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찾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경주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건천읍 화천 3리 백석마을이다. 백석마을은 일명 산수유 마을로도 불린다. 그만큼 산수유가 마을 전체를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많다. 이제는 예전 일이 되었지만, 산수유 판매 수입 하나로 생활하며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킨 곳이 바로 백석마을이다.
백석마을은 요즘 한창 아파트 건설 등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이 한창인 신경주역 역사 뒤편에 있는 마을이다. 신경주역을 지나 제3 화천교를 통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에 제법 큰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이 백석마을이다. 한때는 75가구에 많은 주민들이 거주를 하였지만, 지금은 50여 가구 60명 남짓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화천리 백석마을 유래 및 연혁
경주시 우리 마을 소개 자료에 따르면, 화천리 백석마을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냇가에 꽃이 많다고 하여 '꽃내'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한다. 백석마을은 약 350년 전 밀양 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개척 당시 뒷산에 흰 돌이 많다고 하여 백석(白石)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경주군 서면 지역으로, 지형이 곶으로 되어 곶내, 고내, 고천이라 하였다. 다른 이야기로는 골짜기에 꽃이 만발하여 '꽃내'라 부르다가 뒤에 화천(花川)으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고백리를 병합하여 화천리로 하였고, 1973년 건천읍에 편입되었다.
노란 산수유꽃 만개한 백석마을 풍경
봄기운이 완연하다. 경주 시가지를 조금 벗어나니 오랜 겨울 가뭄 끝에 봄을 알리는 촉촉한 단비가 내려, 인적 없던 들녘에도 퇴비를 살포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밭을 트랙터로 갈고,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등 모처럼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가뭄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내린 단비라 반갑기 그지없다.
백석마을로 들어서자 몇 채 보이지 않는 농가에도 집집마다 노란 산수유를 심어, 여기가 산수유 마을임을 미리 방문객들에게 알리는 듯하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회관 앞에 우뚝 서 있는 당산목이 시선을 끈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당산목 바로 옆 계곡 주변으로 길게 드리운 노란 산수유가 아름답게 피어,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잠시 차를 세워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지만, 인적이 없고 너무 조용하다. 마을 안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새지 저수지가 보이고, 바로 단석산 백석암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펴보니, 산 중턱에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여기저기 온통 산수유 나무로 가득하다. 거기다 꽃망울까지 활짝 터트려 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계곡 주변은 물론 골짜기마다 산수유 일색이다. 산수유 나무 그늘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도 노랗게 취한 듯 바위돌에 부딪치며 멋진 화음을 연출한다. 탐방로 입구부터 수령 300년이 훌쩍 넘는 산수유가 나름대로의 모습을 뽐내며, 자연적으로 멋진 터널까지 만들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은데, 샛노란 산수유와 함께 운치 있는 모습까지 더하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단석산으로 올라가는 탐방로가 여러 군데 있지만, 여기는 탐방객조차도 별로 없다. 경주 지역민들도 백석마을이란 동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주말을 이용해 찾은 가족단위 여행객과 평소 늘 찾았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인적이 거의 없다. 백석암을 찾는 신도들 사이에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찾는 이가 없는 조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노란 산수유로 덮인 산 중턱에 한 그루의 동백꽃과 목련 꽃이 눈길을 끈다. 특히 수령이 제법 되어 보이는 커다란 목련 꽃에 시선이 간다. 노란 산수유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목련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사진가 한 분이 여기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다.
단석산 탐방로를 올라가면서 요즘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 구경은 덤이다. 연분홍 색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오늘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진달래가 탐방객에게 그냥 눈 호강만 하고 올라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조금 가파른 곳으로 계속 올라가면 산수유는 옆으로만 간간이 보일 뿐 가까이서는 볼 수 없다. 계곡 골짜기를 타고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계곡 아래로는 제법 낭떠러지라 내려갈 수도 없다.
산수유 구경은 차를 주차할 수 있는 마지막 공터 부근이 제일 좋다. 산수유 구경뿐만 아니라 산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겨도 좋고, 코로나로 지친 몸을 추스르며 힐링을 즐기기에 적격인 곳이, 바로 백석마을 산수유 군락지이다.
농촌의 공통된 현실이지만, 백석마을도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주민들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산에서 내려오다 이곳 어르신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옛날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산수유 하나로 부자마을이란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이제는 산수유를 구입하러 오는 사람들도 없다'라며 '수확을 하고 싶어도 일손도 없고, 수익도 없어 자연 상태로 그냥 내버려 둔다. 집 주위 산수유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나무를 뽑아 조경용으로 판 사람은 있어도 수확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산수유는 간과 신장을 보호하고, 자양강장제로 쓰일 만큼 우리 몸에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다. 저열량, 저지방 약재로 배뇨장애와 다이어트에도 좋다. 빨간색 열매를 따 씨앗을 빼고 말려 차로 마시면 피부미용에도 좋은 산수유이지만, 요즘은 약재로만 사용할 뿐 한방차는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도시 농촌 구분 없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커피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브랜드 커피점이 인기를 누리고 있어 더더욱 그렇다. '남자한데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할 만큼 유명한 산수유지만, 아직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방차 보급과 대중화가 시급한 현실이다.
산수유는 이제 집집마다 조경용으로 많이 심고, 봄이 되면 노란 산수유꽃을 눈으로 보는 즐거움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찾아가는 길
- 주소 : 경북 경주시 건천읍 백석길 16(화천 3리 마을회관)
- 주차 : 단석산 백석암 올라가는 길 공터
* 관련기사 유튜브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V7x4L_NeU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