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면서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가 반지성주의 때문이라면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는 까닭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 덕분이라는 얘기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비판하기 위해 탄생한 개념
그렇다면 반지성주의란 무엇인가.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더가 1963년 출판한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호프스태더는 미국 건국기부터 1963년까지의 미국 역사를 지성주의와 반지성주의의 대결로 파악했다. 그는 근대 민주주의에 기초해 미국을 건설한 '건국의 아버지들'부터 과학의 시대 이후 과학적 이성주의를 따르는 학구파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를 지성주의의 역사적 흐름으로, 서부 개척 이후 물적 성공을 향한 열망과 근본적 복음주의 기독교의 결합부터 '매카시즘'에 이르기까지를 지성주의에 대항하는 반지성주의의 역사적 흐름으로 보았다.
이처럼 그는 이성과 과학에 입각한 지성에 대한 불신과 반감에 기초해 이를 경멸하는 사회적 경향을 반지성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반지성주의는 다름 아닌 매카시즘이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을 필두로 공론장에서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해 축출하는 반공주의적 광풍이 불었고 이를 매카시의 이름을 따 매카시즘이라 불렀다. 호프스태더가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저술한 이유도 매카시즘을 개념화해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반지성주의라더니...
그렇다면 2022년 한국에서 반지성주의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것처럼 "집단적 갈등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는 입맛에 맞는 편향적인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보를 편향적으로 취사선택을 하는 이들에게만 있지 않다.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를 창출하고 유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유도하는 이들 역시 문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아래 가세연)다. 가세연은 부정투표설과 같이 진실과는 상관없이 왜곡과 허위를 뒤섞은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영상을 올려왔다. 공인도 아닌 이들의 얼굴을 포함한 신상을 공개한 경우도 있다. 아예 대놓고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로 점철된 이들이야말로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에 다름없다.
그런데 이런 가세연이 윤 대통령의 특별 초청을 받아 취임식에 참석했다. 가세연은 취임식 날이 10일, '[현장출동] 당선인 초청'이라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강용석 가세연 소장과 김세의 가세연 대표는 초청장을 꺼내 들며 자랑하기도 했다.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규정해놓고는 반지성주의의 대표주자를 취임식에 초청하다니, 모순의 극치다.
구체적 대안 없이 표심 구애용 '한 줄 공약'은 후퇴
비단 가세연을 취임식에 초청한 것만이 모순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가 대선 과정 내내 반지성주의적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른바 '한 줄 공약'을 올렸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가족부 폐지'나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었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 없이 단순히 젊은 남성층의 표심을 사기 위한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행위였다. 실제로 해당 공약들은 지난 3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110대 과제'에서 제외되어 '공약 후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윤 대통령은 호프스태더가 반지성주의 개념을 통해 비판한 매카시즘적 반공주의와 결이 맞닿은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 '난 공산주의가 싫다' 등의 게시글을 올리자 이후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이마트를 방문해 멸치와 콩을 샀다는 게시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의 해시태그도 함께 달았다. 이후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멸공 릴레이'를 이어 나갔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페이스북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다섯 글자를 게시한 적도 있다.
멸공과 주적이라는 냉전 시대의 용어가 2022년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외에도 외국인 건강보험과 관련해 1조 5천억 원이 넘는 흑자가 난 사실은 애써 무시한 채 국민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비판하며 외국인 혐오를 조장한 것이 반지성주의가 아니면 무엇일까(관련기사 :
'숟가락 망언' 윤석열 후보는 외국인 건보 흑자 알고 있나 http://omn.kr/1x56w).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만 살펴본다면 그는 스스로 언급한 민주주의의 지탱 요소인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와는 정반대로 반지성주의에 입각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오는 데 앞장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행보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