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계획하는 일은 뭡니까?"
기자들이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한테 이렇게. 이 질문을 던지는데 딱 10초가 걸린다. 그런데 이 10초의 질문이 후보에게는 1분 이상의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캠프 담당자들에게는 1시간 이상 준비하게 할 것이며, 해당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4년간의 행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질문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이 지구를 위해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해갈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딱 10초간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곳곳에서 출마 선언이 이어진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오는 6월 1일인데, 5월 본선에 나가려면 4월에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기에 바로 이맘때 후보들이 간절한 심정으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마 선언은 보통 15~20분 정도 한다. 끝나면 후보는 기자들을 데리고 바로 옆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카메라를 끈 상태에서 질문을 받는다. '백브리핑'이라고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브리핑이 아닌 기자들만 볼 수 있는 제한된 브리핑이라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가 아닌 지방선거나 지방행정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브리핑 형태다. 질문 답변까지 다 공개할 만큼 주목도가 높지 않을뿐더러 무엇이든 척척박사 스타일로 답할만한 강심장도 드물기 때문이다.
20~30분가량 진행되는 백브리핑(혹은 차 한잔)에서는 보통 10개 정도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그중 70~80%의 질문은 사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예상 가능 질문. 경선 룰이나 당선 가능성, 지지율, 상대 후보나 선거 구도, 혹은 표심에 영향을 줄만한 유력 정치인과의 관련성 여부 등이다.
나머지 2~3개가 예상치 못한 질문인데 그중 하나로 기후변화 질문을 추천드린다. 이 질문 하나면 도지사나 교육감, 시장, 군수와 시의원, 군의원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다.
거부할 명분도 없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트렌드이기에 뭔가 그럴듯하게 대답해야 할 것 같게 만든다. 그러나 막상 자신만의 답을 찾다 보면 고민스럽다. 지역 현황에 따라 토건이나 기득권 층과의 이해대립이 생길 여지가 충분한 게 바로 이 기후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면제출'로 대체하겠다는 후보들이 나올 텐데, 서면은 서면이고 우선 말씀으로, 그래서 '최우선적 선결 과제'를 묻는 거다. 서면답변의 경우 터무니없이 장황하거나 혹은 바쁜 와중이라며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후보의 철학이 아닌 보좌진의 워딩인 경우가 많기에, 그냥 말씀으로, 핵심만 간단히.
딱 10초간의 실천이 모인다면
미국에서는 지난 2019년 대선에서 '기후대응'이 핵심 이슈로 불거져 나왔다. CNN은 무려 7시간을 기후 토론에 편성했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기후대응이 개헌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많은 기후 시민들이 '저들은 저렇게 하는데 우리는...' 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상황을 단순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2019년 트럼프 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이후 기후가 첨예한 정치 이슈가 됐다.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 대응이 모든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화두로 되어왔다.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제도권 기준으로).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인 사안이지만 그 해법은 지역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축산 농민들은 축산 분뇨를 질 좋은 퇴비로 만들어 밭농사 농민들과 공유하는 경축순환농업을 하려고 준비 중인데, 돈은 농림부에서 지원하겠다고 하고 농협도 돕겠다고 하지만 끝내 퇴비 시설을 짓지 못했다.
그 많은 환경 관련 인허가 처리의 장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인허가 행정만 군청에서 맡아줬으면 하지만, 군수가 관심이 없단다. 표가 안되니까. 그게 오는 6월 2일 우리가 뽑을 군수 선거이다.
또 어떤 지역민들은 지구를 위해 나무를 더 심고 잘 가꿔야 하건만 왜 우리 동네 숲은 자꾸 파괴되며 난개발이 늘어나는지,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개발 허가의 척도가 되는 '경사도'와 '표고기준'에 관련된 조례가 자꾸 완화되더라는 것이다. 조례는 지방의회에서 만들어지고 고쳐진다. 그게 오는 6월 2일 우리가 뽑을 도의원, 시의원, 군의원 선거이다.
몇 천 명에서 많은 곳은 만 명이 넘어가는 도청 공무원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기후 대응을 잘해주면 좋겠건만 도통 움직이지 않고 소관 업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에 바쁘다면, 이는 십중팔구 기후대응이 공무원 인사나 부서 회계 기준 속으로 녹아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속도와 범위를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6월 2일에 우리가 뽑을 광역 시장, 도지사들이다.
그래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이 중요하다. 딱 10초간의 실천이 모이고 모인다면 지역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며 지구를 위한다. 가성비가 상당히 높은 실천 방식 아닐까. 나부터 이번 선거에 실천해보려 한다. 고군분투하고 계신 많은 기자님들의 10초를 부탁드린다.
"당신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계획하는 일은 뭡니까?" 덧붙이는 글 | 16년 흑자 상태에서 '자진폐업'한 지역 방송국이 있습니다. 경기방송, 폐업 이후 프리랜서 포함 100여 명의 방송인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그 후 2년째 새 방송사 선정이 표류하면서 다시 방통위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외로운 싸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 방송국 출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