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에 살다가 떠난 새끼 길고양이 봄이
 우리 집에 살다가 떠난 새끼 길고양이 봄이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작고 어린 생명이 요 며칠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끝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3일간 우리집에 머무르다 떠난 길고양이 '봄이' 이야기다. 

요즘 아내는 길고양이 챙기는 데 말 그대로 온몸을 '갈아 넣는' 중이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철거촌 일대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데, 난 우스갯소리로 아내를 '배방읍 길고양이 대모'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루는 거의 다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집에 데려왔다. 그때가 5월 30일이다. 

첫눈에 보기에도 너무 안쓰러웠다. 아내가 그러는데 병원에선 복막염이라고 했단다. 아내는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켜보려 했지만, 주변에선 가망 없다며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돌봐주라고 권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우리집에 데려왔다. 이름도 지어줬다. 봄에 태어났다 해서 '봄이'라고. 

봄이는 '야옹'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나 했다. 이 기적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집 둘째 '애옹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애옹~" 소리에 반응한 '봄이'

지난 4월 초 아내는 돌보던 길고양이 한 녀석을 데리고 왔다. 봄이 처럼 거의 다 죽어가던 아이였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은 기색이 역력했고, 영역 싸움에서 밀렸는지 얼굴에 상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구내염(고양이 입안, 혓바닥, 목구멍까지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 했다. 

아내는 그런 녀석이 가엾었는지 집에 데려왔다. 그리곤 며칠 데리고 있다가 다시 방사하겠다며 통사정했다. 그리곤 '애옹 애옹' 운다 해 이름을 애옹이라 지었다. 다른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운다면, 이 녀석은 '애옹~" 하고 운다. 아내는 고양이 이름에 관한 한 연금술사다. 

난 애옹이를 그냥 길에 돌아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첫째 고양이 쿠키랑 지내면서 둘째 입양도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냥 애옹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봄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봄이는 처음엔 낯설어 했다. 날 보더니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런데 암컷인 애옹이가 부르니 쪼르르 달려온다. 애옹이는 봄이를 마치 엄마 고양이가 새끼들 핥아주는 것처럼 핥아줬다.

하루가 지나니 봄이는 애옹이를 엄마로 알았는지, 젖을 찾는다. 애옹이가 젖이 나오지 않는데도. 여기에 원기를 회복했는지 집안을 깡총깡총 뛰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마루에 살짝 실례(?)를 해놓기도 했다.  

이 모습 보니 봄이가 이내 건강을 회복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봄이를 꼭 끌어안으며 어서 회복돼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3일에 그친 기적 
 
 애옹이(왼쪽)는 지난 4월 가족이 됐다. 애옹이는 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안스러웠는지 곁을 내줬다.
 애옹이(왼쪽)는 지난 4월 가족이 됐다. 애옹이는 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안스러웠는지 곁을 내줬다.
ⓒ 지유석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봄이는 6월 2일 아침부터 유난히 숨 가빠했다. 딱 보기에도 이날 하루가 봄이에겐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작고 어린 생명이 숨 쉬기조차 가빠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여기서 다시 애옹이가 등장했다. 애옹이도 봄이가 가엾었는지, 꼭 끌어안아줬다. 봄이는 오후가 넘어선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아내는 급히 귀가해서 봄이 곁을 지켰다. 그러다 밤중에 잠깐 길고양이 밥 챙겨주러 나갔다. 

그 사이엔 내가 봄이 곁을 지켰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봄이는 그 작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눈도 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순간 직감했다. 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래서 아내에게 얼른 집에 오라고 호출했다. 아내가 황급히 집에 왔다. 봄이는 아내와 약 30분 정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다가 숨을 거뒀다. 그때가 3일 0시 19분께였다. 

봄이의 이 세상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눈물만 흐른다. 고양이 하나 떠나보낸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핀잔 들을 수 있겠지만. 

참으로 작고 어린 생명이 감당하기 어려운 병을 얻었음에도, 살려고 발버둥치다 마지막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거둔 모습이 너무 가엾어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인가 보다. 

더구나 3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봄이가 건강을 회복해 좋은 양부모 만나고, 그래서 '묘생역전' 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또 잠깐 동안 나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애옹이가 고맙다. 애옹이는 친엄마가 아님에도 3일 동안 봄이의 친엄마 노릇을 했다. 봄이는 떠나기 전, 너무 고통스러워 했다. 애옹이는 그런 봄이를 애처로이 여겨 곁을 내줬다.

봄이야,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서, 건강하게 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봄이가 고양이별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아빠가 간절히 바랄게. 그리고 고마워. 떠나기 전 엄마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버텨줘서, 그래서 자신을 돌봐준 이들을 기억하고 떠나줘서.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봄이#애옹이#길고양이#구내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