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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김옥영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으로,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입장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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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뉴스에 인용된 말 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즉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이 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못해서 패배한 것"이라던가, "작금의 민주당 위기는 선거 패배 때문이 아니다. 선거 패배는 위기의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라는 지적 같은 것 말이다.

너무나 올바른 지적이어서 아무리 머리 속을 휘저어도 이를 반박할 말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놀랍게도 이런 지적은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SNS에서 나왔다. 살다살다 내가 권성동의 말을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봄 같지 않은 봄을 지나는 동안 깊은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할 일은 따박따박 해내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도 그렇다. 선거 결과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시대를 같이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올해 너무 많이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실감이 심장을 찔러온다고 할까. 서쪽 하늘에서 지는 해가 몇 시간씩 하염없이 슬로우모션으로 떨어짐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부질없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기력을 긁어모아 한마디 한다. 지방선거 끝나고 패배의 책임이 이재명에게 있다느니 박지현에게 있다느니 분분하게 떠들고 있는 민주당내 모모한 님들아, 님들은 선거 전에 정말 이번 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조차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필패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재명 한 사람이 잘못해서, 박지현 한 사람이 잘못해서 선거가 진 거라면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누구누구 개인의 책임 이전에 유권자,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자체에 대한 '기대를 잃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투표를 한다면 당연히 민주당을 찍었을 사람들이 이번엔 굳이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뇌피셜'이지만 역대급으로 낮은 투표율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의 '남탓' 때문에 수많은 마음들이 멀어져간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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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선 폭망'은 단지 전략의 잘못이나 공천의 잘못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거의 대선 패배 원인의 연장선에 있다. 그것을 감히 부정할 수 있을까? 누차 말하는 바이지만,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가지고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그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다(관련기사 : 무엇이 문재인 정부에 이토록 깊은 증오를 낳았나 http://omn.kr/1xtzi).

코로나 3년 내 소상공인 지원을 아끼다가 새 정부 들어서 추경에 손 번쩍 들어주고 "이 소상공인 보상은 민주당이 추진해오던 것입니다" 운운하는 문자를 보내는 것을 보니 그냥 헛웃음만 났다. 이런 판국에 누구누구의 책임 운운 하는 것은 그저 당내 권력투쟁을 위한 정략적 발언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바로 그 수많은 '남 탓' 때문에 수많은 마음들이 당신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남 탓' 전에 '내 탓'부터 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왜 모두 내 책임은 없고 남 책임인가.

또한 당신들이 지금까지 수천 수만 번씩 되뇌어온 '쇄신' '혁신' '반성' '국민의 뜻' 같은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온다(이쪽 진영 저쪽 계파의 강성 지지자들 요구가 '국민의 뜻' 아니다. 그 정도는 분별하시길). 정치인들의 혀 위에서 구르고 굴러 반들반들해진, 이미 클리셰가 되어버린 그 추상명사들을 혐오한다.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혁신 비대위인지 뭔지를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은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을 장으로 앉힌다고 문제가 그대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세대 교체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나 사람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누구 몰아낸다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냥 한 줌이 반 줌이 되고 반 줌이 반의 반 줌이 될 뿐이다.

문제는 당신들이 고질적으로 앓아오고 있는 그 추상명사의 질병을 극복하는 데 있다. 절대적으로 '구체성'이 필요하다. '쇄신'이 아니라 쇄신의 구체적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 편이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이냐?'가 필요한 것이다.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실천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라고.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승패는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떤 이상을 어떤 현실적인 방안으로 실현해내고자 하는가가 정치의 목적이다. 국민의힘에 반대한다면서 실제로는 국민의힘과의 상호의존적 양당제를 극복할 의지가 없는 정당이, 차별금지법 하나도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정당이 무슨 진보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결국은 지향하는 시스템과 정책이, 그리고 그 실천의 성과만이 민주당의 정체성을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이 2년 후 총선의 향방도 가름지을 것이다.

태그:#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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