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00일째를 맞아 유엔과 국제사회가 종전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월 24일(현지시각) 긴급 연설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군사 침공을 강행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고, 친러시아 돈바스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는 '신나치주의'를 응징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전쟁 개시 100일째가 되는 3일(현지시각) 유엔의 아민 아와드 유엔 사무차장보는 성명을 내고 "평화가 필요하다. 전쟁을 당장 끝내야 한다"라며 "지난 100일간 생명, 가정, 기대감 등 잃어버린 것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파괴가 벌어지고 가정과 지역사회가 무너지면서 불과 석 달 만에 14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라며 "피난민의 발생 규모나 속도가 사상 유례없는 수준"이라고도 강조했다.
또한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 식량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라며 "곡물·상품 무역이 재개될 수 있도록 유엔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번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는 9197명(사망 4183명, 부상 5014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친 것이며, 실제 인명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유엔의 설명이다.
젤렌스키 "불가능해 보였던 일 해냈다"... 러 "군사 작전은 계속"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함락을 노렸다가 여의치 않자 전략적 요충지인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점령한 뒤 현재는 돈바스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지역은 친러시아 주민과 무장세력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도네츠크인민공화국(DN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NR)'을 세운 곳이다.
우크라이나는 마리우폴과 돈바스 일부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5분의 1 정도를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100일째를 공개한 대국민 영상 메시지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100일간 막아내면서 불가능 해보였던 일을 해냈다"라며 "러시아는 지금까지 어떤 전략적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과 함께 있는 데니스 슈미할 총리,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 등 참모진을 비추며 "대통령과 지도부, 우크라이나군이 여기 있다"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크라이나 국민이 여기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해외로 피신하라는 서방 국가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에 남아 항전을 이끌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 대통령실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모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친러시아 주민 보호를 비롯해 지금까지도 상당한 목표를 이루었다"라고 주장했다.
서방 지도자들 "우크라이나 지지" 거듭 강조
주요 서방 지도자들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지지를 거듭 확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00일 전 러시아가 부당한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용기는 존경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라며 "EU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가장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놀라운 항전이 100일째를 맞이했다"라며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내려면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내줘야 하느냐고 묻자 "어느 시점에서는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 관해 논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영토에 관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계속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성명을 내고 "지난 100일간 전 세계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용기와 결의를 봐왔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 우리의 목표는 침략을 억제하고 방어할 수단을 갖추고, 민주적이고 독립적이며 번영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에게는 그가 일으킨 전쟁의 고통과 국제사회의 격변을 즉각 끝내기를 요구한다"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고, 전쟁이 끝나면 재건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