는 강점일 수 있지만 어느 때, 어느 곳에서는 도움이 될 강점들이다. 그 강점이 기회를 만날 때 본인의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본인에게 맞는 조직을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경쟁구도에 들어가고 자존감이 위협받고 스스로의 쓸모에 의문을 갖게 되는 시기가 온다. ABC 등급으로 재단되어 나라는 복합적인 사람이 고기 등급처럼 낙인찍히고 납작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죽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반짝임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으며 평가 기준엔 없지만 조직에 도움이 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본인의 강점을 잊지 말자.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반짝임을 믿기로 하자. 세상이 그대를 끊임없이 작게 만들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