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슈가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국민통합이 중요한 판국에 오히려 대립과 반목할 이유가 늘었다. 주지하다시피 대선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정확히 양분됐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지만 0.73%(24만 표) 박빙 승리였다.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가기 힘든 형국이다.
국민통합이 최대 이슈로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국민통합을 입에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축하 메시지를 전하면서 국민통합을 당부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20‧21일 청와대와 인수위 간 공방은 아슬아슬하다. 20일 윤 당선인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선 11일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직접 현안을 설명할 만큼 파격적인 기자회견은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보게 했다. 대략 세 가지 명분을 제시했다. 국민소통, 탈권위주의, 효율적인 국정운영이다. 다음날 청와대는 "무리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정권 교체기에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주관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국방부와 합참,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5월 10일까지 이전하는 건 무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수위는 2시간 30분 만에 즉각 입장을 내놨다. 입장문은 잔뜩 날이 서 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협조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통의동에서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라며 당선인 입장을 전했다. 인수위 사무실로 쓰고 있는 금융감독원 연수원을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겠다고 배수진 친 셈이다.
국민의힘과 인수위 주변에서는 험한 말들도 쏟아졌다. "대선 불복이자 몽니." "노골적인 어깃장." "새정부 출범에 흙탕물." "물러나는 대통령이 협조는커녕 당선인 굴복을 강요." 윤석열을 지지하지 않은 이들도 이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핵심 안보시설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국방부와 합참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요 안보시설이 밀집돼 있다. 두 곳은 육군은 물론 해군 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과 공군방공관제시스템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군 지휘통제시스템을 50일 만에 재구축하는 것에 대해 군사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전직 합참의장들도 "당장 국방 전산망, 전시 통신망, 한미 핫라인 등 주요 통신망은 제 역할을 못하게 되고, 국방부와 다른 부대들 역시 재배치될 경우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 통합을 일컫는 C41 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며 졸속한 이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둘째,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 설령, 이전 명분이 충분해도 국민에게 물었어야 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로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들었다. 그런데 이전 결정 과정만 보면 "나만 옳다"는 독단과 다르지 않다. 73년 만에 국정 콘트롤타워를 옮기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불통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윤 당선인 주변에서도 '시간을 갖고 결정하자'며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지만 무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장관(당선인 특별고문)은 "내가 아는 한 장제원 비서실장,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균형발전특별위원장 등 모두가 속도조절론이었다"며 결정 과정에서 문제점을 전했다.
셋째, 안보가 취약한 정권교체기를 감안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은 정권교체기에 위기감을 높여왔다. 더욱이 4월은 위기가 가장 고조되는 때다. 북한은 올 들어서만 10차례 이상 미사일을 쏘았다. 지난 17일에도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에이태킴스'(KN-24)를 발사했다.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이다. 북한 정권은 매년 태양절을 전후해 도발을 반복해왔다. 군 정보당국은 올해 태양절에는 신형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선 때문에 연기된 한‧미 연합 훈련도 태양절 전후로 예상한다. 군 당국은 올해는 야외 실제 훈련(FTX)을 재개할 계획으로 북측 반발을 예상하고 있다.
넷째 전문가 집단이 반발하고 있다. 엊그제 전직 합참의장 11명은 국방부 청사로 이전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11명은 보수, 진보정부에 두루 걸쳐 있다. 특정한 진영에 소속된 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통령 집무실은 국가지휘부이자 상징이며 국가안보 관련 최후 보루로써 이전은 국가 중대사"라며 "짧은 시간 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안보 취약시기에 혼란이 우려된다"면서 "청와대 집무실로 국방부 청사를 사용한다면 적에게 우리 정부와 군 지휘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목표가 된다"며 시간을 갖고 신중한 이전을 당부했다.
다섯째 군심(軍心)을 헤아리지 않았다. 군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집단이다. 군사력은 사기와 비례한다. "방을 빼라"는 일방적 요구로 군심은 상처 받았다. 당사자 이해를 구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군을 우습게 아는 정치문화는 폐습이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신규 주택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태릉 체력단련장을 일방적으로 포함시켰다. 지역 주민들 반발로 흐지부지됐지만 군내 반발은 상당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로 이전하는 과정도 일방통행이다. 이제라도 집주인 국방부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방과 안보 관련해 최고 전문가는 군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 합당한 의견 제시를 괜한 시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통은 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국방부로 이전이 필요하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얻는 게 우선이다.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는 건 독단이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 5년을 평가하면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도 보기에 따라서는 오만과 독단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흙탕물"이니 "태클"은 편협한 생각이다. 두 달 후면 임기가 종료되는 문 대통령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관건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국민과 소통, 권위주의 청산이란 근본으로 돌아가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아주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