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 뱃속을 데운다. 오랜 시간 푹 끓여 담백하면서도 진한 육수에 소머릿고기를 아낌없이 넣어 상에 올린다. 숟가락질 한 번에 몇 점이 올라올 만큼 푸짐하다.
시장에 나무나 찬거리를 팔기 위해 새벽부터 이른 길을 나섰던 이들이 허기진 속을 달랬던 맛이다. 포장 아래서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후루룩 들이켰을 터. 막걸리와 함께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좋은 값으로 송아지를 팔아 상기된 어느 가장의 자랑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예산장터국밥'에 스며든 풍경들이다.
1926년 개장한 예산장(충남 예산군)은 한때 사람에 치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장항선이 개통된 뒤 서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가 되며 충청도 전역에서 장이 서는 5·10일마다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음식이 빠질 수 있으랴.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 근처 도축장에서 신선한 고기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어 '백종원국밥거리' 건너편에 있던 우시장 주변에 국밥과 국수를 파는 집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구한말 향천동(향천리) 쪽에 소와 돼지 등을 잡던 피천말이 있었어요. 당시 향천리에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아 고기를 부위별로 광주리에 싸다가 양반들에게 팔곤 했지요. 원래 도축장이 있던 자리가 공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당시 예산·덕산·서산·태안군수가 공주에 회의하러 갈 때마다 도살장을 지나쳐 가야 하니 대회리 공주대 인근으로 옮겨가게 된 거예요."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이 풀어놓은 옛이야기가 흥미롭다.
지금까지 영업을 하는 국밥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식당은 윤순희(77) 대표가 어머니 신승례 여사의 뒤를 잇고 있는 '60년전통 예산장터국밥'이다. 신 여사는 우리지역 독립운동가인 일연 신현상 선생 동생으로, 국밥장사를 하며 7남매를 키워냈다.
조세제 예산시장상인연합회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1974년 이곳에 들어와 신씨할머니 국밥집을 자주 갔어요. 원래는 부잣집이었지만 신현상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으며 가세가 기울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뒤 국밥을 팔기 시작하셨대요.
그때는 우시장이 컸어요. 난전에 광목으로 포장치고 소머리를 사다가 밤새 끓여 밥과 국수를 말아 팔고 그랬죠. 긴 목로의자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할머니가 인심이 아주 후한 분이어서 항상 양껏 내주셨어요. 국밥이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먹던 서민 음식이잖아요. 배고픈 사정을 알고 베푸신 거죠."
현재 위치에 들어선 건 군이 지난 2017년 '예산시장 다목적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식당 7곳을 입점시켜 국밥거리를 만들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시장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장날만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상시영업을 하고 있다.
윤 대표는 "어머니한테 앞치마를 인수받은 지 30년 정도 됐어요. 그때 나이가 84세셨죠. 그러고 2년 뒤에 돌아가셨어요. 인수받기 전에도 계속 같이 했어요. 그때는 장에 사람이 말도 못 하게 많았어요. 대술·신양지역에서 흰 바지저고리 입고 온 나무꾼들이 가지런히 묶은 나뭇짐을 옆에 받쳐놓고 국밥이랑 막걸리를 먹고는 했지요"라고 설명했다.
예산장터국밥은 암소 머릿고기를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돼지내장 등을 섞어 썼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사용하지 않게 됐다. 경제 사정이 점차 나아지며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화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고기가 들어오면 먼저 핏물을 뺀 뒤 잡내가 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닦아 커다란 압력솥에 넣어 4시간 이상 익힌다.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 뚜껑 위에 무거운 돌 여러 개를 올려두기도 한다. 부드러운 육질을 유지하려면 불 조절이 관건이다. 육수는 고기를 삶을 때 나온 국물과 소뼈를 2시간 넘게 우린 것을 섞어 사용한다.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위에 뜬 기름은 걷어낸다.
3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성민네소머리국밥 채동자(76) 대표의 설명이다.
"숫소를 써보니 고기는 많이 나오는데 비계와 껍질도 많아 암소만 써요. 더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나죠. 고기와 뼈로 곤 육수는 주방에 있는 큰 냄비로 옮긴 다음 무와 선지를 넣고 푹 끓여 깊은 맛을 더해요. 그 국물을 떠 고기와 다진마늘, 고춧가루, 소금, 대파를 넣어 한 번 더 끓여 상에 올리는 거예요."
예산장터국밥은 맛도 맛이지만, 푸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예부터 배고픈 장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니, 부족하지 않도록 인정을 더했기 때문일게다.
채 대표는 "옛날에 포장 치고 장사할 때 손님들이 비 맞아가며 먹을 정도로 국밥을 좋아했어요. 그 시절 추억으로 찾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인구가 줄고 시대가 변화하며 그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허한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소울푸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