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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다수 방역 지침을 해제하기까지 한국 사회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방역·치료 지침이 갑자기 여러 번 바뀌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고 오미크론으로 인한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 전달 체계가 흔들리며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 또한 1월~3월까지 꾸준히 발생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조금 다른 경험을 한 지역이 있다. 지난 1월 24일 '지역사회 기반 코로나19 관리모형'(아래 안성모형)을 도입한 안성시다. 안성은 의료 전달 체계의 효율성 확보를 목표로 229개 기초 지자체 중 유일하게 독자적인 체계를 설계해 시범 운영을 해본 곳이다. 안성시는 인구 18만 5441명(9일 기준) 규모의 소도시로 지난 8일까지 총 6만3929명이 확진됐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안성병원은 총 23명의 전문의가 일하고 있으며 294병상 중 170개가 코로나 전담으로 지정돼 확진자를 돌봤다. 
 
2월 1일, 안성시 거주 생후 15개월 이○○군 확진
- 오후 2시 30분, 보건소→안성병원 재택치료 의뢰
- 오후 3시 50분, 재택치료 간호사 전화 '40도 발열에 경련'→즉시 의사 보고
- 오후 4시 30분, 재택치료 의사 전화 진료, 입원 결정
- 저녁 6시 20분, 보호자 자가용으로 안성병원 도착, 아이 입원
2월 5일, 퇴원→전화 모니터링 재택치료 전환
2월 7일, 재택치료 종료

지난 2월 코로나에 확진된 이군이 확진자 등록 후 입원 병상을 배정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시간. 안성병원 재택치료 담당 간호사는 보건소로부터 확진 정보를 받고 1시간 20분 후에 이 군의 보호자에게 전화했고 내용을 즉시 의사에게 보고했다. 진료 필요성을 느낀 의사는 40분 후 다시 보호자에게 연락했고 바로 입원을 결정했다. 이군의 부모는 곧장 자가용을 몰아 병원에 도착했다. 재택치료가 시작된 지 4시간만이다. 

골자는 '방역과 의료의 분리'다. 방역은 보건소가, 의료는 병원이, 평소처럼 운영되는 구조여야 급박한 재난 시기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의료 체계 붕괴도 최소화해 환자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안성병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차 병원인 안성병원이 안성시민 확진자의 입원을 일차적으로 책임졌고 보건소, 1차 병원들과도 긴밀하게 전달 체계를 구축했다.

핵심 "방역은 방역당국이, 의료는 병원이"
 
 현재 관리 시스템(상단 사진)에선 각 화살표마다 보건소와 지자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행정 업무가 수반된다. 안성모형은 방역과 의료 행위를 분리해 이 같은 행정 절차를 없애고 의료 전달 체계의 효율화를 꾀했다.(사진은 임승관 안성병원장 강의 자료 중 갈무리)
현재 관리 시스템(상단 사진)에선 각 화살표마다 보건소와 지자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행정 업무가 수반된다. 안성모형은 방역과 의료 행위를 분리해 이 같은 행정 절차를 없애고 의료 전달 체계의 효율화를 꾀했다.(사진은 임승관 안성병원장 강의 자료 중 갈무리) ⓒ 임승관 안성병원장

통상 확진자가 발생하면 보건소는 기본 역학 조사와 건강 상태를 점검해 조사서를 작성하고 신고한다. 이후 지자체·중수본 병상배정반이 확진자 중증도를 검토하고 병원을 물색한 뒤 병상을 배정하고 보건소에 알린다. 보건소는 이를 확진자에 다시 알린다. 과정마다 공무원들이 서류 등으로 서로 보고하고 허가하는 절차가 개입됐다.

그런데 통일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 없었다. 전국 보건소 직원들과 병상배정 담당자가 병원마다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어 놓고 '이 환자 받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기지 않던 2021년 7월까진 겨우 버텼다. 하지만 이후 하루 확진자가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 단위를 기록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러 업무가 정지된 보건소가 속출했다.

환자 분류, 병상 배정 등의 의료 행위가 공무원에게 맡겨지면서 비효율이 더 컸다. 평상시엔 의사가 환자 진료 후 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위중하면 병원에 입원을 시키며 2차 병원에서도 치료가 힘들면 3차 병원에 의뢰한다. 코로나 땐 서류만 보는 병상배정반 공무원이 이를 전담했고 행정절차 때문에 시간 소모도 컸다. 결국 대유행기에 어떤 확진자는 증상 악화에도 병원을 제때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안성모형은 '환자 분류'와 '병상 배정' 업무를 안성병원으로 가져왔다. '보건소→지자체 병상배정반→보건소·병원' 순서가 '보건소→병원'으로 간소화됐다. 확진자를 기본 조사한 보건소가 정보를 병원에 넘기면, 그 이후는 모두 병원이 알아서 했다. 재택치료팀이 매일 한 번씩 확진자를 전화 상담했고 진료가 필요하면 의사가 전화로 진료를 봤다. 직접 볼 필요가 있으면 의사는 환자를 병원에 설치된 외래 진료 센터로 불렀다. 이 과정에서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지역화·효율화·진료 질 개선, 세 마리 토끼
 안성모형 시범사업 기간 6주(1.24~3.6) 동안 주별 확진자 발생 수와 확진자 입원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안성모형 시범사업 기간 6주(1.24~3.6) 동안 주별 확진자 발생 수와 확진자 입원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 오마이뉴스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가 지난 1월24일~3월6일(6주) 동안 안성모형 성과를 분석한 결과, 입원 판단 후 실제 입원까지 평균 '1시간 12분'이 걸렸다. 가장 짧게는 1분, 가장 길게는 6시간 2분이 소요됐다.

입원 환자 수와 입원 기간이 대폭 줄어들며 병상 가동도 효율화됐다. 2021년 12월 전국 입원율은 20.2%(생활치료센터 포함 49.8%)였으나, 사업 6주 간 안성시 확진자 입원률은 0.67%다. 총 1만 4553명 확진자 중 97명만 입원했다. 이중 62명(63.9%)이 경증이거나 소아 환자와 동반 입원한 보호자였다. 평균 입원 기간은 4.5일이다. 퇴원해도 문제없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바로 조치가 이뤄진 결과다. 기계적으로 격리 기간 7~8일을 채워 입원했던 다른 지역과 차이가 난다. 

비교 대상이었던 포천·오산·평택·동두천·의왕 등 경기도 5개 지역도 입원율이 2.4~5.7%(사업 3주차)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는 능동적인 조정이 아니라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재택치료 시행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데이터센터장은 설명했다.
 
 시범 사업 기간 중 분석된 안성모형 입원환자 평균 이동거리(가장 왼쪽) 그래프와 입원환자 퇴원 등의 현황(중앙) 및 병원 이동에 이용된 교통수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시범 사업 기간 중 분석된 안성모형 입원환자 평균 이동거리(가장 왼쪽) 그래프와 입원환자 퇴원 등의 현황(중앙) 및 병원 이동에 이용된 교통수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 오마이뉴스
 
또 안성시 입원환자의 열에 일곱(69.6%·3주차 기준)이 안성병원에 입원했다. 이전의 26.4%에 비해 크게 증가한 데다, 평균 15.9%에서 36.6%로 증가한 5개 비교지역과도 차이가 크다. 안성모형 전엔 서울, 김포, 일산, 파주, 이천 등 다른 지역으로 대중없이 이송됐다면 안성모형에선 안성병원이 일차적으로 지역민의 진료·입원을 책임졌다. 투석, 분만, 수술 등 병원이 맡을 수 없는 특수 상황의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됐다. 그 결과 입원환자 평균 이동거리가 42.68km에서 7.05km로 대폭 줄었다.

여기에 이동수단 효율화도 더해졌다. 총 시범사업 8주 간(1월24일~3월20일) 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외래 진료 센터를 방문한 307건 중 254건(82.7%)이 자가용을 이용했다. 39건은 방역택시, 12건만 구급차였다. 기존엔 확진자를 119나 보건소 구급차로만 이송할 수 있어서 응급이 아닌 환자조차 구급차를 이용해 비효율이 컸다. 안성병원은 안성시의 지원으로 한 택시업체와 계약해 병원에 전담 방역택시를 두면서 문제를 개선했다.
 
 안성모형 시범사업 기간 3주(1.24~2.13) 동안 분석된 확진자가 거주지역 내 입원한 비율(왼쪽)과 확진환자가 재택치료를 거쳐 입원한 비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안성모형 시범사업 기간 3주(1.24~2.13) 동안 분석된 확진자가 거주지역 내 입원한 비율(왼쪽)과 확진환자가 재택치료를 거쳐 입원한 비율 그래프. (자료 출처 : 안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 오마이뉴스
 
끝으로 '재택치료 경로를 거친 입원율'이 18.3%에서 33.9%(사업 3주차)로 증가했다. 반면 5개 대조 지역은 15.67%에서 7.7%로 감소했다. 김명희 데이터센터장은 "안성모형의 진료의 질이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기존엔 환자의 얼굴도, 병력도 잘 모르는 병상배정반이 입원을 시키거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입원시키지 않거나 했는데, 재택치료를 거쳤다는 건 의사가 전화든 대면이든 환자를 직접 보고나서 판단해 환자 입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2년 동안 미리 준비하고 연습했다

안성모형은 '어느날 갑자기 발명된' 결과물이 아니다. 임승관 병원장은 2020년 2~3월 1차 유행을 겪으면서 의료 전달 체계 변화를 고민했다. 당시 신천지 대구 교회를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되며 신자들이 중증도와 관련없이 전담 병상을 거의 채우다보니, 지역사회에서 추가 감염된 다른 응급 확진자가 갈 수 있는 병상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임 병원장은 "있는 자원을 최대로 모아도 부족한 재난 시기 '최선의 효율이 뭐냐'고 질문했을 때 내린 답이 '우리가 평상시 하던 것 그대로'였다"며 "기존 관리 시스템은 하루 확진자가 1만 명, 10만 명이 넘으면 전국 보건소에 블랙아웃이 오면서 기능이 깨질 게 뻔했다. 효율성과 함께 '위험군 아닌 확진자 집단의 관리 강도를 어느 수준까지 안전하게 낮출 수 있는지'라는 대기자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2020년 8월, 코로나 2차 유행 시기 경기도가 도입한 '홈케어'(가정대기자 관리시스템)였다. 2021년 10월 델타 변이 유행 때 중수본이 도입한 재택치료의 원형이다. 당시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을 맡았던 임승관 병원장이 설계해 운영을 진두지휘했다. 운영은 2차 유행이 잠잠해진 2020년 9월 중순 잠시 중단됐다가 3차 유행이 시작된 그해 12월 재개돼 2021년 3월까지 지속됐다.  경기도는 총 1만 2263명 확진자가 가정대기 관리를 받았지만 가정에서 사망한 확진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계속 시스템을 유지했고 정부가 재택치료를 공식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편입됐다. 그 사이 임 병원장은 '확진자 외래 진료' 체계를 준비했다. 먼저 9~10월 수원에 '이동형 모듈 음압 병원'으로 화제가 됐던 재택치료 연계 단기진료센터를 시범 운영했다. 그는 "당시 관심은 '첨단 병원'이라는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쏠렸지만 사실 진짜 강조하려고 했던 건 확진자에 대한 외래 진료 서비스 체계가 필요하고, 또 모든 병원에서 가능하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2021년 10월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 운영단장을 그만두고 안성병원으로 돌아온 임 병원장은 곧 병원에 확진자 외래 진료 체계를 도입했다. 당시 확진자의 병원 방문은 정부 방역 지침과 맞지 않아 입원을 우회로 활용해야 했다. 외래 진료가 필요한 확진자는 일부러 하루 동안 입원시키고, 좀 더 관찰이 필요한 경우 2~3일을 입원시켜 진료를 봤다.

한 달여 후 과거 어린이집이 있었던 병원 옆 빈 건물에 '재택 외래 진료센터'로 만들었다. 환자를 볼 때마다 방역복, 마스크 등을 환복하는 방식은 비효율이라는 생각에 방 중앙에 파티션을 쳐 의료진과 확진자의 공간을 분리했다. 의료진은 벽 유리창을 통해 환자를 살폈고, 방사선 촬영 등 검사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올해 1월 이런 경험을 모두 종합하고 의료 전달 체계의 효율까지 꾀한 안성모델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과 거버넌스의 힘"
 
 안성병원 '재택 외래 진료 센터'에서 의료진이 확진된 환자 진료를 보는 모습.
안성병원 '재택 외래 진료 센터'에서 의료진이 확진된 환자 진료를 보는 모습. ⓒ 안성병원

시범사업은 지난 3월 20일 종료됐으나 성과가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면서 안성시는 안성모형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안성모형이 가능한 데엔 사람의 힘이 컸다. 병원 내에서 실무를 맡았던 최용준 소아과 전문의는 "오미크론 특성상 응급 소아 환자가 증가할 거라고 예상했다. 두 달 동안 집에 가지 않고 24시간 병원에 상주했다"며 "진료 문의가 오면 10~20분 내에 바로 보호자와 연락했고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인근 약국도 안성모형에 흔쾌히 참여하며 주말 근무를 감내했고,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약도 신속히 조제해줬다.

지역 의사들의 협력으로 1차 의료기관과 안성병원(2차 의료기관)이 긴밀한 전달 체계를 구축했다. 2월부터 1차 의원은 일반관리군, 안성병원은 고위험군의 재택치료를 전담했다. 평소 자기 병원을 찾던 주민이 확진됐기에, 주치의 제도처럼 큰 어려움 없이 재택치료가 지역 사회에 안착됐다. 환자 고열이 며칠째 계속되는 등 2차 병원에 의뢰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안성병원이 환자를 맡았다. 안성병원은 재택치료 시작 전 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열어 '2차 병원을 믿고, 문제가 생기면 안성병원으로 언제든 연락하시라'고 알렸다. 

임승관 병원장은 모형의 원동력으로 '지역 거버넌스'를 강조했다. 안성시보건소 재택치료TF팀 관계자는 "안성 시민들이 멀리 외부로 나가지 않고 지역 병원인 안성병원에 자체적으로 입원을 하고 신속하게 진료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전국 첫 시도였음에도 안성시도 함께 할 수 있었다"며 "보건소뿐만 아니라 시청 행정과, 시민안전과, 교통정책과 등 여러 부서와 경기도 감염병지원사업단, 보건복지부 중수본, 지역 의사회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참여한 결과"라고 말했다.

해소하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최 전문의는 "보건소의 업무 과부하로 병원까지 확진자가 연계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문제는 병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며 "코로나 기간 동안 전문의 5명이 나갔지만 아직 충원되지 않았다. 지역 공공병원의 현실이다. 업무는 많은데 의료진은 부족한 인력난도 있었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아닌 '미확진 자가격리자'에 대한 진료 전달 체계도 과제로 남았다.

임 병원장은 "오미크론 시기, 정부는 대면 진료 센터를 몇 개 만들었다고 발표했고 기자들도 몇 개를 만들었냐고만 물었지만 문제는 '몇 개'가 아니라 전달 체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짰느냐였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반성하고 공부해 미리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했다"며 "의사 수 15명 정도의 소박한 지역 공공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규모가 더 크고 시설도 좋은 민간 병원들도 못할 이유가 없다. 팬데믹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안성병원#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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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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