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필사를 하고 있습니까
글 쓰며 오는 답답함에, 잘 쓰고 싶다는 허영심에 쓰기 요모조모를 기웃거려 보신 분은 알 거예요. 필사하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닮고 싶은 작가가 쓴 책 그대로 베껴 써 보라고요. 짙은 독서를 위한 필사가 아니라 나아진 쓰기를 위한 필사 말이에요.
부러 둘을 구분 지어 설명하는 건, 같은 필사지만 성장 독서를 위한 필사와 성장 쓰기를 위한 필사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책이 좋아, 구절이 좋아, 작가 생각이 좋아, 책 전체가 좋아 필사하는 건 독서를 위한 필사에 해당합니다. 옮겨 적으며, 책 내용을 한 번 더 곱씹는 과정일 테죠.
눈으로 훑는 것에 그쳤을 때보다야 훨씬 많이 남을 테고요. 쓰며 스스로 정화하기도 하고요. 독서 필사는 이런 일이에요. 작가님 텍스트로 전달한 지식, 정보, 감각, 깨침 등을 한 겹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
반면 쓰기 필사는 '한 권의 끼적임'이라는 행위는 같지만 다른 의도와 의식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릅니다. 쓰기 필사는 작가 글을 구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쓰기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시원시원하게 써나가고 싶지만 머뭇거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 혹은 쓰다 중간에 포기하는 날이 잦아 필사를 찾습니다.
그도 아니면 누구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바람에, 조금 나아지고 싶다는 욕심에 베껴 쓸 책을 찾죠. 그러니까 오직 '글쓰기를 배우겠다'는 다짐으로 한 필사라는 겁니다. 독서 필사랑은 필사를 대하는 의도나 의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따금 성장 쓰기를 위한 필사를 하신다고 해놓고, 성장 독서도 아닌 받아쓰기 격 베껴 쓰기를 하시는 분을 봅니다. '글 솜씨를 키우겠다'는 의식이 쏙 빠져있었는데요. 오해가 있으신 듯했습니다. 그저 베껴 쓰면 되는 줄 알던 오해 말입니다.
이것은 학창시절 동영상 강의 듣던 것과 비슷합니다. 분명 나는 자리에 앉아 강의 한 편을 봅니다. 50분이 흘렀고, 한 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따금 집중을 잃었지만 어쨌거나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고요. 들었고요, 그러니까 그냥 들었고요. 그저 봤고요. 결과적으로 내 것이 된 지식은 거의 없을 테고요. 마찬가지로 필사 열 번 해도 글이 잘 늘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래서일 겁니다.
필사를 하려거든 음미해보세요
맹목적으로 받아쓰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대신 글을 '음미하며' 따라 써봐야 합니다. 한 음절, 한 음절 꾹꾹 음미하며 맛보는 것이죠. 게다가 제목, 구성, 흐름, 어휘, 어미, 문체 등 뭉칫 단위로 음미해 보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이건 마치 소울로 충만한 서퍼가 서핑을 타듯 글이라는 파도 표면에 착 밀착해 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왕 이때만큼은 연필로 써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한 글자 적을 때마다 기울이는 집중의 크기가 타이핑 칠 때완 다를 테니 말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옮겨 적느냐가 아니라 작가 필력을 내 것으로 흡수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므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택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하고 싶던 말은 '나도 저 작가님처럼 쓰고 싶어!'라는 의도와 '어떻게 쓰는지 연구할 거야. 그리고 따라 써 볼 거야' 하는 의식으로 필사해 보세요, 였습니다. 영혼 없는 베껴쓰기 말고, 소울풀한 따라 쓰기. 내가 그 작가라도 된냥 몰입하며 필사하기. 그러다 보면 작가와 그가 쓴 글의 진수를 느끼게 될 거예요(소위 '감 잡았다'고 하죠?). 느끼려고 할 때만 느껴지고, 보려고 할 때에만 보이는 게 있는 법. 필사를 하려거든 음미하며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