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방에 갇혀버린 아들
지난 주말이었다. 거실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한가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을 때, 중2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최근 들어 키가 부쩍 크더니 제법 청소년티가 났다. 하지만 벽지와 구분 안 가는 하얀 얼굴과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종아리를 마주하곤 긴 한숨이 나왔다. 아들 얼굴에 땅끝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부터 아들은 방에 갇혀 버렸다. 원래는 운동을 좋아해서 어릴 땐 태권도와 줄넘기를 꾸준히 했고,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학교 축구부에도 가입해서 대회까지 나가 수상한 경험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방과 후 배드민턴을 시작해서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 나에게도 종종 축구나 농구를 하자고 졸라서 출렁이는 뱃살을 부여잡고 끌려다니곤 했었다.
코로나19로 학교에서 체육 활동이 제한되더니 방과 후 체육 수업도 하나둘 취소되기 시작했다. 아들은 결국, 배드민턴을 그만두게 되었다. 심지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수업을 받은 시기에는 체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저녁에 근처 공원에 나가 함께 뛰기도 했었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그마저도 부담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아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더구나 사춘기가 찾아오면서부터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평일에는 학원도 늦게 끝나다 보니 집에 오면 저녁이었다. 남은 시간은 쉰다며 핸드폰을 부여잡고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았다.
체력이 약해진 것이 눈에 보였다. 가끔 어디를 가기 위해 조금만 오래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렸다. 우스갯소리로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데 중년이 훌쩍 넘은 나보다도 체력이 좋지 않다. 걱정되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체력 저하
비단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생건강 체력평가(PAPS) 하위 등급 학생 비율이 전체 17.7%까지 상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학생건강 체력평가는 옛 체력장을 개선한 제도로 심폐 지구력, 유연성, 근력·근지구력, 순발력, 비만 5개 체력 요소를 측정한다. 검사 항목별 점수를 종합해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 뒤, 20점 단위로 끊어 최상위 1등급부터 최하위 5등급까지 신체 능력등급을 판정했다.
저체력으로 평가되는 하위 4, 5등급 학생 비율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12.2%에서 지난해 17.7%까지 5% 이상 상승했다. 등교 수업이 중단되면서 체육 수업, 체육대회 등 활동이 중단된 데 그 원인이 있었다(관련 기사 : 코로나로 학생 18% '저체력'···학교 체력평가 앞당긴다, 동아일보).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들의 체력 저하는 추측이 아닌 사실이었다. 무언가 조치 없이 이대로 간다면 나중에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몸의 건강은 마음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중엔 늦게까지 학원에 있고, 주말에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종일 집에만 있으니 어디 스트레스를 풀 곳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나름 게임으로 푸는 것 같은데, 옆에서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벅벅 내는 등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듯했다. 사춘기는 감정의 변화가 크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기 쉬운데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니 어느 순간 폭발해서 집안 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춘기임을 고려해도 그 정도가 심할 때가 있었다.
나부터 뛰어야겠다
요즘 들어 젊은층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혹여나 아들이 그런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가 다소 잠잠해지고, 야외 활동도 가능해지면서 불쑥 든 생각은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였다.
아직 학교 방과 후 체육 활동은 정상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근처 사설 체육관에 등록하면 되었다. 아들이 기분 좋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아들, 주말에 운동 배워보는 것 어때?"
"주말에도 학원 가는데 시간 없어."
"아냐. 엄마랑 이야기했는데, 네가 운동한다고 하면 시간 조정하기로 했어."
"싫어. 나가기 귀찮아."
아들은 여지없이 내 말을 튕겨냈다. 속이 새까맣게 탔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남은 방법은 방과 후 수업이 정상화 되면 잘 꼬셔서 체육 활동을 등록시키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주말에 시간 내서 밖에 데리고 나가 산책이라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핸드폰 인터넷 사용 시간을 늘려준다는 조건으로 협상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아내 말로는 조만간 학생건강 체력평가가 있다고 했다. 전에 2등급을 받았다고 자신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이번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이번에 크게 충격받고 다시 운동할 시작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나의 고민은 온통 사춘기 아들에게 향해 있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운동이 되리라 믿는다. 잔소리를 하기보다 일단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나 역시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살이 5kg 가량 늘었다. 몹시 늘어진 뱃살은 자꾸 앞으로 튀어나왔다. 어디를 가든 얼굴에 달이 떴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야겠다. 운동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연스레 아들도 따라올 것이다. 당장 운동장부터 뛰어야겠다.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조깅화를 꺼내 운동화 끈부터 바싹 조여 보련다. 말로만 하지 말고 최소 3kg은 다음 달까지 반드시 빼는 것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