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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산보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산보를 마친 후 함께 목욕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아버지가 산보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산보를 마친 후 함께 목욕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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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동네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조그만 집안 부엌에서 물을 데워 목욕을 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처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목욕탕에서는 등을 남에게 맡기는 경우가 흔했다. 등의 때를 서로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등을 내보이며 서로 때를 밀어주는 묘한 정서가 있었다. 지금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지만 등 때 밀어주기는 일종의 품앗이 목욕 문화였다. 설령 때가 많아도 서로에게 허물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이런 모습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세월 흘러 노쇠한 아버지

세월이 변해 지금은 매일 목욕하는 세상이 됐지만 과거에는 특별한 날 목욕할 때가 많았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와 목욕탕에 자주 갔다. 어떨 때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는데 아버지가 친척 결혼식이나 가족사진 촬영 등 특별한 행사를 앞두고 있는 경우였다. 대부분 아는 동네사람들로 가득한 목욕탕에선 벌거벗은 상태로 수인사를 하는 게 다반사였다. 목욕탕은 자연 동네 사랑방 역할도 수행했다.

욕탕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면 아버지는 여지없이 내게 등을 내밀라고 했다. 이번엔 차례를 바꿔 내가 아버지 등의 때를 민다. 아버지는 "힘이 그렇게 없어서야 좀 더 세게 하라"며 다그친다. 이러한 '등 때 밀기' 의식을 마쳐야 비로소 자기 목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부자지간의 정은 목욕탕에서 싹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포 전 아버지가 이젠 혼자 목욕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 '힘없는' 말은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투로 한 말이지만 듣는 순간 뭔가 뒤통수를 때리는 듯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노쇠했다는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며칠 전 주말 집 욕실에서 오랜만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렸다. 내게 몸을 의지하는 아버지 표정이 다소 어색했지만 우리는 목욕하는 동안 동네 목욕탕의 옛 추억을 잠시 떠올렸다. 

아버지는 고목처럼 말라 있었다. 피부라 할 것도 없이 그저 살가죽이 전부였다. '피골상접'이라는 말 그대로다. 목욕 수건을 갖다 대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렸지만 눈물을 애써 참았다. 

"아버지! 세게 밀어 아프지 않아요?"

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앙상한 가슴과 움푹 들어간 배는 더 이상 사람의 몸이라 할 수 없었다. 이런 야윈 상태로 몸을 지탱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제야 아버지가 스스로 목욕할 기력이 없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함께 살면서 누구보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과 오만이 얼마나 공연하고 부끄러운지. 

며칠 뒤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기로 했다
 
목욕탕
 목욕탕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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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소싯적부터 나름 건강을 챙기는 편이었다. 혈혈단신 월남한 탓에 의지할 것은 몸 하나뿐이었다. 30년 전 당신 환갑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독신을 고수하며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로 일관했다. 이 모든 게 자식들에게 결코 추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깔끔한 행동이려니 치부하는 사이 아버지가 이렇게 적나라한 몰골로 변했다니 기가 막혔다.

목욕을 시켜드리니 무표정한 아버지 얼굴이 되살아났다. 기쁜 표정에는 단지 때를 벗은 개운함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사실 어린 시절 내 등을 밀어주던 든든한 아버지를 투영하면서 내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몇 년 새 쇠잔한 아버지를 보면서 함께 산보한 후 서로 등 씻어주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함께 목욕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가족이라는 걸 새삼 일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아버지가 내게 몸을 의지할 때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목욕이 더욱 소중하다. 다음 목욕은 3일 이후에 하기로 했다. 

태그:#동네목욕탕, #대중목욕탕, #등 때 밀어주기, #혈혈단신, #피골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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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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