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엄마~ 이것 좀 봐봐, 예쁘지?"
아이가 전에 없이 기분 좋은 얼굴로 보여준 것은 별다를 것 없는 풍경 사진이었다. 꽃망울을 터트리거나, 만개한 봄꽃 사진부터 초록으로 뒤덮인 나무와 모래색의 건물, 하릴없이 오후의 햇빛을 받고 있는 농구 골대와 빛바랜 농구공. 유리창을 통해 본 하늘과 구름.
특별할 것 없는 사진이었지만 원래 피사체에 애정이 담기면 그 사진은 뭔가 좀 다르게 보인다. 내 눈엔 그저 풍경 사진이었지만 사진을 보여주는 아이의 눈에서는 애정이 뚝뚝 흘렀다. 사진보다 아이의 얼굴에 더 눈길이 갔다. 아이의 마음까지 찍힌 기분이랄까.
"어디야? 예쁘다~"
"우리 학교. 진짜 이쁘지?"
"와, 진짜? 학교 되게 이쁘다~."
사실, 내 눈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사진이었지만 뽐내듯 보여주는 아이의 상기된 표정이 예뻐, 나는 가능한 온갖 리액션을 담아 공감을 표해주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 시절 심한 사춘기를 겪는 아이를 지켜보며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는 살짝 놓이기도 한다.
단순히 학교가 마음에 드는 건지, 사춘기가 끝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학교와 친구들에 마음을 붙이는 걸 보니 성적을 떠나 한고비 넘었다 싶다.
학교를 애정하면서 생긴 변화
아이가 학교를 애정 하다 보니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도 별 불평이 없다. 학교가 싫었더라면 일년 365일 내내 아이의 불쾌한 얼굴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도 별말이 없으니 내가 살맛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학교가 파라다이스일 수 있을까. 잔소리 많은 선생님도 있고 수행평가도 많고 시험도 무진장 어렵단다. 시험이 어려운 것만 빼면 다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내신은 포기해야 하는 학교이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것도 내 눈엔 굉장한 변화다(중학교 다닐 때는 아예 말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첫째를 처음 키우던 초보 엄마 시절, 나는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첫째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나는 아이에게 내적 동기를 키워주려고 애썼다. 내적 동기 그러니까 안에서 끓어오르는 승부욕, 잘하고 싶고 잘해야겠다는 욕구들이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믿었었다.
말하자면 결과 지향적인 육아 방식이었다고 할까. 조급했던 나에게는 아이가 현재 느끼는 감정보다 차근차근 계획에 맞춘 공부 일정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에 처음으로 맞닥뜨린 친구와의 문제를 너무 사소하게 넘겨버렸다.
"괜찮아. 그냥 잊어버려. 어차피 초등학교 때 친구는 나중에 안 만나."
다독거리며 말해주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무슨 초등학생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을 짓밟는 정서 폭력이란 말인가. 갈등을 겪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갈등을 회피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을 겪고 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그 나이에 겪지 않으면 안 될 것들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시간이 되든 모두 건강한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하는 학교라는 공간. 그 안에서 잘 어울리며 지내고 싶은 동기, 그 외적 동기가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준다는 것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인생에 무슨 지름길이 있으며, 아픔과 고통 없는 성장이 어디 있다고 무리수를 두었나 싶다. 강한 내적 동기가 필요한 것은, 아무리 수많은 자극이 외부에서 주어져도 꿈쩍 않는 나 같은 40대 갱년기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의 변화가 눈물겹도록 반갑다. 대입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생긴 아이들끼리의 동지애와도 비슷한 우정도 고맙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아이들에게 생긴 학교의 순기능인지, 아니면 사춘기의 긴 터널을 통과한 아이가 보내오는 신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웃음에 내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체험학습을 앞둔 저녁의 일이었다. 그날도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온 딸은 내일 아침 9시까지 서울랜드 정문 앞에 집합해야 한다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이동거리를 감안해 도시락 쌀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나에게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늦게 안 간단다. 무려 지하철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두 시간 전에 출발한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늦게 온 4명은 '담임쌤'이랑 하루 종일 함께 다녀야 한다는 협박(?)이 있었다고 했다. 지각하지 말라는 말일 뿐이었을텐데, 아이는 오픈런에 진심이었다.
"엄마, 나 차라리 지금 출발해서 그 앞에서 텐트를 칠까?"
딸의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왔다. 일찍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잠자리에 든 딸은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일어나 정말로 서울랜드에 오픈런을 했다. 아, 내가 오픈런 하는 딸을 보게 될 줄이야(기왕 하는 김에 학교도 화끈하게 오픈런 어떠니?).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행복이, 그리고 이 애정이 부디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