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거리로 나섰다. '경남피플퍼스트'는 25일 오전 경남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모여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
발달장애인은 투표 때 보조를 받을 수 없다. 선관위는 시각‧신체장애가 있는 중복장애인만 투표보조가 가능하고 발달장애인은 인지 기능이 있기에 혼자 투표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은 후보 공보물이나 선거책자의 내용이 어렵고, 투표용지의 투표란이 작아 손떨림이 있어 찍기가 힘들다고 호소한다. 투표용지도 정당로고와 후보 얼굴사진이 들어간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희동씨는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때 집으로 후보 관련 우편물이 모였다. 그 봉투를 열어보니 후보에 대한 여러 설명 글씨도 작고 내용도 어려운 말로 적혀 있었다"며 "하지만 그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쉬운 말도 많은데 왜 어려운 글자와 이해하기 힘든 말들만 적어 놓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에 대한 공보물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게 후보자들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나라와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제대로 뽑을 수 있다"며 "다음 선거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을 위해 알기 쉬운 선거자료가 집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처음 투표를 했다고 한 박민서씨는 "처음 하는 선거라 들뜬 마음으로 투표소로 가 안내원들의 안내에 따라 투표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이해해 가며 기표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투표용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표소 안에는 투표용지와 도장이 있었는데 도장을 들고 용지에 찍으려 하니 란이 너무 작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은 손떨림이 많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와 친구들이 투표한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무효가 되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하겠느냐"며 "조금만 생각하고 고민해 투표용지를 만든다면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누구나 편안하게 투표할 수 있어 소중한 한 표, 즉 나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준혁씨는 "중앙선관위는 시각, 신체장애가 있는 중복장애인만 투표보조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며 "발달장애인이라 인지 기능이 부족하나 후보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오히려 차별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6일 서울에서 지방선거 설명회와 모의투표를 진행했는데 발달장애인들이 지방선거에서 뽑는 사람이 너무 많고 누구를 뽑는지 어려웠고, 투표용지를 여러 장 나눠서 주기 때문에 투표를 두 번해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훈씨는 "지난 대선 때 투표할 때 차별을 받은 발달장애인이 많았다"며 "창원마산에서 한 발달장애인은 부모와 함께 투표소로 갔는데, 관계자가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고 기표소 밖에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결국 그 발달장애인은 투표용지를 사용하지 못했고, 결국 '사표'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만, 스코틀랜드, 영국은 정당 로고와 후보자 사진 등이 들어간 그림투표용지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정당 로고와 후보자 사진 등이 들어간 그림투표용지를 제작해 달라"고 강조했다.
경남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은 시민의 정당한 참정권을 요구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들은 "우리는 선거의 과정에서 비밀보장과 자기결정권을 지켜질 수 있도록 공적인 투표보조를 요구해 왔다"며 "필요한 장애인들 모두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투표보조를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진행할지 명확하게 기준을 제시하고 투표보조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또한 "기존의 선거자료는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나 영어, 전문어나 신조어들을 쓰고 있어 선거 공약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후보자의 선거자료 내용이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후보자의 공약 내용과 일치하는 그림과 주요 공약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구성된 선거자료가 필요하다. 지방선거 후보자나 정당에 가서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제작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밖에 "현재 우리나라의 투표용지는 칸이 너무 작아 투표도장을 찍기 힘들고, 숫자와 글씨로만 되어 있어 글을 잘 알지 못하거나 숫자를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렵다"며 "후보자의 얼굴이 나온 사진과 정당의 로고, 색깔 등이 들어가 다양한 정보를 담은 투표용지가 제작돼야 한다. 우리나라도 그림투표용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설명회와 모의투표 필요하다고도 했다. 경남피플퍼스트는 "최근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만 18세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청에서 선거 모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며 "발달장애인도 선거의 과정과 방법을 알려주는 설명회와 투표의 절차를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모의투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에 지역 선관위에 투표방법에 대해 연습할 수 있도록 설명회와 모의투표를 진행해 달라"고 밝혔다.
경남지역에는 발달장애인 1만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