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배가 고플 때, 입이 심심할 때, 누군가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제과점을 찾는다. 눈살 찌푸리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2021년 매출 7조 원을 돌파한 SPC그룹 브랜드 중 하나가 파리바게뜨다. 그런데 요즘은 파리바게뜨 간판만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여성노동자를 갈아 만드는 빵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온의 오븐 앞에서 땀은 줄줄 흐르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화장실도 참고 일 하는데…. 생리까지 해…. 지옥이 따로 없다. 틈내서 화장실 한 번 갔는데 생리혈이 땀에 번져 팬티에 다 번져 있어 본 적 있는지? 찝찝함이 문제가 아니라 존엄성과 자존감의 문제다. 그런데도 인력 문제로 보건 사용은 거의 불가능하고, 한노(한국노총)는 회사 좋으라고 보건 사용에 조건을 다는 단체협약을 맺어와 사용을 더 힘들게 만들어 왔다. 기가 막혀 어떻게든 보건휴가 사용 문제를 해결해보려, 알려보려 라디오에 출연했다. 그게 전부다.'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트위터, 2021년 6월 4일)
하지만 SPC 그룹의 문제는 여성노동자를 '갈아' 만든 빵으로 배를 채운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린 뒤에도 일터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SPC그룹은 라디오에서 화장실 이용에 따른 어려움을 증언한 한 제빵 여성노동자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후 SPC그룹은 노동자들이 기본권과 건강권 쟁취를 위해 뭉친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섰다.
민주노총 조합원 탈퇴 시 해당 관리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했고 이에 관리자들은 적극적으로 조합원들을 회유, 협박했다. "민주노총에 남아있으면 불이익을 받는다" 같은 말을 서슴지 않았고 승진에서도 차별을 일삼았다. 750명가량이었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1년 만에 200여명으로 줄었다. 일하는 동안 최소한 점심 먹고, 화장실에 가고, 아프면 쉬자는 파리바게뜨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조파괴의 표적이 되어버렸고, 신뢰의 공간이던 노동조합은 모래폭풍에 휩싸였다.
포켓몬빵으로 배불린 SPC그룹의 노조파괴, 어디선가 본 모습
2016년 3월 17일 마흔두 살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의 한광호 열사다. 유성기업은 2011년 5월 18일 직장 폐쇄를 강행했고 용역 깡패까지 동원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폭력과 고소·고발, 징계로 생계뿐 아니라 삶까지 망가트렸다.
노조파괴는 노동자들의 생활 곳곳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일터도 가정도 모두 엉망이 되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대단한 걸 요구했느냐? 아니다. 주야간 10~12시간씩 2교대 사업장으로 일하면서 야간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던 이윤 중심 노동환경을 노동자의 몸과 삶을 기준으로 바꾸고자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했을 뿐이다. 10년 동안 계속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기본적인 권리 요구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상황 변화는 없었고, 조합원들의 건강은 위험 수위에 달했다.
그로부터 딱 11년하고도 하루가 지난 2022년 5월 19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53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SPC그룹이 지속적으로 노조 탈퇴 회유 등 노조 와해 전략을 펼치는 데 대한 투쟁이었고, 월 6회 휴가와 병가 보장, 점심시간 1시간 보장, 임신 노동자 보호 등의 '노동환경 개선', 아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53일이나 되는 단식 뒤에도 회사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단식은 중단했지만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파리바게뜨지회의 투쟁을 지켜보며, 유성기업의 싸움이 떠올랐다. 노동조합은 스스로 억압과 착취의 존재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이 일과 삶에서 의미를 찾고, 동료들과 함께 존엄할 권리를 되찾아가는 주체적인 과정을 밟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SPC그룹의 행위는 이를 전면에서 부정하고, 기업의 운영을 반인권적으로 하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 유성기업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많은 노동자의 몸과 마음, 삶을 파괴했던 노조파괴가 달콤한 빵을 만드는 파리바게뜨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노조파괴는 여성노동자를 아프게 한다
파리바게뜨는 일하는 사람 80%가량이 여성이다.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해온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노동자는 값싸고 유연하게 쓰인다. 그동안 SPC그룹은 이를 활용해 최소비용으로 기업의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일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인 차별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협력업체 직원으로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조건도 감내해야 했다. 출산이나 유산 관련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했다. 제때 쉬지 못해 유산한 노동자도 있다. 성차별에 근거한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 보장받지 못하는 기본권과 건강권의 영향은 더 취약한 조건에 놓인 여성노동자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
2018년 전국 파리바게뜨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가 넘는 답변자가 휴게공간과 탈의공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하고, 80%는 지난 1년 사이 아픈데도 나와서 일해야 했다. 당시 설문조사에서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자의 연간 유산율은 50%에 달했다. 노조파괴에 맞서, 휴가와 병가, 점심시간 보장을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을 지키고 연대하는 것이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나래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