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성소수자 차별'이 금도를 넘고 있다. 지난 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5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음란물을 동원해 집회를 한다거나 신체 과다노출 현상이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겠다 하는 원칙을 세워서 만에 하나 그런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가 있게 되면 내년 이후에는 정말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앞서 서울시는 축제 참가자의 신체 과다 노출을 금지하는 조건을 붙여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시청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현장에서 신체 과다 노출을 계도하겠다면서 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시청광장 사용 불허를 위해 나름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오 시장은 축제의 시청광장 사용 신청에 대한 응답을 한참 미루다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통해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 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와 같이 위원회 일부 위원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불쾌감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이 축제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라는 식의 차별·혐오 발언이 스스럼 없이 나왔고, 결국 과다 노출 금지를 조건으로 한 조건부 사용 허가 결정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신체 과다 노출 금지 조건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서울시의 행정처분은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시청광장에서 열린 다른 행사에 대해 신체 과다 노출 금지를 조건으로 내건 경우가 있었던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 시장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처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처분과 무관하다는 듯 말했지만 "정치인 오세훈의 개인적인 입장은 동성애 반대라는 건 분명하게 밝혔다"면서 성소수자 차별 인식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조소
솔직해지자. 차라리 시장이 '동성애 반대'하기 때문에 성소수자 행사를 방해하고 금지하려는 것이라고, 아니면 '동성애 반대' 외치는 집단의 등쌀에 못 이겨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고백을 하자. 솔직하지도 떳떳하지도 못한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 모습보다는 그나마 나을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성소수자 차별·혐오 인식과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 방해가 서로 연관성이 없다고 여기는 시민은 없어 보인다. 정치가 솔직하지 못하면 떳떳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면 구려지기 마련이다. 서울시가 내세운 과다 노출 금지 기준은 솔직하지도, 떳떳하지도 못해서 구릴대로 구려진 정치의 표본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과다 노출 기준이 무엇인지 묻자 서울시 관계자는 "눈쌀을 찌푸리게 하느냐, 아니냐가 기준"이라고 답했단다. 구리다 못해 역겨운 수준이다. 어떻게든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음란'하고 '불건전'한 축제로 낙인찍겠다는 의지가 읽힐 뿐이다.
상식 밖의 기준 앞에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웃지 못할 조소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청 공무원의 관심법을 꿰뚫는 연습을 해야겠다" "서울시청 단속반이 막대 자를 들고 나와 상하의 길이를 재는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농담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서울시의 얼토당토않은 과다 노출 단속 방침이 군사독재정권 당시 장발·미니스커트 단속반이 상징하는 야만과 폭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터무니없다는 것일 테다.
이런 방식은 '약자의 연행'이다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은 민선 8기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조직 개편을 통해 시장 직속으로 약자와의 동행 추진단을 설치했다.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시장의 철학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말뿐인 약자와의 동행은 위선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정치인이 하겠다는 약자와의 동행은 자연스럽게 그 목적과 행선지를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시장이 내세우는 약자와의 동행이 시혜와 동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멋대로 약자를 끌고 가는 방식은 곤란하다. 약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자와의 동행이 아니라 '약자의 연행'이다. 당연히 약자가 원하는 동행의 방향은 시혜와 동정이 아니다. 모든 시민의 동등한 권리와 존엄의 보장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오세훈 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에 진심이라면 성소수자 시민의 권리와 존엄부터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집회다. 성소수자 시민을 비롯한 서울시민의 축제 참여는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다. 대규모 야외 기도회 참가자의 복장을 단속하거나 규제하지 않는 것처럼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의 복장 역시 단속이나 규제를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차별이다.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모두가 행정에 의한 차별을 결코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2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복장 단속을 두고 논쟁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한국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망신을 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부끄러운 것은 다름 아닌 정치다. 행정의 차별과 혐오에 제동을 걸어야 할 정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보다 부끄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서울시의회를 양분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정의당과 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역시 유의미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단순히 논평을 발표했는지 여부를 떠나 각 정당이 성소수자 시민의 권리 보장에 대해 평소 어느 정도의 관심과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로 무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에 맞설 평등과 존엄의 정치가 절실하다.
정치권에 대한 호소만은 아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시민의 존재가 곧 정치다. 누구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시청광장을 다양성의 장으로 만들고 지킬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 성소수자 서울시민에게 있다. 주저하거나 두려워 말고 광장에서 만나 같이 행진하기를 청해본다. 물론 오세훈 서울시장의 참가도 대환영이다. 직접 와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진짜 모습을 확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