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민 정의당 전 대변인이 반려묘 '참깨'와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당인, 1인 가구 여성 청년, 그리고 반려묘 참깨의 집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
점점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산불을 피하지 못한 강아지의 죽음, 전쟁의 공포 속에서 개구호흡을 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착잡한 건 "지금 동물까지 챙겨야 하냐"는 일부 사람들의 핀잔이었다.
20대 초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사회활동을 할 때 두려웠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게 된다면 그만큼 일상에서 아파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반려묘 참깨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동물들의 삶 역시 너무나 중요해졌다. 이는 동물과 여성인 내가, '누구에게든 위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지금 _ _ _ _ _까지 챙겨야 하냐"라는 핀잔의 빈칸에 '여성의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말이다.
"집 가면 연락해!"
나는 동네에서 함께 지내던 여자친구들과 카톡방을 통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 카톡방에서 자주 공유되는 링크는, 살해되거나 맞았거나 협박받은 여성의 사례가 담긴 기사다. 어느 누구도 그런 소식을 공유하자고 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뉴스에는 애써 찾지 않아도 여성들의 피해 소식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이건 그 여성만 처한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10년 전, 내 친구는 휴학 한 번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초중고 빛나는 개근상의 주인공이라며 항상 어깨를 으쓱하던 친구는 그렇게 곧장 취업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내게 큰 어른처럼 보였다.
나는 친구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때 그가 해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직장인의 필수품'이라고 표현하던 호신용 삼단봉에 대한 이야기였다. 친구는 일을 시작하고, 귀가가 늦어지면서 그 삼단봉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그 친구에게 "왜?"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거 작동은 잘 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것을 왜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친구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나뭇가지로 우거져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나와 친구는 삼단봉을 펴며 조금 낄낄거리기도 했다. '누구든 위협하면 이걸로 세게 쳐야겠다'며 웃었던 것이다. 일상의 공포와 두려움을 유머러스함으로 애써 소화해온 우리는 사실 웃기지 않았다. 헤어질 때 "집 가면 연락해!"라는 말을 당연한 안부 인사처럼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성들은 '오늘'을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하고 정보를 모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생존 전략'을 찾아나선 여성들
슬프게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된 후, 후보자들의 토론회를 보며 나는 인터넷에 호신용 삼단봉을 검색해보고, 이중 잠금 장치를 찾아보았다. 소위 '유력' 대권 주자 중에, 여성이 느끼는 공포와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후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의 삶을 대변해줄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지지 요청도 하고 정의당 정책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니 대선 투표를 앞두고 많은 여성들은 '생존 전략'을 찾고 있었다.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며 1초에 한 번씩 마음을 번복했다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고 페미니즘에 선 긋는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이른바 '차악' 후보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곤 '최악을 막기 위한 선택'을 해서 미안하다며, 심상정 후보에게 표 대신 후원으로 마음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 심상정 후보가 10일 선거대책본부 해단식 자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밤새 정의당에 총 12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고 한다. 이 같이 큰 규모의 후원금이 모인 것에 대해, 박원석 정의당 공보단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눈물을 머금고 최선이 아닌 차악을 찍어야 했던 2030여성들을 비롯한 심상정 지못미 후원이 쇄도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나는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여성들을 보며 이들이 가졌던 두려움'들'이라는 감정을 알 것만 같아 서러웠고, 슬펐다.
제20대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내 꿈엔 대통령 당선인이 나왔다. 퉁퉁 부은 눈으로 잠에서 깨보니 트위터에서는 실시간으로 '호신용품'이 검색되고 있고, 여성들은 일상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부디 윤석열 당선인이 여성들이 가졌던, 가질 수밖에 없었던 두려움'들'에 대해서 잊지 말고, 알려고 노력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 간절히 오늘을 살아내고 싶었던 여성들의 마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말이다. 그간 보여왔던 행보에 비춰볼 때 큰 기대를 걸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간절히 부탁드린다.
나는 그가 부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