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음력 5월 5일 단오. 단오하면 창포물에 머리감기, 씨름, 수리떡을 떠올린다. 단오하면 가장 유명한 축제가 강릉단오제인데,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답게 무려 8일에 걸쳐 공식행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강릉단오제에서 가장 핵심공연을 뽑는다면 옛날 관노들이 성황당 앞에서 탈놀이를 행한 것에서 유래한 관노가면극이다.

그런데 영남지방에도 성황리에 거행되는 단오 축제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 경산자인단오제다. 호장장군들이 마을 수호신인 한장군께 단옷날 제사를 지낸 후 자인단오 굿, 여원무, 팔광대, 씨름, 그네타기로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데서 시작했다. 특히 경산자인단오제의 핵심은 여원무인데,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춤으로 유인하여 왜군을 물리친 이야기다.

영남을 대표하는 단오축제인 경산자인단오제를 보러 가보자.

팔광대와 여원무

올해 경산자인단오제는 6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 간 거행됐다. 나는 마지막날에 축제를 보러가기로 했는데, 주말인데다가 경산자인단오제의 핵심인 호장행렬과 여원무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단오제는 경산 자인의 계정숲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에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자인의 계정숲은 경부고속도로 경산 나들목에서 69번 지방도를 타고 자인면으로 내려오면 볼 수 있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 홍살문과 문 너머 청사초롱들이 보인다. 그 옆에는 수많은 비석들로 가득한데, 자인현 현감들과 경상도 관찰사에 대한 송덕비다. 당대 자인현감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인데, 과연 실제 묘비 내용대로 자인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의문이다.

청사초롱길을 지나가면 단오제의 주인공이자 신라 말 또는 고려시대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한장군의 묘가 보인다. 원래는 자인중고등학교 본관을 신축할 때 석실묘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마을에서 한 장군의 실제 묘라고 추정하여 유해를 이 숲으로 옮겨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자인단오제 첫날에는 호장 행렬이 한장군의 위패를 모신 진중묘로 가서 대제를 올린 다음, 한장군 묘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첫날이 금요일이어서, 주말에 찾아오는 직장인 관광객들을 위해 호장 행렬을 일요일에 다시 거행한다. 나도 이를 기대하고 갔지만, 하필 세찬 비로 인해 취소되어 아쉬웠다.
 
 자인현감들께 헌정된 송덕비들. 과연 이들은 선정을 배풀었을까?
자인현감들께 헌정된 송덕비들. 과연 이들은 선정을 배풀었을까? ⓒ 최서우
 
 소원들이 적힌 청사초롱으로 가득한 경산자인의계정숲 단옷날 입구.
소원들이 적힌 청사초롱으로 가득한 경산자인의계정숲 단옷날 입구. ⓒ 최서우
 
 한장군의 묘
한장군의 묘 ⓒ 최서우
 
다만 단오마당은 주최측에서 비가림막을 설치해서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내가 봤던 것은 자인단오를 대표하는 가면극인 자인팔광대 놀이다. 자인팔광대 놀이는 1936년까지 지속되다가 일제에게 한장군이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유로 탄압되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복원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원래 자인팔광대 놀이는 양반과 그의 하인 말뚝이의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탈마당, 양반의 본처, 후처의 갈등과 봉합을 두 번째 탈마당과 '줄광대와 곱사마당'인 마지막 놀이마당으로 이뤄져 있다.

오늘 나는 탈놀이의 두 번째 마당을 볼 수 있었다. 본처 유 씨가 후처 뺄 씨와 처첩갈등 과정에서 양반 남편인 제 씨와 싸우다 남편을 죽게 만든다. 내가 본 장면은 당황한 본처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굿을 하는 장면과 정성스럽게 굿을 한 끝에 남편을 살려내고 남편이 본처와 화해하는 춤이 담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본처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다른 지역의 탈놀이와 비교해도 상당히 이례적인 구성이라고 한다.
 
 자인팔광대 놀이. 무당이 영감을 살리기 위해 굿을 하고 있다.
자인팔광대 놀이. 무당이 영감을 살리기 위해 굿을 하고 있다. ⓒ 최서우
 
 자인팔광대의 탈들
자인팔광대의 탈들 ⓒ 최서우
 
팔광대놀이와 이후 벌어진 해남 우수영 강강술래 다음으로 공연했던 것은 바로 자인단오제의 핵심인 여원무다. 한장군이 신라와 고려시대 사이에 자인주민을 괴롭혔던 왜구들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있어서 그런지, 무용수들의 복장도 그 당시 배경으로 맞춘 것 같다. 여원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왜구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꽃들로 가득한 여원관. 무려 28kg나 된다고 하는데, 이 무게를 감당하고 춤을 출 수 있어야 여원무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대를 자세히 보면 신라후기 또는 고려 초기의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한장군과 누이 주변으로 춤을 추고 있다. 원으로 돌며 추는 무희들의 행렬 외부 모서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칼을 들고 서 있는데, 이들이 바로 왜구들이다. 한장군과 누이 그리고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이유는 바로 왜구들을 유인하면서 섬멸하기 위한 것. 여원무 말미에 이들이 한장군과 누이를 향해 덤벼 오는데, 화관을 벗고 이들을 쓰러뜨린 다음 승리의 춤으로 끝난다.
 
 경산자인단오제의 상징인 여원무. 한장군과 누이가 왜구를 쓰러뜨리고 28kg의 여원화를 머리에 써서 승리의 춤을 추고 있다.
경산자인단오제의 상징인 여원무. 한장군과 누이가 왜구를 쓰러뜨리고 28kg의 여원화를 머리에 써서 승리의 춤을 추고 있다. ⓒ 최서우
 
한장군의 활약으로 찾아온 자인현의 평화 그리고 팔광대놀이로 근대 이전 신분제가 엄격했던 사회상을 잘 그려낸 것이 바로 경산자인단오제라는 것을 느꼈다. 다만 일제 탄압으로 끊어졌다가 간신히 복원되어서 아직까지 학술연구가 많이 필요한데, 더욱더 다양한 자료들이 나와서 단오마당의 풍성함을 더해줄 것을 희망하며 단오마당 구경을 마쳤다.

단옷날 민속씨름

단오제답게 여러 가지 민속놀이들도 있었다. 단오마당 근처에서는 수리떡 만들기 체험을, 한 때 자인현의 정청이자, 첫 날 자인단오 큰 굿이 진행되는 시중당에서는 음악공연이, 숲 남서쪽에 체험을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곳들이 있는데, 세찬 비에도 제기차기와 투호놀이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통놀이 체험장 옆에는 커다란 그네가 둘이 있는데, 오늘은 기상으로 인해 통제되었다.

씨름장에는 다른 여느 단오제처럼 8개 대학팀들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대학 개인전 토너먼트 경기가 끝나고는 일반부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16명의 일반 참가자들이 벌이는 경기다. 전문선수들답게 치열한 경기가 진행된 대학부 경기와 다르게, 일반 참가자들의 경기는 체급과 나이의 구분 없이 경기를 진행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가 젊고 덩치가 있는 청년과 호리호리하지만 중년처럼 보이는 분의 경기였다. 처음에는 청년이 유리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막상막하였다. 첫째 판에서는 청년이 이겼지만, 둘째 판에서 중년 분이 장기전 끝에 기술로 이기는 이변을 만들어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마지막 판에서 결국 청년이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 경기였다.
 
 전통놀이 체험장.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전통놀이 체험장.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 최서우
  
 내가 관심있게 봤던 일반부 경기. 프로경기와 달리 체급과 나이에 따라 나뉘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자유분방한 씨름이 단오의 전통이 아닐까?
내가 관심있게 봤던 일반부 경기. 프로경기와 달리 체급과 나이에 따라 나뉘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자유분방한 씨름이 단오의 전통이 아닐까? ⓒ 최서우
 
일반인들의 경기는 프로 수준급은 아니다. 하지만 체급과 나이 승부를 떠나서 관중들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줘서, 이런 씨름 시합이 단오 전통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프로 수준의 눈으로 볼 때 어설픈 부분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가족들과 지인들이 웃으면서 응원해 주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마을에서 풍년을 위해 성대하게 치러진 단오제. 경산 자인단오제의 경우 한장군이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유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탄압당하다가 해방 이후 끊어진 축제를 간신히 복원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왔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봤던 팔광대놀이는 80년대가 되어서야 복원이 시작되어 구술자 기억의 한계로 인해 일부는 새로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호장군 행렬을 큰 비 때문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웠긴 했지만, 나조차도 교과서로만 알던 단오제를 지역 특유의 전통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자인면 주민들이 단오 전통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50년 넘게 생생하게 지켜내고 있기에 강릉단오제처럼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경산자인단오제#경산자인계정의숲#여원무#자인팔광대#호장행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