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달에 이어 다시 한번 금리를 인상했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건 지난 2007년 7월과 8월 이후 약 15년 만이다.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는 한은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통위는 금리를 올리지 않고 높아진 물가를 방치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당장의 경기 위축보다 그 정도가 심각할 것으로 판단했다.
성장 둔화보단 고물가 부작용 우려한 한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6일 오전 통화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고 밝혔다. 최근 9개월 사이 다섯 번째 금리 인상이다. 한은은 지난해 8월 26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해 1년 넘게 유지돼 온 '제로 금리 시대'의 마감을 알렸다. 이어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4월, 5월 금리를 각각 0.25%p씩 올렸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 스텝'은 없었다. 그러나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인상한 것 또한 이례적인 일이라 시장에서는 사실상 빅 스텝에 버금가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가를 잡겠다는 한은의 굳은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뛰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를 기록한 건 지난 2008년 10월 이후 13년 6개월 만의 일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폭은 그보다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가 끝난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다음달 5% 넘는 물가 상승을 기록할 게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며 "지난 3월, 올해 물가를 상고하저(상반기엔 높고 하반기엔 낮아진다)로 예상했는데 현재 여건상 물가 '피크'가 중반기 이후에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내년 초까지도 3~4%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센 가운데 경제 성장 전망의 경우 상·하방 압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길어지고 중국의 봉쇄 조치가 지속되는 등 세계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점은 분명한 '악재'다. 하지만 방역 완화 조치로 민간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은 '호재'다.
한은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 재정 확대 또한 국내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걸로 내다봤다. 또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2.7%, 2.4%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2.7%, 2.4% 성장률에 대해 누군가는 굉장히 낮은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이 성장률은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 상방 위험과 경제 성장이 주춤해질 가능성을 비교했을 때 물가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는 침체국면에 들어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스태그플레이션보단 물가 상승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추가 금리 인상 시사
이날 금통위가 공개한 통화정책방향에서도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앞으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한은이 오는 7월~8월 연속으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통화정책방향에 담긴) '당분간'을 수개월로 해석하는 건 금통위의 의도와 부합한다"면서도 "물가·성장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결정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준금리를 중립금리 수준 이상으로 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뒤 "(한은 내부에서 바라보고 있는) 중립금리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공개하는 데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기준금리를 중립금리 수준에 수렴하도록 하자는 게 금통위원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