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올해 열두 살이 되었다. 열 살, 일곱 살이 된 조카들과 딸이 하는 대화를 들었다.
"누나는 이제 열두 살이야! 이제 너도 드디어 십 대가 되었구나!"
딸은 열 살이 된 사촌 동생에게 축하한다는 듯 말했다.
"응, 나도 이제 십 대야."
열 살이 된 조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 옆에 있던 막내 조카가 질세라 말한다.
"나는 칠대야. 일곱 살이 됐으니까."
딸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칠대가 뭐야? 넌 아직 아무 대도 아니라고. 칠대라면, 음, 칠십 넘은 할아버지랑 같은 대라는 말인데? 너 이제부터 할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불러."
일곱 살 조카는 배를 잡고 웃는다. 옆에서 듣던 나도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기쁜 일이다. 언제까지 그게 기쁜 일이었던가, 까마득하다.
열두 살이 되어 기뻐하는 딸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멋진 열두 살>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엘리라는 열두 살 주인공이 4계절 동안 겪는 여러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 챡이다. 그 나이 때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잘 다루었던 것 같아 도서관에서 다시 빌렸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인데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부분이 많다. 판타지물 아니면 추리물만 읽는 딸이 이런 책도 재미있게 읽을까. 사실 요즘은 그나마 읽던 책도 잘 읽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3년째인 지금, 아이는 많은 시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의지하고 있다.
그래도 자기 전에 읽어주면 좀 듣지 않을까? 깜깜한 밤, 침대에 누운 아이는 하루 중 가장 어려 보인다. 수면등을 켜고 책을 펼친다. 아이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밤은 감성이 풍부해지는 시간이라 그런가, 별로 웃기지 않은 부분에서도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 아이의 반응이 고마워 내가 더 크게 웃는다.
주인공 엘리는 언니가 4명이 있는 집의 막내딸이다. 아빠, 엄마, 언니들 그리고 총알이란 이름의 개와 함께 산속 마을에서 산다. 엘리는 언니 두 명과 같은 방을 쓴다. 엘리의 소원은 언니들이 다 사라지고 자기 방을 갖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올빼미가 가득한 벽지에 장미꽃 무늬 침대보를 덮고 침실 옆에 작은 램프를 두고 자는 모습을 상상한다. 참, 또 아빠가 자신을 귀염둥이라고 불렀으면, 하고 바란다.
딸은 엘리가 가지고 싶다는 올빼미 벽지와 장미꽃 무늬 침대보가 너무 촌스럽다며 웃는다. 그리고 엘리와 달리, 자신은 아빠가 '귀염둥이'라고 부르는 건 질색이란다. 난 딸은 외동이라 이미 자기 방이 있어 소원이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만 했다. 그러나 딸은 엘리처럼 개와 개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어떤 개를 키우면 좋겠냐면……, 그리고 개집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냐면……." 딸의 소원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엘리의 1년도 즐겁고 슬프고 기쁘고 실망스러운 일들로 채워진다. 딸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는 엘리의 이야기와 밸런타인데이 이야기 그리고 처음 간 파티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는 이 책에 대해 독서록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아이의 독서록을 보니 전혀 뜻밖에 '에펄리 할머니' 부분이 가장 감명 깊었다고 쓰여 있다. 엘리가 같은 동네에 사는 에펄리 할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고 너무 예뻐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엘리가 노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에펄리 할머니, 할머니는 얼마 동안이나 예뻤어요?" 하는 거였다. 얼마 동안이나 예뻤나요? 집에 돌아온 엘리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젊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예쁘다는 것에 대해서도. 또 아빠에 대해서도. 엘리는 다시는 마음속으로라도 그 노인을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142p.
"네가 적은 부분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아? 왜 이 부분이 좋았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 주위의 모든 노인들도 다 청춘이 있었다는 게 좋았어"라고 말했다. 아이와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청춘에 대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아이의 지금처럼 모두 다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는 나와 할머니의 과거를 상상하며 신기해하고 난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며 아쉬워한다. 엘리가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듯, 내 아이도 나에게 모든 걸 말하진 않을 거다.
그래서 자기 전 아이와 책 읽는 시간이 귀하다. 아이가 밤의 기운을 빌려 마음을 여는 시간이다. "나도 그런 일 있었어" 또는 "내 소원은 말이지……." 하면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아휴, 무슨 자기 전에 책이야, 내가 어린 앤가?" 하겠지.
며칠 동안 밤에 책을 읽어줬더니 놀랍게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전날 내가 읽어 준 뒷부분을 스스로 찾아 읽는다. 밤의 독서가 낮까지 이어진다. 이만하면 작전 성공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반납했다. 아이는 밤이 되자, "오늘은 책 없어?"라며 서운해한다. 아이의 그 말이 반갑다. 그래, 어려울 게 뭐냐. 난 바로 오늘 또 다른 책을 빌려왔다.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 한 열두 살 자기 전 책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