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의 빨강색은 예쁘다. 밝게 붉은, 맑은 다홍빛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채소가게에 잔뜩 쌓인 토마토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미감에 새삼 감탄한다. 태양빛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큰 바구니 가득 오천원, 한 박스에 만원씩 하는 여름은 토마토의 계절이다. 테이블에 올려두는 것 만 으로도 부엌을 싱그러운 여름의 빛으로 물들이니 대견하다.
어린 시절에는 그 탐스러운 모양과는 달리 토마토의 심심한 듯한 맛이 별로여서 할머니가 설탕을 솔솔 뿌려낸 토마토만 먹었다. 설탕 가루가 토마토 즙과 함께 달콤하게 녹아내리고 덜 녹은 설탕이 입 안에서 아작하게 씹히는 설탕 토마토의 맛.
하지만 맛있는 건 왜 이렇게 다 몸에 안 좋다고 하는지, 널리 알려진 대로 토마토의 비타민이 설탕을 만나면 파괴된다는 말에 우리 집에서는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는 게 금기시 되었다. "비타민 먹으려고 토마토를 먹나? 그냥 맛있으니 먹는 거지"라고 생각을 해봐도 선뜻 설탕에 손이 가지 않으니 어린 시절의 습관은 꽤나 끈덕지게 몸에 배어있다.
그렇게 과일처럼 생과로 즐기는 토마토보다는 익혀서 각종 요리에 활용하는 채소로서의 토마토가 더 익숙하고 좋은 요즘, 설탕을 대체하는 감미료인 스테비아를 주입시켜 키운 스테비아 토마토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먹었을 때는 너무 인공적인 단 맛이 이상하다 느꼈는데 먹다보니 그 맛에 중독되어, 요즘에는 거의 매일 스테비아 토마토를 과일처럼 먹고 있다.
설탕에 비하면 칼로리가 없다시피 하고 토마토의 비타민도 파괴하지 않는다 해도 "인공적인 감미료를 넣고 키운 과채류"를 먹는다는 묘한 배덕감이 더 크지만 당장은 멈추기가 힘들다.
과일처럼 먹는 스테비아 방울토마토와 달리 요리에 쓰는 완숙 토마토는 여전히 스테비아가 들어가지 않은 일반 버전이 좋다. 토마토를 잘 활용하기만 해도 맛있는 여름 밥상이 뚝딱. 게다가 요리에 토마토를 넣으면 무언가 더 건강하게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다.
토마토를 달걀과 함께 볶은 중화풍 토마토달걀볶음, 요즘 인기인 솥밥의 토마토 버전인 토마토솥밥부터 토마토를 넣은 토마토라면과 토마토 미소 된장국까지 토마토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토마토 요리 중 이번에 소개할 요리는 토마토 카레로, 만들기도 쉽고 맛도 좋은데다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자투리 야채를 마음껏 넣을 수 있어 좋다. 카레라고 하면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카레의 레시피에 토마토만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이면 끝이다.
우리 집 카레는 일본의 고형 카레 블록에 인도 향신료 가람마살라, 큐민파우더와 우스터소스 몇 방울을 넣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더 달콤하고 부드럽게 먹고 싶은 날에는 코코넛밀크를, 리치하게 먹고 싶다면 마지막에 버터 약간을, 우동으로 먹고 싶을 때에는 가다랑어 육수를 더하는 식으로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변형한다.
토마토의 새콤한 맛을 더 진하게 내고 싶다면 토마토페이스트를 반 숟갈 더해도 좋고, 토마토의 새콤한 맛에 맞춰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와 고수를 더해 동남아풍으로 만들어도 좋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이런 저런 제안일 뿐이고, 집에 있는 재료에 맞춰 만들면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어지는 것이 카레이니 레시피는 참고용에 다름없다.
여름 토마토 카레
- 재료(2-3인분) : 고형 카레 블록 2조각, 토마토 2개, 감자 1개, 양파 1/2개, 오이고추 2개, 익힌 닭가슴살 1덩이 혹은 새우 적당량, 가람마살라·큐민파우더·오레가노 1작은술 씩(생략가능), 물 2컵, 코코넛밀크 1/2컵, 우스터소스 1/2큰술, 토핑용 고수 적당량, 식용유 약간
- 만들기
1. 토마토와 감자,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오이고추는 반 갈라 씨를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닭가슴살은 결대로 찢는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감자와 양파를 볶다가 양파가 가람마살라 등 향신료를 넣고 향이 올라올 때 까지 볶는다.
3. 향이 올라오면 물을 붓고 토마토를 더해 감자가 반 정도 익을 때 까지 뭉근히 끓인다.
4.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형 카레 블록을 넣어 잘 섞어 녹이고 결대로 찢은 닭가슴살과 오이고추를 넣어 약한 불에 끓인다.
5. 한소끔 끓어오르면 코코넛밀크를 더하고 우스터소스로 마지막 간을 해 한소끔 더 끓인다.
6. 그릇에 밥과 카레를 담고 고수나 삶은 계란, 송송 썬 파 등을 올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