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당시 충남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 건립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인근 주민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주민들은 반대 이유로 이미지 훼손과 주변 땅값 하락을 들고 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호소한다.
공주시는 지난해 하반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주시협의회가 공주 왕촌살구쟁이 집단희생지 앞에 위령비를 건립하겠다며 보조사업비를 신청하자 7000만 원의 예산을 반영했다. 17제곱미터(약 5.15평) 작은 땅에 작은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화해·상생을 도모하는 의미에서다.
공주시 상왕동(왕촌)에 있는 살구쟁이는 1950년 7월 초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이 공주 CIC 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에 집단학살된 곳이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충남도는 각각 지난 2009년과 2013년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이곳 5개 구덩이에서 모두 397구(2009년 317구, 2013년 80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10대로 추정되는 유해도 다수 확인됐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공주유족회는 지속해서 시에 위령비 건립을 요청해 왔다. 진실화해위원회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을 권고했다. 늦었지만 민주평통 공주시협의회가 이에 화답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위령비 건립사업은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예상 외 복병을 만났다. 인근 마을인 상왕 3통(왕촌) 주민들은 위령비 건립이 본격 추진되자 위령비 건립부지에 트랙터를 갖다 놓았다. 또 '추모위령비 시공반대', '공주시청 앞마당에 위령비 세워라', '세금 낭비하는 공주시장 각성하라'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최근에는 농성을 위한 천막까지 설치했다.
또 주민 반대 서명을 받아 공주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반대 서명의 이유로 민간인 집단희생지로 인한 이미지 훼손과 주변 땅값 하락을 들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빨갱이들이 죽은 곳에 무슨 위령비냐"며 폄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재성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공주유족회장은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부모형제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작은 위령비마저 세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며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지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이웃 주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유가족도 "좌익이라는 이유로 보도연맹원과 재소자들을 불법으로 집단살해한 정부와 이미지가 훼손된다며 위령비 건립을 막는 주민들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서 "이게 평화와 화합을 말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느냐"고 말했다.
임재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주시협의회 회장은 "과거 역사의 상흔을 딛고 화합과 화해,평화를 만들기 위한 취지로 위령비를 건립하기로 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을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