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 권고' 등으로 경찰의 중립성·독립성 확보가 논란입니다.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이 글을 보내와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어이없는,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논쟁의 중심에 뛰어들었다. 최근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에 대해 23일 사실상 '경찰 책임론'을 꺼내들며 한 말이다.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경찰 수뇌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안 그래도 '행정안전부(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권고'로 행안주장관의 경찰 통제 기류가 드러나고, 일선 경찰이 공개 반발하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과연 윤 대통령의 말대로 경찰은 국기문란 행위를 했는가. 아니면 윤 대통령은 국기문란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경찰을 겁박하는 또 다른 국기문란 행위를 하고 있는 건가.
심상치 않은 경찰들... "경찰청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댓글도
요즘 경찰 조직이 심상치 않다. 과거 경찰에선 볼 수 없었던 집단반발 행동이 나오고 있다. 경찰서 앞에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리는가 하면, "경찰청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댓글도 실명으로 달리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같은 것이 경찰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 장악 기도'와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이례적 행보로부터 촉발됐다.
경찰은 힘이 세졌다. 검찰 수사권 재조정 관련 입법 때문이다. 경찰은 곧 부패와 경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배타적 수사권을 갖는다. 15만 조직에 수사권까지 갖췄으니 대한민국 최대의 권력기관으로 불려도 무방하다. 권한이 커진 만큼 통제와 견제도 당연히 필요하다. 핵심은 통제·견제의 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방식은 본말이 전도됐다. 민주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서 비민주적 방식을 채용했다. 우선 행안부장관의 사무에 '치안' 업무를 추가하고 행안부에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구로 '경찰국'을 설치하겠다는 권고안을 실행하겠다고 한다. 제도적인 통제방안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시도가 제도의 시곗바늘을 1970년대와 1980년대로 거꾸로 돌린다는 점이다. 시대착오다.
경찰이 오늘날과 같이 행안부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조직운영의 독립성을 유지해 온 데엔 역사적 연원이 있다. 1991년 경찰청 독립은 19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반성과, 1987년 6월항쟁과 더불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경찰 민주화 요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경찰청 독립은 민주화의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됐다. 그 후 30년이 넘게 경찰은 상위 부처인 내무부와 그 후신인 행안부에 '소속'되기는 했지만, 조직의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경찰청 독립의 시대적 흐름이었다.
경찰과 권력은 멀면 멀 수록 좋다
법무부에 검찰국이 있으니 행안부에도 경찰국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법무부와 행안부가 다르듯이 경찰과 검찰은 다르다.
막강한 권한과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무장한 검찰은 자기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경우에는 정치권력에 순응해 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추미애-윤석열의 대립구도에서 익히 봐왔듯 되레 정치권력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가졌다. '사람에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은 검찰 집단의 지향성과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검찰국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사와 예산권을 법무부장관이 행사해 오지 않았더라면 검찰이 더 폭주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에 비해 경찰은 검사에 비해 신분보장이 약하고, 승진경쟁은 훨씬 치열하며, 변호사처럼 퇴직 후 생계수단이 보장되지 않아 정치권력의 외압에 너무 취약한 구조를 가졌다. 또 경찰은 태생적으로 현상유지의 속성이 강하고 상명하복에 익숙한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력과 유착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경찰의 경우엔 통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종속과 유착이 훨씬 더 큰 문제가 돼왔다.
정리하면, 검찰은 살아있는 정치 권력 등과 싸우면서 자신의 힘을 유지해왔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검찰국은 검찰의 통제에 기여할 수 있지만, 경찰국은 경찰의 종속을 심화시킬 뿐이다. 경찰의 경우엔 경찰위원회 같은 합의제 형태의 거버넌스를 통해 완충지대를 설정,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나... 경찰 인사에 손 대는 행안부장관
윤석열 정부는 인사 문제에 있어선 더욱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냈다. 이상민 장관은 최근 치안정감 승진자 6명 전원을 사전에 면접하는 이례적인 행동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경찰 고위간부 승진대상자에 대한 장관의 '줄세우기식 사전 면접'은 경찰 역사에도 없었던 수상한 일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치안정감들을 전원 교체했다. 차기 경찰청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시킨 자기 사람들 중에서 배출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인사는 윤석열 정부의 경찰조직 운영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치안감 인사에서는 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불과 몇 시간만에 7명의 치안감에 대한 인사가 번복됐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에 책임을 돌리고 있고, 윤 대통령도 행안부를 두둔하는 듯하다. 석연치 않다.
누가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은 인사내용을 고의로 공표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행안부장관의 인사개입으로 비치는 이례적 행보 때문에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판단은 행안부장관 치안정책관으로 근무한 내 경험에 근거한다. 일반적으로 행안부장관은 경찰청장과 청와대가 협의한 인사내용에 대해 일종의 '경유' 절차만 거칠 뿐이었다. 그만큼 역대 행안부장관들은 경찰 인사 개입을 자제해왔다. 그것은 경찰의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하나의 불문율 같은 전통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상민 장관은 다르다.
반지성주의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 장관이 논란과 반발을 초래하면서까지 굳이 경찰을 권력 가까이 끌어당기고 손아귀에 쥐려는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장관 개인의 독자적 판단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장악했으니 이제 이상민 행안부장관을 통해 경찰을 장악하겠다는 건가. 양대 권력기관으로 하여금 본격적인 정치수사, 보복수사에 나서도록 판을 설계하려는 건가.
이와중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국기문란"이다. 인사 발표의 번복을 두고 무서운 단어를 사용해 공권력을 겁박,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기문란은 경찰이 아니라 정부가 한 것에 가깝다. 이 정부 들어 국정원 1급 부서장 전원이 대기발령났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권력기관 길들이기 행태'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힘을 과시하며 경찰을 겁박하고 호통 치는 것은 본인 취임사 때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꼽은 '반지성주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