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파병, 국지적 남북 군사충돌이 종료된 평시에도 장병들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아왔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는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대대 의무병 윤 일병 피살사건(2014.04.07)과 제22보병사단 제55연대 GOP 임 병장 총기난사사건(2014.06.21)이 발생해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안타까운 마음을 안겨줬다.
그 이후 우리 정부와 군은 그 이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자살률 감소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병영문화개선 정도를 추측할 수 있는 근거인 국방통계연보와 국가통계포탈을 보면 군 내 자살사고는 2011년 97건에서 2020년 42건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세계일보 2021.09.03.기사 [D.P가 그린 2014년 요즘 군대 진짜 좋아졌을까?]).
그러나 군대 내 인권상황 및 의료지원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최근 전역 군인 A씨는 최근 마음건강질환 커뮤니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저는 관심병사였습니다. ADHD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 입원도 했고, 약도 먹었죠. 당연히 비밀유지 같은 건 없었고, 중대장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두 번 저를 위해서 병원 배차를 해 줬습니다. 배차야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지만 갈 때마다 제가 정신의학과를 가야 해서 간다고 모든 인원들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번은 약봉지를 들어보이면서 이건 비타민이랑 다를 바가 없다, 먹으나 안 먹으나 똑같다 짜증내더니 부대에서는 잃어버렸다며 약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서랍을 뒤져서 제때 약을 챙겨먹었죠. 약은 약이고 배차는 배차입니다만, 그보다 더 괴로운 건 부대 내에서 그런 생각에 이견을 가지는 사람,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 참 큰 고통이었고요.이해해줄 수 있는 간부가 있었다면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그렇지 않았을까요?'
또다른 전역군인 B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전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아왔고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서 어차피 가야 할 군대에서 고생해보고 정신 차리기로 마음 먹었어요. 전 원래 우울증이 있는 건 알았고 ADHD도 짐작은 했지만 그건 내가 나약하고 게을러서 그렇고 노력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거든요. 참 안일한 생각이였죠.
군 생활로 제가 정말 정상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괴감을 느꼈어요. 다른 사람들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적응하는데 난 말도 못 알아듣고, 의욕도 없고, 이름도 못 외우고, 실수하고...
여러 사건사고를 겪고 모두에게 최악의 관심병사로 찍히면서 깨달았어요. 난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걸. 그때부터 상담도 받고 군 병원에서 우울증 약도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군대는 관심 병사를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관심 병사는 간부들이나 같은 병사들도 대부분 싫어합니다. 신체적인 폭력은 없지만 집단 따돌림은 존재합니다. 복무 기간 내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전 소란을 일으키기 싫었고, 신고해봤자 상황이 나빠지기만 한다는 걸 알았기에 신고는 하지 않고 참았습니다. 관심 병사라서 열외된 근무도 있었기에 죄책감이 있었기도 하고요.
운이 나쁘면 꾀병으로 여기고 괘씸하게 생각해서 일부러 힘든 부서로 파견 보내는 간부들을 만날 수도 있어요. 다시 원래 부서로 돌아왔을 땐 쟤도 고생하고 오니까 정신 차리고 일한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참기만 하는 게 얼마나 바보짓인지 깨달았던 건 이런 간부들 덕분이기도 하네요.
무엇보다도 ADHD는 군 병원에서는 제대로 치료받기 힘들어요. 제가 갔던 군 병원은 상당히 큰 곳이였음에도 불구하고 ADHD 치료약은 없었어요. 자기 병을 아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방치하고 참는 일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습니다.'
최근 부대관리훈령의 담당부서인 국방부 병영문화혁신팀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과거의 보호관심병사 관리에 비하여 요즘의 장병병영생활도움제도의 도움등급과 배려등급병사들은 철저히 관리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하여야 할 부분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신질환병사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약하고 충동적이며 우울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을 수 있다. 복무의지가 강하여도 약물공급 및 상담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정보보호가 철저히 관리되지 않으면 자살이나 군무이탈, 총기사고, 왕따, 구타, 가혹행위 등의 가해자 및 피해자로 연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정신질환병사를 실무부대에 배치하기 전에 보충역 및 전시근로역으로 적극적으로 병역처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현행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국방부령 제1061호) [별표3]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에 따르면, 중등도(6개월 이상의 지속적이고 충분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약물치료 등 치료력이 있거나 1개월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입원력이 확인된 사람) 가운데 진단을 내리기 위한 여러가지 증상이 있으며 이로인한 사회적 직업적 기능장애가 있는 경우 평가기준 병역4급(보충역, 사회복무요원)으로 규정돼 있다.
병무청 의사(징병전담의사, 임기제공무원)들은 이미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 장애는 병역 5급 전시근로역으로 잘 판정하고 있으나 우울, 불안, 강박,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특정학습장애 등 최근에 급증하는 질환에 대하여는 보다 과감한 병역4급 보충력의 판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방부와 병무청 당국은 병력자원이 부족하다고 현역 판정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방개혁은 군인권과 함께 이루는 국민의 뜻이 반영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한민국ROTC민주포럼 공동대표, 군인권센터 회원, 예비역 육군중위(학군29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