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의 헌신적인 노력과 용기있는 대처로 명동성당의 시위사태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길은 이제 겨우 출발지점이었다.
사제단은 6월 15일 저녁 8시 명동성당에서 '나라와 민주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열었다. 전국 사제단 400여 명이 집전한 이날 행사에는 신자ㆍ학생ㆍ시민 1만5천여 명이 명동거리까지 가득 메웠다.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에서 정부에 4.13호헌조치의 철회를 요구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서〉를 통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시위를 탄압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서울교구 사제단과 각 지역교구 사제단에서는 각급 민주단체와 연대하여 민주화에 적극 참여하였다.
정세의 진행을 지켜보던 사제단은 집권세력이 6.29선언에서 약속한 민주화 조처를 이행하지 않자 9월 28일 현 시국과 관련, 장문의 〈성명서〉를 통해 매섭게 비판했다.
'진실이 밝혀지기 보다는 은폐되고 있다'는 제목의〈성명서〉에서 "현 정권은 용공 척결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로 국민 내부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할 만큼 정당한 시민ㆍ학생들의 주장을 걸핏하면 용공ㆍ좌경으로 몰고자 시도했다. 언제부터인가 '남영동'으로 통칭되는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은 학생과 노동운동가를 비롯, 유신시대 이래 민주ㆍ민중ㆍ민족운동에 헌신해 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공포는 용공조작에 대한 것과 그것을 위한 정신적ㆍ육체적 고문에 대한 것이며 학생운동단체 및 재야 민주ㆍ민족운동 단체의 용공조작사건의 대부분이 여기서 조사, 조작, 발표되었다."고 적시하였다. (주석 1)
〈성명서〉는 서문에 이어 "1. 고문치사 과정의 진실 2. 경찰 3. 검찰 4. 법원 5. 용공조작과 고문 6. 1월 17일의 정부대책회의 7. 정치권력의 도덕성 8.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반성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라는 8개 항목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례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다음은 여전히 그 오명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검찰' 관련의 한 대목이다.
가) 정구영 전 서울지검장은 5월 21일 발표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거짓 발표와 기자와의 기만적 일문일답을 하여왔음이 5월 29일의 검찰발표로도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서울지검 안상수 검사는 2월 27일 조ㆍ강 두 경관으로부터 3명의 고문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청취하고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인지 잘 판단하라"면서 계속적인 은폐를 획책, 종용하고 이같은 사실을 상부에 보고, 2월 28일 김성기 법무부장관이 영등포교도소를 방문, 새로운 사실이 밖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단속을 지시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두 경관에 대한 3월 7일의 이감조치는 경찰로 하여금 두 경관에 대해 마음놓고 회유와 설득을 하게 하기 위함이었음이 명백합니다. 3월 9일 가족면회 때 조한경 경위는 동생에게 "검사에게 조작사실을 폭로한 뒤 경찰로부터 죽이겠다는 협박을 당하고 있다. 빨리 변호사를 대라"고 한 사실에서도 분명한 것입니다. 이 같은 정황에 비추어볼 때 적어도 2월 27일 이후 검찰은 조ㆍ강 두 경관의 심경의 변화를 경찰에 알려 합동으로 조작사실을 은폐 무마하려 했음이 확실합니다. (주석 2)
주석
1> <암흑속의 횃불(8)>, 223쪽.
2> 앞의 책, 22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