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이 작년 가을과 올해 초, 제주 연안 조간대 전체를 직접 뒤져보았다. 물 빠진 조간대는 '하얀 바위' 말고는 생명체를 찾기 어려웠다. 톳, 모자반, 감태 등 바다 숲은 왜,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엇 때문일까. 해조류의 실종과 제주바다의 오염은 '수온상승과 육상오염', 이 두 가지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육지와 지하수, 바다가 연쇄적으로 벼랑 끝 위기 상황이었다. 제주바다의 '원형'과 '지금'을 알고 싶었다. 서귀포 현지 선장, 제주 생활사 연구자, 조수웅덩이 다큐 감독, 해조류와 산호 전문가, 다이빙 마스터, 미세플라스틱 아티스트, 기후변화 환경운동가, 남방큰돌고래 기록자 등 10여 명의 증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2030년, 2050년의 제주바다 모습을 상상하려고 한다. 임계점의 끝에서 마지막 숨을 까딱까딱 들이키는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제주바다가 제주바다의 모습대로 온전히 존재하기를.' [기자말] |
문섬과 범섬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제주도 서귀포 신시가지 고근산 아래. 웻슈트를 입은 스쿠버 다이버가 부력조절기와 공기통을 메고 잠수용 핀을 들고 바닷속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한쪽에는 연산호와 물고기 사이를 유영하는 몇몇 다이버 사진도 걸려 있다. 대한민국 스쿠버다이빙의 메카인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스쿠버다이빙 서비스 전문 센터 '굿다이버(GOOD DIVER)'.
한쪽 벽 가득 찬 '다이버' 증명사진의 주인공이 김상길 대표다. 제주바다 물고기를 추적하는 시민과학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터였다. 조심스레 노크를 하고 들어섰다. "우리는 노는 '수위'가 달라"라고 적힌 부표가 인상적이다.
"'굿 다이버'가 되고 싶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입니다. 제주에서 다이빙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굿다이버'를 소개해주세요.
"제주에는 2002년에 내려왔으니 꼬박 20년이 되었네요. 다이빙샵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때부터 상호는 '굿다이버'였습니다. '굿 다이버'가 되고 싶었습니다(웃음).
이곳은 체험 스쿠버다이빙 교육, 오픈워터 및 연속 교육, 각종 스페셜티 교육, 그리고 스쿠버다이빙 강사 교육까지 진행 가능한 PADI(1966년 설립된 국제적인 스쿠버 다이빙 교육 전문 단체) 5 Star IDC(Instructor Development Centre) 인증센터입니다. 레크레이션 다이빙은 물론 연구와 조사 다이빙도 겸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회원들과 함께 제주바다 물고기도 기록하고 있어요."
- 굿다이버가 발행한 '굿다이버 물고기반 뉴스레터'를 봤습니다. 몸 측면에 흑색 무늬가 톱니를 닮은 '톱쥐치'가 등장하더라구요.
"서귀포 보목동 섶섬의 대표적인 다이빙 포인트인 '작은 한개창'에서 작년 12월 12일, 굿다이버 물고기반 김수진 강사가 발견했어요. 이 물고기가 국내에 처음 보고된 것은 1995년이었는데, 그 이후 우리나라에 출현하였다는 보고나 기록은 전혀 없었어요.
이번 관찰 때 발견된 톱쥐치는 25년 만에 확인된 국내 두 번째 수중관찰 기록입니다. 굿다이버 물고기반의 귀중한 성과이지요. '굿다이버 물고기반 뉴스레터' 두 번째는 꼼치인데, 보셔도 좋겠네요."
- '굿다이버 물고기반'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2015년 무렵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김병직 박사님과 어류 조사를 했던 게 인연이 되었어요. 제주바다 물고기를 아카이빙 하고 변화상을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하지만 그 넓은 바다를 소수의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조사하기는 한계가 명확했지요.
자연스럽게 서귀포 지역에서 조사팀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작년부터 제주바다 물고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펀다이빙만 하다가 의미 있는 다이빙이 시작된 겁니다. 함께 다이빙하고 어종을 기록하고 박사님의 자문도 받았습니다."
"작년에는 새로운 어종 많이 발견"
- 이를테면, 시민과학자에 의한 제주바다 조사인데요. 어류 조사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셨나요?
"한 달에 한 번, 이틀 동안 같은 지점을 조사해 데이터를 쌓아갑니다. 서귀포 섶섬 '작은 한개창'을 집중적으로 들어갔지요. 10~15명의 인원이 2인 1조로 수심별로 조사해요. 조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제가 입수해 50미터 기준선을 설치합니다.
기준선을 중심으로 좌우 5미터 내외에서 다이빙이 가능한 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기록 작업을 해요. 다이빙을 마치면 센터에 돌아와서는 각자 찍은 사진을 함께 보고 어종 이름을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조사 전에 제가 만들어 놓은 '물고기 파일'을 먼저 공유하기는 하죠.
어류 연구의 시작은 종 구분하고 이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바닷속에서 물고기를 보면 비슷한 종이 너무 많아 헷갈립니다. 1년차 참가자인 '자리돔반'은 어종을 구분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아는 것부터 공부해요. 올해는 좀 더 나아가서, 국립생물자원관 김병직 박사님의 조언대로 종명, 과명까지 익힐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2년차 참가자인 '놀래기반'은 물고기 이름을 익히고 월별 또는 계절별로 변화하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어종마다 10마리 미만, 50마리 미만, 100마리 미만 등 개체수도 함께 기록하지요. 특정 어종의 출현 여부와 함께 개체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죠."
- 제주 남쪽 바다가 많이 변해가고 있잖아요. 바닷속에 아열대 어종도 상당히 많이 유입되었구요. 굿다이버의 조사 기록은 어떠한가요?
"작년에는 새로운 어종이 정말 많이 발견되었어요. 특히 서귀포 보목포구 앞 섶섬은 어종이 다양해요. 이곳 '작은 한개창'을 중심으로 아열대 어종 유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 오고 있어요. 알다시피, 아열대 어종은 수온이 높아졌을 때 많이 나타나요.
지금(2월)은 수온이 점점 낮아지는 시기인데, 작년 12월은 90종, 2월은 71종을 확인했어요. 이 중에 아열대성 어종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분명하진 않아요. 대신에 새로 발견된 어종이 수온이 떨어진 제주바다의 겨울을 견디고 터를 잡고 살아가는지, 혹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 어종에 대한 분석, 연간 변화에 대한 코멘트 등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협력은 어떻게 하시나요. 조사 결과를 저희도 볼 수 있는지요.
"'굿다이버 물고기반'은 제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어류 조사에 관한 해석은 김병직 박사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은 종 동정이 정확히 되었는지 코멘트 받고 있어요.
또한 '굿다이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조사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변화상을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물고기반 회원들과 어류에 대해서 강의를 듣는 시간도 계획하고 있어요.
'굿다이버 물고기반' 조사는 작년 4월부터 시작했어요. 거의 1년이 되어가네요. 올해 4월 조사부터는 작년 데이터와 비교할 수 있겠네요. 지속적으로 다이빙하면서 기록하면 어떤 종이 늘고 있는지 등 수온이나 환경에 따른 어종 변화를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조사 결과는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도청과 함께 수중해설사 과정도 하고 싶어"
- '굿다이버 물고기반'에 참여하려면 스쿠버다이빙은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할 테고 어떤 능력, 과정이 필요한가요?
"15명 정도의 다이버가 정해진 시간 동안 동시에 다이빙하다 보니, 제가 일일이 챙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본인의 몸을 컨트롤하고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다이빙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 어류 기록을 위해 수중 카메라가 있어야 하구요.
하지만 다이빙이 약간 미숙한 다이버는 하루 이틀 전에 연습 및 교육을 진행한 후에 조사에 참여하기도 해요. 물고기에 관심 있는 다이버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조사 다이빙이라고 해서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레크레이션 다이빙처럼 이동 범위가 넓은 다이빙이 아니고 조사 라인을 따라 머물다가 되돌아오는 거라 오히려 더 안전하기도 해요.
1년의 조사 일정은 미리 정해서 연초에 공지해요. 참여자가 연간 일정을 조정해 가능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 번 참석한다고 결정하면, 개근은 당연하고 결석 시에는 페널티도 있습니다."
- 작년까지 제주바다 수온이 많이 올랐잖아요.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의견에 따르면, "지금 상태라면 제주바다는 2100년에 오키나와와 같은 환경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김상길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는 연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물고기가 늘어나 좋고, 누구는 토종 물고기가 사라지면 안 된다고도 하고. 조사 기관이나 어민 등 처한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변화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죠.
그러나 지금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서귀포는 항상 봄에 수온이 14도까지 내려가곤 했지만, 작년 재작년은 14도까지 내려간 적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조그만 망둥어부터 방어, 부시리 같은 큰 물고기까지 먹이그물로 이뤄진 생태계가 있을 텐데 과연 아무 영향 없이 무사할까요. 올해는 작년하곤 또 다르게 2월 수온이 14~15도까지 떨어졌고 예년과 다르게 바다가 거칠고 풍랑주의보가 자주 발생했어요. 올해 변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 수온 상승에 따른 수중 경관 변화도 확인되는 게 있는지요.
"그럼요. 일단 과거에는 제주 바닷속 시야가 매우 좋았어요. 요즘은 1년 내내 부유물이 너무 많이 떠다니고 바닥에도 내려앉아 있어요. 연산호만 아니라 돌산호 종류들이 대체적으로 더 빨리 자라고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해조류의 변화도 상당해요. 과거에는 모자반이 정말 많고 키도 커서 칼로 자르면서 다니기도 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그런 모자반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지금이면 겨울 바다에서 한창 자라야 하는데, 큰 모자반 찾기가 어려워요."
- 제주바다 물고기를 기록하는 시민과학의 한 사례를 잘 들었습니다. 굿다이버의 기록이 제주바다를 보호하는데 큰 도움도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더 해나가실 예정인지요.
"'섶섬 작은 한개창 물고기', '문섬의 물고기' 등 어류 도감을 만드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제주바다 물고기 104종, 갯민숭달팽이 42종을 디자인한 로그북(스쿠버다이버의 다이빙 기록) 스티커를 만들기도 했어요.
향후에는 '굿다이버 물고기반'에서 더 나아가 '물고기 학교'를 만들고 싶네요. 굿다이버에서 운영하는 물고기반, 갯민숭달팽이반, 연산호반도 운영하면 좋겠어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여봐야죠.
그리고 제주도청과 함께 수중해설사 과정도 하고 싶어요. 산에 가면 숲해설사가 있고 박물관에는 도슨트가 있잖아요. 바다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죠. 지금도 저희는 다이버 가이드를 할 때 메모판을 가지고 들어가 물고기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곤 합니다. 이런 내용과 기술을 공식 과정으로 만들고 싶기도 해요. 현재 '굿다이버 물고기반' 참가자들이 수중해설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전문위원이며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