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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김슬옹 박사는 지난 3월 30일 자 오마이뉴스를 통해 포털사이트 다음(Daum) 국어사전에 실린 '조선 시대, 1443년에 조선의 4대 왕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라는 '훈민정음 풀이'를 하루빨리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 훈민정음은 세종 단독 창제... 국어사전 수정 미룰 일 아니다  http://omn.kr/1y28d

그는 다음카카오 측에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 창제로 풀이해 놓은 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지적하고 수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다음카카오 측은 '제공 기관(고려대 한국어 사전 편찬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할 뿐 신속히 수정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훈민정음의 세종 단독 창제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분명한 기록이 있고,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책자가 발견되면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됐다.

김슬옹 박사는 훈민정음 세종 단독 창제 주장에 대해, 세종대왕을 위대한 성군으로 우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기록을 보면 이렇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실록 25년(1443년) 12월 30일>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자 기사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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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간송본)' 예의편 어제(御製)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같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 <세종 28년(1446년) 9월 29일>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세종 28년 9월 29일 기사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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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기록과 훈민정음(해례본) 기록을 보면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 "내가(세종)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돼 있다. 조선 사관의 정사 기록과 훈민정음 어제 기록은 분명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데도 글자 '훈민정음'을 두고 세종대왕 창제가 아닌 '집현전 학사 협찬설', '왕실 협력설', '세종 친제 협찬설', '세종과 신미 협찬설', '박연 창제설' 등 무수히 많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훈민정음이 세종 25년 1443년 12월에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종은 그 이전에 훈민정음을 만들라고 신하에게 지시했거나, 경연 등에서 내가 새로 글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전혀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만 '훈민정음을 토대로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라는 세종의 지시만 보인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예조판서 정인지의 서문을 보자.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에 합하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정인지도 서문을 통해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라며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처음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다.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 사전은 훈민정음 풀이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에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글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분명하게 세종의 창제 사실을 밝히고 있다.

김슬옹 박사는 국내 이용자가 많은 포털사이트 다음 사전에서 잘못된 역사 내용을 그대로 풀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필자 역시 다음 사전에서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대왕이 아니라 '집현전 학자 공동 창제'를 지지하는 것 같은 행보에 유감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사전은 '훈민정음' 풀이를 역사적인 사실에 맞게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글자'란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태그:#훈민정음, #세종대왕,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훈민정음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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