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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재외투표가 2월 25일 오전 8시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됐다. 사진은 올랜도우성식품 다목적실 앞에 세워진 선거 안내판.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재외투표가 2월 25일 오전 8시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됐다. 사진은 올랜도우성식품 다목적실 앞에 세워진 선거 안내판. ⓒ 김명곤
  
"웬만하면 오지 그래? OOO 후보 2표차로 낙선하면 너희 책임이다. 알았지?" 

2월 25일 오전 미주 지역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 재외투표소 앞에서 한국 유학생 김재원(25)씨가 친구에게 투표 독려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씨는 함께 차를 몰고 오기로 한 친구들이 전화도 받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2시간 거리 투표소까지 혼자 왔다고 했다. 

25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플로리다 지역 20대 대선 재외투표는 코로나 여파로 19대 대선 때보다 등록선거인이 줄기는 했지만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화씨 90도(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1-4시간 거리를 달려왔다.

이번 선거는 초박빙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국 정치의 '쇼케이스'라 불리는 플로리다 주의 여론은 어떨지 궁금해 30여 명의 투표자를 무작위로 인터뷰했다. 양적 조사(quantitative research) 도구인 통계치로만 잡히는 '민심'은 이미 나와 있으니, 질적 조사(qualitative research) 방법 가운데 하나인 인터뷰를 통해 '바닥 민심'을 전하고자 한다. 

질적 조사에서는 응답 내용(언어)뿐 아니라 응답자의 제스처, 말 더듬, 미소, 한숨, 찌푸림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nonverbal) 요소가 큰 역할을 한다. '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었나' 또는 '후보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나'와 더불어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얻었나' 등을 동시에 물었다. 답변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회피성 응답은 제외했다. 

인터뷰는 25~27일 사흘 간 오전 오후 각각 두 시간씩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투표하고 나오는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니 
 
 2월 25일 오전 8시부터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된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첫 투표자 최아무개(62)씨가 투표하고 있다.
2월 25일 오전 8시부터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된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첫 투표자 최아무개(62)씨가 투표하고 있다. ⓒ 김명곤
 
25일 오전 8시 반 문을 열자마자 투표소를 찾은 올랜도 거주 최OO(62)씨는 "5년 재임한 정권에 대해 심판하러 왔다"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분 쯤 지나 올랜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상준(65)씨가 부인과 함께 왔다. 먼발치에서부터 기자를 알아본 그는 투표장 앞에서 하소연 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 경제, 남북문제 등 너무 준비가 안 된 엉뚱한 후보가 나왔다.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 등 나라 망칠 듯해서 투표하러 왔다. 그렇게 인물이 없나?" 

뒤를 이어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고르며 가방을 든 채 급히 투표장에 들어가는 남성을 발견했다. 금방 나온 그는 마이애미애서 여행 가이드를 한다는 양상근(61)씨였다. 

"오는 내내 중앙선관위 대선토론 들으면서 3시간 반을 안 쉬고 달려왔다. 초박빙 상황이라 꼭 투표하러 왔다. 막말하는 OOO 후보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라는 큰 배를 이끌 역량이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10시께가 되면서 주로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거리의 대학교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이 밀려 들어왔다. 대부분 생기발랄했고 유쾌한 표정들이었다. 질문에도 흔쾌히 임했고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에 다닌다는 이상인(19)씨는 "첫 투표라서 설렜다. 청렴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을 뽑으러 왔다"고 했고, 플로리다대학(UF) 유학생 차아무개(33)씨는 "선거초반에 결정했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후보를 택했다"라고 했다. 센트럴플로리다대학(UCF) 유학생 김한빛(30)씨는 "꼭 '이 사람이다'는 후보가 없었다. 정책을 보고 차악의 후보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 교관 이준세(27)씨는 "후보 자체보다는 젊은이가 대표로 있는 당의 청년정책을 보고 뽑았다"라고 했고, 최왕(49)씨는 "정쟁으로 소모적인 양당제 없어져야 한다. 참신한 이미지의 새 정당 인물을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데이토나 비치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 유학생들이 투표장에 입장하기 앞서 안내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데이토나 비치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 유학생들이 투표장에 입장하기 앞서 안내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명곤
   
답변 속에 드러나는 이름, 숨겨지는 이름

이민 온 지 오래된 동포들은 자유민주주의-친미 후보를 지지하는 층,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를 계승할 후보를 지지하는 층으로 확연히 갈렸다. 일부 투표자들 가운데는 '참신한 제3의 후보'를 선호하는 측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기자가 '특정 지지 후보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인터뷰 초입에 부탁했는데도 후보 이름을 굳이 밝히는 투표자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답변 속에 '이재명'은 드러났고, '윤석열'은 숨었다. 

플로리다대학(UF) 한인학생회장인 황보승우(34)씨는 "인물보다는 당을 보고 투표했다. (국회의) 밸런스가 문제다. 정권교체와 변화를 원한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올랜도 거주 한OO(44)씨는 "누가 돼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제에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했다"라고 했다. KBS '정치합시다'와 네이버 메인뉴스를 주로 보았다는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FIU) 김OO(30대 후반)씨와 김은영(20대 후반)씨도 경제정책을 보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를 뽑으러 왔다'고 말한 투표자들 가운데는 성남이나 경기도에서 살다 이민 온 분들이 많았다. 이들은 인터뷰 중에 스스로 지지후보를 밝혔다. 

버지니아에서 탬파로 아들(18)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민OO(51)씨의 아내(44)는 "이민 오기 전 성남에서 애들 셋 데리고 어렵게 살았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도시공학을 전공한다는 유학생 권OO(40대 후반)씨는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개인적 역량을 봤다. 주택정책, 실질적 행정, 피부로 느낄 만한 정책 추진력을 보여줬다"라고 구체적인 지지 이유를 밝혔다. 
 
 2시간 거리 탬파에서 달려온 민OO(51)씨 가족이 투표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시간 거리 탬파에서 달려온 민OO(51)씨 가족이 투표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명곤
 
"촛불혁명 계승할 후보" vs. "자유민주주의 지킬 후보"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가치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한 교민들도 눈에 띄었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USF) 약학대학 연구원 김종월(57)씨와 부인(48)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 꽃 피워낼 사람,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실히 다질 후보가 답이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날 오후 투표장을 찾은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FIU) 장호욱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후보 자질을 주로 고려했다. 현 문재인 정부를 이어갈 분을 쉽게 택했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한겨레, 경향 등을 주로 본다는 센트럴플로리다대학(UCF) 조형진 기계공학과 교수(55)는 긴 숨을 내쉬며 "1980년대 민주항쟁, 최근의 촛불혁명 등으로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엉뚱한 사람에 의해 무너질 지도 모른다"라면서 "경험, 미래 비전, 정책 수행능력 보고 뽑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마이애미에서 온 임OO(39)씨 부부는 "고민 많이 했다. 다른 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지도자를 원한다"라고 했고, 진성호TV, 김동길 교수, 김영호 교수의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 김진아 할머니(75)는 "자유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미와 중국에 가까운 정책을 추진하는 후보는 반대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올랜도 남부에 사는 조모(78) 할머니는 "한국이 너무 좌파로 바뀐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어떤 나라냐! 기독교를 전해주고 6.25 전쟁 때 우리를 살린 나라다. 영육간에 은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안 오던 투표장 찾은 목회자들

이번 재외투표에서 매우 특이하게 나타난 현상이 하나 있다. '종교적' 이유로 투표장에 나타난 목회자들이다. 기자가 인터뷰 도중 '우연히' 만난 개신교 목사는 다섯 명이다. 지난 19대 대선 취재 때도 여러 시간 투표장을 지켰으나 한 분의 목사를 만난 게 고작이었다.  

올랜도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한인교회 박OO(53) 목사는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투표하기로 마음먹었다"라면서 "신앙이 바른 기독교인이라면 정치 이념이 신앙보다 앞설 수 없다. 신천지와 관련 있고 무속에 빠진 사람에게 투표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두 시간 거리의 탬파 새믿음교회 김춘식(56) 목사는 "'캘리포니아 풀러신학교의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교수가 '3월 9일은 기독교인들이 신앙 고백하는 날'이라고 하더라. 어떻게 무속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투표장을 찾은 목사들도 있었다. 

탬파에 거주하며 댈러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가르치는 강민희(50대) 교수는 "한국을 오가며 젊은 사람들이 희망,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현 정부는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에 실패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후보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올랜도 제일장로교회 김문수 목사는 "기본적으로 신앙 문제는 선택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종교인이기는 했지만 정치를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라고 했고, 한국에 거주하다 잠시 귀국하여 투표장을 찾은 김석원(77) 목사는 "무속논란은 여당의 프레임으로 본다.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새로 출범한 중앙플로리다한인회(회장 이재화)가 우성식품 투표장 앞에 따로 안내판을 설치해 두고 투표를 마치고 나온 동포들에게 마스크, 소독제, 생수, 스낵 등을 선물했다.
최근 새로 출범한 중앙플로리다한인회(회장 이재화)가 우성식품 투표장 앞에 따로 안내판을 설치해 두고 투표를 마치고 나온 동포들에게 마스크, 소독제, 생수, 스낵 등을 선물했다. ⓒ 김명곤
   
늘 그렇듯 플로리다 대선 재외투표 인터뷰에서 도출된 핵심 키워드는 '교체'냐 '유지'냐였다. 젊은 층과 노년층에서는 정권교체를 통한 변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분명하게 감지됐다. 반대로 50대 또는 한국에서 민주화 과정에 직접 참여했거나 경험한 측은 '집권 연장'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의 결실을 요구하며 집권연장을 기대했다. 

한편, 올랜도 투표소를 포함하여 애틀랜타총영사관 관할 4개 투표소의 총 투표자 현황을 보면, 등록 유권자 5527명 가운데 3748명이 투표해 67.81%의 투표율을 보였다. 지난 19대 대선 투표자 4276명(70.5%)에 비하면 528명(2.7%)이 줄었다. 투표소별로는 애틀랜타 2610명, 몽고메리 416명, 올랜도 391명, 랄리 331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애틀랜타 #재외국민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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