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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70% 정도 진행됐다고 봅니다."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220번째' 공판이 열린 22일, 공판을 담당하는 검찰 관계자가 답한 말이다. 이날 공판이 끝난 후 재판 진행률을 묻자 "증인 신문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2019년 3월 25일 첫 공판이 열린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일명 '사법 농단 재판'은 3년 4개월이 지나는 지금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심리 절차를 정리하는 12번의 공판준비기일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열린 공판 횟수는 220회다.

이날까지 열린 증인 신문 횟수만 118회, 증인으로 나온 전·현직 판사는 45명을 넘는다. 법정에 나온 증인은 100명을 넘겼다. 검찰이 재판 시작 당시 신청한 증인 216명에 비하면 절반 가량이다. 당초 양 전 대법원장 측이 검찰 조서 전부를 증거로 동의하지 않으면서 예정된 증인이 200명을 넘겼으나, 이후 일부 조서에 동의로 입장을 바꾸면서 증인 규모가 줄어 왔다. 

재판 장기화에 증인도 "기억이..." 
 
 2021년 4월 7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년 4월 7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조서에 적힌 내용이 맞을 겁니다. 그땐 기억이 생생했으니..."
"(검찰 조서엔 적혀있지만) 제 현재 기억엔 없습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박철주 전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 전 국장은 2016년 3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으로 일했다. 

박 전 국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된 증인이다. 2012년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승소 판례가 처음 나왔는데,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 현안과 관련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정부 요청에 맞춰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키려는 등의 시도를 했다는 의혹을 산다. 이 과정에서 2016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소송에 의견서를 내라'고 외교부 간부들을 독촉했던 때가 있었다. 박 전 국장은 이를 지켜본 간부 중 하나다. 

박 전 국장이 당시 임 전 차장의 요구를 정리한 기록엔 '2012년 판결과 관련 대법원의 새로운 논의 전개를 위해 계기가 필요하다'거나 '4년 전 내려진 판결을 바로 뒤집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 등의 내용이 적혔다. 

박 전 국장은 이를 증언하면서도,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검찰 조사에서 말한 게 맞을 것"이라고 거듭 답했다. 검찰 조서에 적힌 일부 진술에 대해서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 도중 "검찰 조사는 4년 전이고, 관련 사건은 6년 전인데 워드 바이 워드(구체적인 단어)로 기억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검찰, '증인 108명 더 필요' 의견서 왜?
 
 2018년 9월 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 당시 모습.
2018년 9월 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 당시 모습. ⓒ 권우성
 
재판이 장기화되는 데엔 증인 규모가 많은 탓도 있으나, 지난해 6개월 동안 '공판 갱신 절차를 거친 영향도 컸다.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바뀌면서 양 전 대법원장 측이 공판 갱신 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해, 지난해 4~10월 동안 앞선 증거조사 공판 녹취파일을 모두 재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지난해 11월 다시 증인신문이 재개되며 재판에 속도를 냈으나, 5월 중순부터 한 달 간 공판 준비기일만 여러 차례 열렸다. 검찰 측이 신청한 증거 중 법정에서 채택되지 않거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증거가 상당수 남아 있어 이를 정리하는 공판을 4회 가량 열었다. 

검찰은 이와 관련 최근 재판부에 추후 증인 신문 및 서증 조사 계획 등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며 '서증 조사는 8회, 증인신문은 108명 정도가 더 필요하며, 10여명 수준의 증인 추가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변호인 측의 부동의로 재판에 채택되지 않은 증거가 있기에 추가 증인 신문이 더 필요하다는 요지다. 

재판부는 내달 5일 13회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이와 관련한 양 측 의견을 다시 듣고 공판 진행 계획을 정한다고 밝혔다.

#양승태#사법농단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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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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