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잘 사는 법이 궁금했던 저는 자람패밀리(부모의 성장을 돕는 사회적기업)에서 자람지기로 일하며 부모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즘 부모 다시보기' 시리즈는 '요즘 부모'들을 대표해 '부모나이 11살'인 제가 부모학 전문가 자람패밀리 이성아 대표에게 묻고 들은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기자말] |
부모가 되고 부모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만큼 부모가 된 나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이'를 잘 키우라고만 할 뿐, '부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부모학 전문가'인 자람패밀리 이성아 대표를 만나게 됐고, 부모로 잘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 무작정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든 거예요
- 제가 유별난 걸까요?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분명 육아가 편해진 세상인데, 전 아이를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들죠?"
"아연님은 어떤 점이 힘들어요?"
- 우선 피곤해요. 아이가 없을 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는데 부모가 된 뒤로는 아이가 일어나면 일어나고, 아이가 자면 밀린 일을 해야 하니까... 잠이 늘 부족해요. 아이는 쉬지 않고 저를 찾아요. 얼마 전 외국의 한 부부가 아이들이 부모를 얼마나 찾는지를 체크한 게 화제였어요. 12살, 8살 두 아이가 한 시간 동안 15번이나 엄마, 아빠를 찾더래요. 4분에 한번 꼴인데 아이들이 어릴 땐 그보다 더했던 것 같아요.
""그러게요. 5분 대기조가 빈말이 아니네요. 누가 들어도 힘들 상황인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스스로 되묻고 있네요. 우리는 지금 이 정도는 힘든 게 아니라고,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거라고 내가 나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도 그랬어요.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세상 참 좋아졌다', '그 까짓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였거든요. 억울하긴 한데 딱히 뭐라고 반박하기가 어려웠어요. 예전보다 편리해진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지나고 보니, 그 때 미처 인정하지 못했던 건 내가 힘든 것도 100% 진실이라는 거예요."
- 맞아요. 힘든데 힘들어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다들 이러고 사는데 나만 툴툴대는 것 같아서, 힘들어하는 내가 못마땅 해요. 세탁기도 없던 시절에 천기저귀를 손으로 빨아가며 우리 삼남매를 키우신 친정 엄마를 떠올리며 그만 툴툴대고 어서 힘내라고 나를 다그쳤어요.
"작년에 간단한 어깨 수술을 했어요. 입원을 했는데 저보다 아픈 분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렇다고 제가 안 아픈가요? 저 정말 아팠거든요. 그리고 정말 무서웠어요. 주사 맞기 싫어서 가급적 병원도 안 가는 데 수술을 앞뒀으니 어땠겠어요.
물론 누가 '그 나이에도 주사가 무섭냐'고 하면 할 말은 없어요. 그런데 무서워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예요. 그럴 때 내가 할 일은 '더한 사람도 많은 데 이 정도 수술이 뭐가 무섭냐'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게 아니라 '주사도 무서워하는 내가 수술 받으려고 입원을 했네. 몸을 돌보려고 용기를 냈구나' 하고 나를 알아주는 거예요.
힘든 건 비교급이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살아요. 호부호형 못하던 홍길동도 아닌데 왜 힘들다는 말을 못해요. 내가 힘들면 힘든 거예요.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세요. 그래야 힘이 나요."
부모라고 당연히, 잘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힘이 나지 않을 땐 내가 의지가 약해서인 줄 알았는데 힘든 건 알아주지 않고 다그치기만 했기 때문이었네요.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노력해라',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라'와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받아왔어요. 비교하는 방식이 익숙해지면서 내 마음을 타인과 비교해 판단하고, 타인의 마음은 내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죠.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고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누군가에게 함부로 '넌 편하겠다'라고 하는 거예요. 돌봄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활동이라는 거, 완전 동의하시죠? 육아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 동,식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그게 돌봄의 본질이거든요. 예전에 대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에도 '애 볼래? 밭 갈래?' 하면 밭 간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만큼 돌봄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힘들고 전문적인 일이란 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모든, 부모가 아니든!).
그걸 인정하면 그 일의 가치를 다르게 보게 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게 되지요. 돌봄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질 거예요. 부모가 되면 아이를 돌보는 일을 당연히 쉽게, 잘 할 수 있는 거라고 기본값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를 돌보는 건 힘이 드는 겁니다. 당신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 부모가 되고 나서야 '눈에 넣어도 안아픈 자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어요. 그리고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아픈 자식'이라도 하루 세끼 챙기며 돌보는 건 힘들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힘든 건 힘든 거예요. 사랑한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죠. 오히려 사랑하니까 더 잘 하고 싶고, 더 많이 해주고 싶어요. 육아는 원래 힘든 거고, 그 힘든 육아를 잘 하려고 하니 더 힘든 거예요. 저는 부모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할 때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가 보여서 참 예뻐요.
'우린 그렇게 안 키웠어도 잘 컸는데... 요즘 부모들은 유별나다'라는 말은 사회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내 경험의 잣대만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위험한 태도예요. 말려들어 억울해 하기보다 참 많이 변한 세상 속에서 내가 오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로 받아들여보면 어떨까요?(그래도 계속 그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러라 그래..요)."
덧붙이는 글 | 자람패밀리(https://zaramfamily.com/)는 부모인 나와 가족의 행복한 삶에 대해 연구하고, 부모들의 연결과 성장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이 시리즈는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