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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얼마 전,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된 책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시인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슬럼프에 빠졌던 50대에 그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오늘날 그의 인생과 시가 있게 한 것은 오로지 그 책 한 권 덕분이라며, <월든>은 인생 후반기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극찬했다.

사실 작년부터 <월든>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다. 화제가 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매일 꺼내 보는 책은 <월든>이었고, 연말 개봉한 데이팅 앱 소동을 그린 영화 <러브 하드>에서도 책 <월든>은 인물들의 성격을 말해주는 중요한 소품으로 나온다.

최근 민음사를 비롯해 여러 출판사에서 완역본을 출간했고, 정여울 작가도 직접 월든 호수를 다녀온 사진과 함께 에세이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를 냈다. 부제는 '월든으로의 초대장'이다.

도대체 <월든>이 뭐길래? 170년 전에 발간한 책이 지금 다시 화제가 되는 걸까? 나태주 시인은 왜 50대에 <월든>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을까? 50대인 나도 <월든>을 읽으면 내 삶이 달라질까? 궁금해 하며 책을 폈다.

170년 전 책이 아직도... 도대체 <월든>이 뭐길래?
 
 정여울 작가가 쓴 에세이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일부분.
정여울 작가가 쓴 에세이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일부분. ⓒ 최은경
많은 사람이 <월든>은 문장이 길고 복잡하고, 상징과 은유가 많아 술술 읽히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종이책으로 읽다가 전자책으로 읽다 하면서 쉬엄쉬엄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숲속에 혼자서 집을 짓는 사람의 유튜브 영상을 볼 때 남편이 왜 편안한 얼굴이 되는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왜 10년 넘게 장수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당연한 본능일 테다. 하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문명의 자만심 때문에 오히려 자연에서 소외되고, 개개인의 삶은 피폐해진 것은 아닐지.

1845년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소로도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심으로 미국 동북부 월든 호수가 있는 숲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지낸다. 그가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삶의 본질적인 사실(the essential facts of life)'을 직면하기 위해서다.

그는 고독 속에 삶을 사유하고, 온 감각을 열어 자연을 느끼고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의 문장은 곱씹을수록 아름다운데, '자세히 보고 오래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스쳐 가는 사람이 아니라 머무르는 사람에게 속살을 보여준다.

나는 월든 호수와 숲, 또 그곳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올해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하지 않듯(251쪽)"이란 짧은 문장이 큰 울림을 주었다. 다람쥐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아마 다람쥐는 밤이 많이 열리면 많이 먹고, 적게 열리면 적게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작은 동물도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살아갈 때가 많다. 흔히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는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하고, 그중에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2%도 안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미리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한다.

나이가 들수록 '노파심' 또한 늘어난다. 앞으로 쓸데없는 걱정이 늘 때마다 다람쥐의 지혜를 생각하기로 했다. <윌든> 속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Simplify, simplify)"는 삶에 더하기보다 빼기를 해야 할 50대에 더 와닿는 문장이다.
 
 컵이 많으면, 쓰던 컵을 개수대에 넣고 새로 꺼내 쓰니까 설거짓거리가 쌓이게 된다.
컵이 많으면, 쓰던 컵을 개수대에 넣고 새로 꺼내 쓰니까 설거짓거리가 쌓이게 된다. ⓒ envato elements
 
나는 지난해 7월에 우연히 <매일 하나씩 버리기> 인증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매일 하나씩 버린 것을 단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물건을 버리면서 '소중한 것만 남기기'에 방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는 나는 '버리기'보다 '비우기'라는 말을 더 좋아하게 됐다. 한 달 모임이 끝나고도 꾸준히 비우기를 실천하고 있다.

일단 물건을 비우면 청소가 쉬워진다. 정리할 물건이 적어지니까 청소 스트레스가 줄었다. 집안일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컵이 많으면, 쓰던 컵을 개수대에 넣고 새로 꺼내 쓰니까 설거짓거리가 쌓이게 된다. 비우기를 하면서 컵을 가족당 한 개씩만 남겼다. 이제 가족 모두 각자 컵을 바로 씻어 사용한다.

소로는 <월든>에서 "인간은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63쪽)"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컵 한 개로 살아도 충분한데, 예뻐서 또는 공짜로 받아서 혹은 손님이 오면 필요할까 봐 이렇게 저렇게 컵이 많아지면 오히려 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이 온다(식구들이 내놓는 컵 때문에 식기세척기를 샀다는 지인도 있다). 물론 사람이 물건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같은 물건의 개수를 늘이지 않는 것, 최소한의 개수를 가지는 것이 '간소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50대 친구들에게 <월든>을 권한다 

물론 '간소화'가 경제성장기에 자란 우리 50대에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집에 자동차가 있는 사람? 피아노가 있는 사람?"을 물었고, 아이들은 손을 든 친구를 부러워했다. 물건의 결핍은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게 했고, '소유의 욕심'으로 이어졌다. 큰 집과 자동차, 비싼 옷과 음식... 소유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오히려 삶의 본질은 가난해지는 것이 아닐까?

주말, 서울에서 창원으로 갈 일이 있어 기차 안에서 오디오북으로 <월든>을 들었다. 눈으로 놓쳤던 <월든>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귀로 들어온다. 소로가 묘사한 호수와 동식물의 삶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선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50대 친구들에게 <월든>을 권한다. 도끼 하나만 들고 숲에 들어가 살지 않더라도, 주식, 펀드, 부동산 등 물질만능주의에 피로한 우리에게 삶이 가벼워지는 방법을 <월든>은 다정하게 말해 줄 것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중년#50대#월든#나는자연인이다#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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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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