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쯤 계약하고 한 번도 안 왔어요."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상가. 대통령실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가 있다는 건물을 찾았지만 회사 상호명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주소지인 5층으로 올라가니 흡사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작은 사무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각 사무실은 간판은 물론 팻말 하나 달려 있지 않았다.
적막감만 흐르는 극소형 사무실 입구에는 수신처가 S사 혹은 '김○○ 대표'로 된 우편물만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국세청, 국민건강보험에서 온 고지서와 서울은평경찰서·서울서대문경찰서 등에서 보낸 '과태료 부과 계도 안내문'과 같은 독촉장 형태의 우편물이 대부분이었다.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 2021년 12월 16일 보낸 대형 택배도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관리인은 "(김 대표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사무실에 아무도 없고, (다른 직원 없이) 혼자인 걸로 알고 있다"면서 "지난해 12월 (임차) 계약할 때도 (김 대표) 혼자 왔다"고 했다. 그는 "우편물을 찾아가라 연락했는데, 찾아가지도 않는다"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사실상 '유령 사무실'인 셈이다.
2021년 12월부터 쌓인 택배와 '독촉' 우편물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의원실에 따르면, 군소 건설업체인 S사는 올해 3~5월간 총 16억 3000만 원 규모의 서울 용산 대통령실 상황실과 융합센터, 사무공간 조성 등 4건의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이 회사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대구 달성군 사저 공사에도 참여했다.
2019년 7월 설립, 업력이 3년에 불과한 이 업체는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2명이고, 기술사·기사·산업기사·기능장 및 건설기술관리법에 의한 건설기술자 자격 인원은 전무하다. 관급 공사만 보면, 이 회사가 설립 이후 맡은 공사는 이번 대통령실 공사 외에 도서관 페인트 도색, 학교 창호 교체 등 1억 원 미만 공사 5건에 불과하다.
건설업계 인사들은 군소 건설업체가 대통령실 상황실과 같은 중요 보안시설 공사를 하도급이 아닌 도급으로 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직원 10명 이내의 한 군소 건설업체 관계자는 "상주 직원이 2~3명인 업체가 도급으로 관급 공사를 맡는 일은 거의 없다"며 "공사에 참여하더라도 (대형 건설사의) 하도급을 받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소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관급 공사를 따왔다면, 아는 사람을 통한 경우"라고 덧붙였다.
"직원 2~3명 업체, 하도급 아닌 도급으로 관급 공사 맡는 일 거의 없어"
특히 이 업체는 지난해 허위 세금계산서로 실적을 부풀려 세금을 탈루하다 국세청에 적발돼 약 8억원의 추징금을 징수당했고, 현재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김두관의원실은 밝혔다.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국가계약법상 관급 공사의 수의계약을 물론 2년간 입찰 참가 자격 자체가 제한된다.
이 회사는 지난 2019년부터 2021년 12월까지는 서울 은평구 한 상가에서 영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곳에는 다른 건설업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지역 주민은 "S사가 여기서 몇 년 동안 영업했다"며 "지난해 12월 지금 업체가 이사가 온 이후로는 S사 측 사람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 김아무개 대표는 대통령실 공사 수주 경위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수의계약 경위를 묻는 말에 "보안 사항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여권 유력 인사와의 관계 등을 묻자 김 대표는 "잘 모르겠다. 제가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S사가 국세청에 적발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수사 중인 업체라는 SBS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자 "문재인 정부 경호처의 추천을 받아 해당업체와 계약을 맺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밖에 시공능력 평가액이 3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신생업체 '다누림건설'도 대통령실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대통령실 청사 간유리공사를 맡은 다누림건설은 지난해 12월 설립됐고, 이후 수주한 관급공사는 3건에 수주액은 83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사무실은 시공현장과 거리가 먼 포천에 있는데다, 기술자격을 갖춘 인원도 2명 밖에 없어 공사 수주 배경에 의문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