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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김종훈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김종훈

"옛날에 여기가 병원일 때부터 왔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다 이렇게 박물관으로 만들어지니 좋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동네의 역사를 세밀하게 볼 수 있어서 새롭다."

1933년생, 우리나이로 아흔이 된 용산 주민 고원석씨가 24일 용산역사박물관 1층 상설전시관 복도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고씨 말대로 이날 일반인을 대상으로 처음 공개된 용산역사박물관은 옛 용산철도병원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이 건물은 1907년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만들어진 뒤 1913년 용산철도병원으로 개칭됐다. 하지만 1918년 본관이 화재로 전소된 뒤 1928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됐다. 이후 1938년 경성철도병원으로 개칭한 뒤 해방 후 운수병원과 서울교통병원 등으로 불리다 1963년 서울철도병원으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1980년대 9층으로 신관을 신축한 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으로 개칭됐다. 2008년 용산철도병원 본관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이후 여러 논의를 거쳐 2022년 지금의 용산역사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된 거다.

"조선부터 근현대 용산을 모두 담은 공간... 디테일 아쉬워"

이날 현장은 북적이진 않았지만 용산구 거주 주민들의 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중에는 용산역사문화사회적협동조합 도현남 이사도 있었다. 

도 이사는 "오랜 시간 닫혀만 있어서 오지 못했던 건물을 이렇게 역사박물관으로 만든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특히 박물관 옥상이 좋았다"라고 평가했다.

"(3층) 옥상에 올라 용산역과 한강 건너를 보며 조선시대 경강의 바쁜 생활을 그려보았다. 일제강점기 용산 일대가 일본군영을 거쳐 미군기지로 이어졌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역사박물관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어 든든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김종훈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김종훈
 
물론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인문계열을 전공한다고 밝힌 20대 대학생 유민호(가명)씨는 "최근 청와대 집무실 이전 이슈로 외국군대의 용산 침탈 역사를 자주 접하게 됐다"면서 "그래서 큰 기대를 안고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용산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과 달리 근현대시기 역사가 디테일하지 못해 많이 아쉽다"라고 평가했다.

유씨가 지적한 것은 1층에 마련된 '군사 기지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게 된 용산' 등으로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치며 군사기지로 활용된 용산을 설명한 공간이다. 일제의 군기자화 과정을 비롯해 전쟁에 동원된 조선 청년들의 이야기,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격하시킨 일제의 만행, 군사기지에 터전을 빼앗긴 둔지미 마을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담겼다. 하지만 당시 일제에 복무하며 친일행위를 한 인사 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용산 주둔 일본군 부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이가 이응준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친일인사로 등재된 인물로 1914년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일본 장교로 복무하며 1933년 조선군 제20사단 제79연대 부관으로, 1934년 8월 조선군 제20사단 제79연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79연대는 현재 국방부 건너편 전쟁기념관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응준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41년 일본군 육군 대좌로 승진했다. 조선인 출신 중 매우 이례적으로 승진한 것인데 이후 이응준은 일제의 기대에 부응해 우리 청년들을 전선에 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대중강연과 연설 등을 통해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선동했다. 일제 패망 후 이응준은 미군정과 긴밀히 접촉해 미군정청 국방사령부 국방사령관 고문으로 위촉됐다. 이때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 조선인을 우리군의 요직에 배치했다. 1948년 우리 군대가 창설된 뒤 이응준은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용산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김종훈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상 2층(옥상 제외), 연면적 2275㎡ 규모의 용산역사박물관에는 구청이 공개 구입한 유물 1974점과 일반인과 용산 내 대사관 등에서 기증받은 1946점의 유물·전시품 등 총 4000여 점이 전시돼 주민들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보면 조선을 움직인 거상이었던 경강상인의 이야기를 비롯해 철도교통의 중심이 된 용산역에 대한 여러 자료들, 용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다채로운 문화유산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23일 정식 개관 후 24일 일반 관람객을 처음 맞은 용산역사박물관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휴관일은 1월 1일과 설·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이다. 운영은 용산구에서 직접 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최근 집무실 이전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용산 국방부 청사와 직선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용산#국방부#용산역사박물관#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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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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