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 사망자의 존엄성을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처음부터 기존 장례 관습과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사회가 있는가 하면, 1차 유행 후 비과학적 시신 처리를 반추하고 지침을 개선한 사회, '유족에게 작별인사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나온 곳까지 다양했다.
코로나 재난 초기의 장례 모습은 '철저한 단절'이었다. 보호자의 중환자실 면회가 금지됐고 사망 후 시신 확인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확진자는 사망 직후 비닐 가방에 들어가 24시간 내 화장되거나 매장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장례식은 아예 금지되거나 2m 간격으로 거리두기를 지키는 조건으로 최대 10인까지만 참석이 허가됐다. 참석자들이 사망자 관 근처에 접근하는 것도 금지됐다. 2020년 초 대다수 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각 나라마다 '변화'의 조짐은 보였다.
"작별인사권 달라" 유족이 나선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선 하루 900여명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등 극심한 1차 유행을 겪고 소강상태에 접어든 2020년 4월께 '작별인사권' 캠페인이 벌어졌다. 당시 독일방송(도이치벨레)은 "이탈리아 많은 병원들이 '작별인사권' 캠페인에 참여 중"이라며 "집권당 민주당이 주도한 것으로, 태블릿 기기를 기증받아 임종을 앞둔 입원 환자들에 나눠 줘 가족들이 디지털 방식으로라도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한다"고 보도했다.
직접 공론화에 나선 유족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같은해 8월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었음에도 사망 직전까지 부친의 얼굴을 보지 못한 한 가족의 자녀들은 "이 끔찍한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관련 지침의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고 부분적인 변화를 끌어냈다.
영국, 프랑스 등도 1차 유행 이후 시신 관리 및 장례 지침을 개정했다. 프랑스는 2020년 3월부터 시신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꿨다. 과학적으로 시신을 통한 감염 가능성은 낮다는 공공보건고등위원회(HCSP) 권고와 '바이러스는 심부 장기에서 존속하지만 말초 조직에선 지속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 등이 근거라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변경된 지침에서 "HCSP는 가족들이 확진된 사망자를 볼 수 없는 즉각적인 입관 조치를 권장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표준 예방 조치 등을 준수해 감염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망 24시간 이내에 고인의 시신을 볼 수 없는 건 유족에 심각한 사회심리적 영향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영국도 같은 해 4월 사망 위험 환자의 임종을 가족이 지킬 수 있도록 지침 변경에 착수했다. 당시 이스마일이란 이름의 13세 소년이 병원에서 홀로 사망하면서 영국 전역이 애도를 표했다. 그의 가족이 모두 확진돼 자가 격리 중이었기에 아무도 장례식을 갈 수 없었다. 맷 핸콧 영국 보건장관은 4월 15일 "이제 보호자들이 확진된 사망자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새로운 조치를 도입한다"며 "개인 보호 장비가 부족한 병원, 요양시설에 충분한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등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20년 4월 뉴욕주 노스쇼어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촬영해 공개했다. 영상에는 방호복, 고글, 마스크, 장갑 등 보호 장비를 모두 갖춘 보호자가 중환자실을 들어가 환자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고 애도를 표하는 풍경이 담겼다. 의료진들은 이 모습을 현장에 오지 못한 다른 가족들이 온라인으로 지켜 볼 수 있게 태블릿 PC로 촬영했다. 존엄한 사별을 존중하기 위해 가족의 중환자실 방문을 허용한 것이다.
'창문 달린 관' 등장한 일본
일본의 경우 지자체와 장례 관계자, 의료진들의 섬세함이 눈에 띄었다. 고베시는 2020년 3월 시신이 비닐 가방에 밀폐돼 즉시 화장터로 보내졌던 상황을 고려해 유족에게 투명 가방과 일반 가방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줬다. 투명 가방을 택한 유족은 장례지도사가 배려를 해준다면 화장 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 4차 대유행이 지나면서는 '창문 달린 관'도 등장했다. INQUIER.NET의 보도에 따르면, 시신 얼굴이 놓이는 위치에 구멍이 나 있고 이를 창문처럼 덮을 수 있게 제작됐다. 이를 도입한 요코하마시 관계자는 언론에 "장례업체와의 교류를 토대로 감염 예방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면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시신 방부 처리도 허용됐다. 지난 11일 한 여성이 확진 후 사망한 시어머니 시신을 방부 처리한 뒤 남편이 격리해제돼 퇴원할 때까지 10일을 기다렸다가 장례를 치른 일화가 기사화됐다. 치바대학 의대 사이토 히사코 부교수는 "방부처리를 하면 체내 감염 위험이 극히 낮다"며 "유족 요청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슬픔을 덜어주는 데 도움될 수 있다"고 밝혔다.
관계 단절에 따른 고통은 확진과 별개로 모든 시설 입소자들이 겪는 문제라는 생각을 한 의사는 태블릿PC를 모으는 기부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일본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히로하시 멘은 임종을 앞두고 호스피스 시설에서 지내는 환자들을 위해 2020년 5월 크라우딩 펀딩으로 2000만엔을 모아 100개 시설에 태블릿 PC를 보급했다. 300만엔이 목표였으나 5일 만에 1000만엔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매장 금지=감염 예방' 미신... 염도 허용한 터키
국제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24일 병원체에 감염된 시신을 화장해야 한다는 건 미신에 가깝다고 밝혔다. 시신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가 없는데다, 에볼라 바이러스 등 출혈성 열성 질병이나 콜레라 외에 시신은 일반적으로 전염성이 없고 유행성 독감 사체에서도 폐 검시를 제외하면 감염 위험이 적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팬데믹 와중에도 북미, 유럽 대륙의 나라를 포함해 이슬람권의 중동 지역 국가들에서 광범위하게 매장이 이뤄져왔다. 화장을 금기시하고 시신을 염습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감이 강한 이슬람권의 일부 나라들은 시신을 씻기는 염도 유지했다. WHO나 정부가 권고한 표준 방역 지침을 지키는 조건에서다.
터키가 대표적 예다. 이슬람 문화권에선 보통 종교인인 마을의 자원봉사자나 가족들이 시신을 씻기는 구슬(Ghusl)이란 염과 카판(kaffan)이란 습을 한 후 24시간 내 매장을 하고 모스크 등에서 3일 동안 장례 행사를 치른다. 일부 국가는 구슬 행위를 중단했으나, 터키 등은 최소로 제한된 인원과 조건에서 구슬을 유지했다. 지난 2월 이스탄불에선 시 정부의 지원으로 16개 염습실에서 243명의 염습사들이 코로나 희생자의 구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주도 종교·문화적 차이를 감안해 국내 이슬람 공동체의 장례 문화를 존중했다. 시신에 직접 접촉하거나, 흉부 압박 등 시신의 비말, 체액을 유도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등 각 정부가 정한 방역·위생 지침을 준수하는 조건에서다.
인도네시아, 정부 일방 통제로 시신 탈취까지
인도네시아는 시신 수습에 대한 정부 통제가 심해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사망자를 비닐로 싸서 관에 넣은 후 4시간 이내에 매장한다'는 지침 때문이다. 반발 여론이 고조돼도 지침이 바뀌지 않자 2020년 7월 인도네시아 동부의 한 병원에선 100여명의 시민이 집단으로 병원에 침입해 한 사망자 시신을 회수해 간 사건이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유사 사건이 꾸준히 발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의사소통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처럼 '선화장'을 강제했던 스리랑카도 2020년 동안 이슬람 교인 등의 집단 시위를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매장된 시신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보건당국의 비과학적 입장이 더 분노를 지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도 그해 12월 '인종적·종교적 차이를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스리랑카 정부에 밝혔다. 스리랑카 정부는 2021년 2월 강제 화장 정책을 철회했다.
한국은 지난 1월 27일 장례 지침이 바뀌기 전까지 2년 간, 코로나에 확진된 시신을 사망 직후 화장한 뒤 장례 절차를 거치는 방식을 유지했다. 화장터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면 늦어도 사망한 지 24시간 이내 이뤄졌다. 병원 격리 중 면회는 금지됐고 임종 면회, 시신 확인도 가족 대표 1~2명에게만 원거리 방식으로 허용되면서, 유족들은 관계 단절과 죄책감에 따른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관련기사 :
"쏟아진 피도 못 닦은 채 화장"... 트라우마 시달리는 코로나 유족 http://omn.kr/1y4p9).
한국 유족들 "선화장 지침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 유족의 트라우마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 2월 영국 카디프·브리스톨 대학 등의 연구진이 2020년 3월부터 2021년 1월까지 가족과 사별한 711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해 분석한 결과 병원, 요양원, 장례식장에서의 만남·애도 제한이 불안을 증가시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장례식, 집단적인 애도 관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한 규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장례 관계자 등은 제한된 상황 내에서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연구진은 유족의 트라우마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사별 위원회(UK Commission on Bereavement)와 협력 중이다.
지난해 5월 코로나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A씨는 "한국에서 코로나 재난의 희생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운이 나빴던 예외적 사건처럼 지나치며, 대다수는 코로나를 '감기'라고 말한다"라며 "그러나 지난 2년 간 상처가 깊게 패인 사람들이 옆에 있고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다. 정부가 다음 팬데믹을 대비한다면 무성의하게 오래 끌기만한 선화장 지침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