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닷새째다. 검체 채취 후 사나흘 동안 자지러지게 기침하더니, 기침이 멎은 뒤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쑤신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며칠째 진통제를 끼고 살 정도다. 감기보다 못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간 큰코다친다고 연신 강조했다.
듣자니까, 오미크론 확진자 열 명 중 네다섯 명은 아예 증상이 없다고 한다. 검사받기 전까지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닷새 동안 아내를 집안에서 비대면으로 간병하는 처지여서 매일 한 차례 자발적으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서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음성인 게 천만다행이에요. 동거 가족 모두가 확진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런 경우 약을 타가는 것조차 어려워져요. 가까이 사는 친척이나 이웃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확진자가 쏟아지는 이 판국에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어요."
약사 선생님이 아내의 약을 건네며 이렇게 당부했다. 주위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확진자가 집을 나와 직접 약을 받아 가는 황당한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알다시피 동거 가족이 확진된 경우, 감염되지 않은 가족 또는 지인이 병원에서 대리 처방을 받고 약을 받아 갈 수 있다.
종일 안방에서 '감금'된 채 생활하는 아내와는 집에서도 휴대전화를 통해 대화한다. 그것도 잠시일 뿐, 웬만하면 카톡을 이용한다. 평소 비말이 나오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낮 시간 내내 홀로 있는 아내도, 퇴근한 나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마스크를 한시도 벗지 못한다.
집안에서 아내에게 약과 식사를 건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접촉하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개방된 베란다를 이용하고, 그마저도 시차를 둔다.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이지만, 잠잘 때를 제외하곤 앞뒤 창문은 종일 열어두고 있다. 밀접과 밀폐를 예방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다.
아내의 확진으로 자택 격리가 되면서 집안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청소나 빨래 따위야 일주일 정도 미룬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당장 삼시 세끼가 걱정이다. 입맛도 잃고 연일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에게 스스로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고 종일 배달 음식만 먹게 하는 것 역시 아내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삼시세끼 음식 준비를 아내에게 떠맡겨놓고선 이 와중에도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건 가족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긴 집에서 음식 준비가 애초 아내의 몫일 리도 없다.
장 보고, 요리하고... 참 오랜만에 하는 일
오랜만에 앞치마를 둘렀다. 남자라서일까, 요리하는 걸 싫어하거나 못하는 게 아니었는데도 살다 보니 부엌일에서 시나브로 멀어졌다. 결혼 전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요리는 아내가 하고 설거지는 내가 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다. 다른 집안일도 마찬가지였다.
평일 아침엔 양을 조금 넉넉히 해서 점심 찬거리를 챙겨놓지만, 저녁 식사는 퇴근 시간이 늦어 챙겨주지 못한다. 아내는 도통 입맛이 없다며 괜찮다고 하지만, 진심은 아닐 것이다. 홀로 남은 낮에는 마스크 차림에 비닐장갑을 끼고 나와 식사를 주섬주섬 챙겨 다시 안방에 들어간다고 하니 더 미안하다.
그릇과 컵, 숟가락, 젓가락 등 아내가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 일체가 일회용품이다. 안방에 화장실이 갖춰져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안방에 화장실이 없었다면, 나 역시 확진을 피하진 못했을 것이다.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소독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메뉴를 구상해야 했다. 바이러스를 이겨내려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비타민 등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며 푹 쉬어야 한다고 들었다. 몸에 좋은 음식이란 가공식품이 아닌 제철 음식이라는 뜻일 테다. 몸이 아플 때는 영양을 고루 갖춘 식단이 더 필요한 법이다.
아침에도, 퇴근 후 저녁에도 가족을 위한 메뉴를 고민했을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됐다. 아내는 가공식품이나 배달 음식은 물론, 매일 똑같은 메뉴를 내놓은 적이 없다. 아내가 새벽녘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도,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부엌을 향하는 것도 그래서다.
홀로 장을 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지금껏 아내가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고, 어쩌다 한 번 주말에 함께 가는 게 고작이었다. 장을 본 사람이 요리도 책임지는 거라고 눙치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새삼 깨닫는 거지만, 집안일은 성별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족 모두 고기를 먹지 않으니 대신 두부 한 모를 샀다. 된장국을 끓일 요량으로 느타리버섯 한 묶음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된장국을 끓일 때 가장 어울리는 조합일 뿐더러 사시사철 시설에서 재배하는 느타리버섯은 제철도 딱히 없다. 된장국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파릇한 시금치와 보랏빛 가지도 눈에 들어왔다. 겨우내 자란 시금치는 지금이 끝물이다. 이파리가 짙푸르고 뿌리가 붉은 걸 보니 싱싱한 것 같다. 700g에 3천 원 안팎이라 부담도 적다. 이 정도 양이면 서너 끼는 거뜬하다. 오늘 저녁 반찬은 시금치 무침이 좋겠다.
가지볶음은 우리 가족 모두가 두루 좋아하는 반찬이다. 가지는 볶음 요리가 제격이긴 한데, 제대로 만들기가 무척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래선지 학교의 단체 급식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듯 맛볼 기회가 적어서일 테다.
씻은 뒤 살짝 데쳐서 간장과 맛술, 설탕 등으로 만든 양념장에 무치기만 하면 되는 시금치 무침은 요리랄 것도 없다. 가지볶음은 맛도 맛이지만 식감 살리기가 정말 까다롭다. 만들어본 볶음 반찬 중에 가장 어려운 걸 고르라면, 감자볶음과 함께 가지볶음을 첫손에 꼽겠다.
이게 뭐라고, 아내는 뭉클해 했다
장을 본 뒤 막상 앞치마를 두르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당장 양념통부터 찾아야 했다. 소금과 설탕, 간장과 된장, 식용유, 참깨와 다진 마늘, 참기름과 맛술 등 대충 헤아려도 필요한 게 열 가지가 넘는다. 주재료가 아무리 싱싱하다 한들 그것만으로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엌의 수납장 곳곳을 여닫으면서, 요리를 아내의 영역으로만 여겨온 편견과 나태함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실상 부엌은 가족의 가장 중요한 공용 공간인데, 그 흔한 양념통조차 어디에 두고 쓰는지 몰랐던 거다. 그나마 아내가 붙여둔 라벨이 아니었다면, 애초 요리를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재료를 씻고 다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손이 많이 가서라기보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하려니 몹시 불편했다. 그다지 큰 키가 아닌데도 싱크대가 낮아 일하려면 허리를 굽혀야 했다. 평소 설거지를 할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오래 서 있으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한때 자동차의 안전띠가 성인 남성의 평균 체격에 맞춰져 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높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그러나 싱크대의 높이와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아마도 기준은 성인 여성의 평균 체격이 아닐까 싶다.
무쳐낸 시금치가 제법 달큰한 게 밥반찬으론 제격이겠다 싶다. 국간장과 진간장도 구분하지 못해 음식을 버린 때가 기억나 살포시 웃었다. 종이 그릇에 밥과 김치, 느타리버섯 된장국과 시금치 무침,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을 담아내니 나름 근사한 저녁 식사 한 끼가 완성됐다.
이게 뭐라고, 아내는 뭉클해 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뿌듯하기보다 미안했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아내가 아침저녁으로 해준 음식을 두고 감사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건넨 적이 없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족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는 걸 내심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다.
멋진 신사. 십여 년 전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으로, 지금껏 카톡의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다. 운동을 잘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알며, 요리도 잘하는 등 여러 재주를 지녔다는 뜻으로 붙여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내가 자상하고 가정적일 거라며 지레짐작하고 남들 앞에서 추켜세워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별명임을 고백해야겠다. 같은 직종의 맞벌이 부부인 데다 아내가 나보다 연상인데도 부엌일을 온전히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온 구태의연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절어 있었다. 남들 앞에서 요리 실력을 뽐낼 줄만 알았지, 정작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이중인격자'였던 셈이다. 코로나가 일깨워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내일은 무슨 요리를 준비할까. 봄기운이 느껴지도록 냉이 무침을 해볼까 한다. 제철인 냉이를 살짝 데친 다음 된장과 고추장, 마늘, 파 등으로 만든 양념으로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아내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데엔 향긋한 봄나물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어느덧 요리가 손에 익으니, 아내의 격리가 해제돼도 내 부엌일은 당분간 계속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